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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덕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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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덕질'하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싸움의 외주화'를 거부하는 삶

교섭 테이블 1라운드가 지나갔다.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파인텍(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의 회계조작·위장폐업·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 중 단 5명만이 남았고, 그들의 긴 투쟁의 대상인 김세권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데, 차광호가 무기한 단식 투쟁을 시작하고 뒤따라 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연대 단식이 시작되자, 종교 및 사회단체 중재·압박에 의해 어렵게 교섭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지난 27일 10시에 시작해 3시간 동안 진행된 1차 교섭에서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예상되었던 플롯이다.

투쟁, 싸움, 농성, 시위, 행진, 문화제, 동지, 연대, 전략, 전술 등 우연히 파인텍 굴뚝 농성에 연대하기 시작하면서 자주 듣고 자주 말하게 되는 단어들이다. 이것들에 담긴 미적 양식은 전혀 '힙'하지도 스타일리쉬하지도 않으며, 미적 쾌감을 주는 디자인에만 반응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선 반사적으로 꺼버려야 하는 팝업창과도 같다. 그 팝업창을 끄지 않고 응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적(詩的) 감성이나 야생성이 필요하다. 노동투쟁 현장의 삶은 아주 두텁게 은유(隱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상착의? 음, 뭐랄까. 노동자 외모였어요',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노동자 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그냥 막노동이나 하지, 뭐.' 자본의 사회에서 '노동·노동자'라는 말은 사악한 취지에서 은유 되어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엔 마치 윈도우처럼 보급형 프로그램이 깔려있다. 노동을 폄하하고 노동자를 혐오하는, 또한 그것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중앙관리 시스템이 있는 모양이다. 간혹 오류가 발생하거나, 가령 '윈도우 지우고 리눅스로 갈아탈까?' 하는 식의 딴생각을 하면 여지없이 오류가 발생하고, 그 오류는'TV예능'이나 '소확행'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치료한다. 이제 오류는 삭제되고, 그들의 윈도우는 예전처럼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전형적 삶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전형성이라는 궤도에서 삐끗 이탈할 때 발생한다. 다만, 드라마를 TV로 볼 것인지 현실계에서 경험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다.

▲ 박준호·홍기탁, 두 사람이 수행 중인 스님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단지 헤어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프레시안

노동투쟁 현장을 간혹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노동투쟁 연대 감각 문외한 단계를 갓 넘어서 '쪼랩(초보)' 단계로 진입한 나의 경우, 투쟁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이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된다.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을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문외한 단계였던 나는, '쪼랩' 단계를 지향하는 지인을 따라 1인 시위 중인 차광호 옆에서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에서 나는 전형성에서 이탈하는 드라마보다 신선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길 위에서 철학자의 강의를 들은 듯, 맛보기 강좌에 낚인 나는 그들의 세계관 속으로 속히 진입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자본주의적 은유에 익숙했던 내 운영체계는 조금씩 프로그램을 갈아타게 되었다.

파인텍 굴뚝 농성 현장의 다섯 명. 굴뚝 위의 박준호·홍기탁, 그리고 굴뚝 아래를 지키고 있는 차광호 지회장, 김옥배, 조정기. 그들의 일상은 수행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굴뚝 위의 두 사람은 마치 동안거(冬安居)를 하며 면벽수행(面壁修行)하는 스님을 연상시킨다. 폭이 80cm도 되지 않는 굴뚝 위에서 412일 동안 단 1초도 벗어나지 않고 선명한 통찰력과 여유로운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건, 쪼랩인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다. 굴뚝 아래에서 이들을 돕고 있는 차광호·김옥배·조정기는 시계처럼 움직인다. 면벽수행 중인 스님을 보필하는 행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그들은 연대하는 동지들과 함께 오체투지로 4박 5일간 거리의 바닥을 기었다.

