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09년 입술 터진 이명박, 2013년 비리 터진 측근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09년 입술 터진 이명박, 2013년 비리 터진 측근들

4대강·원전 수출, MB 최대 '치적'이 측근 비리로 물들다

2009년 12월 20일.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기자실을 찾았다.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UAE(아랍에미리트)에 가실 수도 있다. 이르면 이달 안이다. 꼭 엠바고를 지켜달라. 성사되면 우리의 국가 에너지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와 지식경제부 기자실에선 UAE 원전 수출이 가시화됐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 출국 당일인 2009년 12월 26일 오전 6시로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