그들 중 누구 하나 그 흔한 육두문자 한 번 입에 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길에 꽁초를 버리고 침을 뱉는다거나 화를 주체하지 못해 언성을 높인다거나 하는 주변에서 숱하게 보아온 거칠고 매너 없는 '아저씨'의 모습은 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다. 절박한 투쟁 속에서 대체 그런 정갈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4일간의 오체투지 행진을 마치고, 닷새째가 되던 12월 10일 차광호 지회장이 무기한 단식 투쟁을 선언한 날, 파인텍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대화방은 4배속 영상을 보는 듯했다. 누군가는 단식농성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올렸고, 그동안 김옥배·조정기는 단식농성에 필요한 천막을 칠 위치를 정하고 순식간에 천막을 완성했다. 전기장판을 싸 들고 달려온 사람, 단식에 필요한 죽염과 효소를 지방에서 보내주겠다는 사람, 생수를 몇 상자씩 보내겠다는 사람 등 순식간에 단식농성 준비가 끝났다. 거동이 불편한 백기완 선생께서 단식농성 선언 기자회견 현장에 참석했다. 농성장엔 방문자들이 줄을 이었고, 연대 단식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속속 합류했다. 이런 움직임의 원천이 연민이나 봉사 정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을 간파하고, 그 안에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걸 먼저 깨달은 이들이 발산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시민 한 명이 한 표를 찍는 그 순간 이후 철저히 '을'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는 껍질뿐인 민주주의 국가인 이곳에서, 그저 '표밭'으로 존재하는 호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싸움 본능을 장착한 시민 군단의 일원이 될 것인지, 이는 선택해야 할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시대에서는 중재하는 이가 아닌, 타협 없는 싸움을 불사하는 이들이 그 사회의 가장 강력한 안전장치가 된다. 전자와 후자 중 누가 나의 아군(我軍)일지를 구분하는 눈은 싸움을 '외주화'하는 삶이 당연해진 이들에겐 주어지지 않는다. 내 삶에서 어떻게 전선을 형성해야 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고민하는 사람에게만 선물처럼 주어진다.

▲ 이 정도면 '어벤져스' 부럽지 않다.(왼쪽부터 송경동 시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차광호 파인텍 지회장, 이해성 연극연출가, 나승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텔레그램(굴뚝이방)

오늘 12월 29일은 2라운드다. 누군가는 그것을 '교섭'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싸움'이라고 부른다.


오늘로 20일째 단식 중인 차광호는 죽염과 물만 마신 채 링에 오른다. 상대는 반칙왕 김세권이다. 보기에 따라서 이건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그렇다. 파인텍 굴뚝 농성장의 5명은 이미 이긴 존재들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최소한의 존엄을 자본의 도움으로 '외주화' 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가 생산, 자가 사수'하겠다는 그들. 그런 의미에서 이 싸움은 공평하지 않다. 그들이 이미 승자의 선상에서 출발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지역 주민센터를 통해 허락을 득한 후 좌표이동을 하고 서식처를 구축하지만, 파인텍 굴뚝 농성 중인 5명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좌표를 스스로 생성해내고, 서식처를 순식간에 구축한다. 그 서식처는 요새가 되고, 진지가 되고, 또 베이스캠프가 된다. 그들의 전략과 전술은 유연성을 잃지 않으며, 구사하는 무공은 마치 영화 <엽문>의 견자단처럼 우아하고 정갈하다.

인정한다. 이 정도면 '중증 팬심'이라는 걸. 이 나이에 내가 연습생을 시작해 봐야 승산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파인텍 투쟁 현장에 '팬질'과 '덕질'을 해볼 생각이다. 자본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팬질과 덕질만큼 '생산적'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 '마음은 굴뚝같지만'은 2017년 11월 12일부터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씨와 박준호 씨가 하루라도 빨리 내려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연대 글입니다. 같은 사업장의 노동자 차광호 씨는 2015년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 올라 전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일인 408일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 12월 24일, 이 기록은 굴뚝 위 홍기탁, 박준호 두 사람에 의해 갱신되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을 다시 굴뚝 위에서 맞이하게 할 순 없습니다. 이들이 어서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노동자로서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응원하며, 파인텍 5명의 노동자들이 웃으며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길 기대하며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 릴레이 연재를 이어갑니다.

법적으론 문제없단 말 들었을 때..."아 문제가 많구나"

"그 굴뚝 앞에 서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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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농성 411일…내가 연대 단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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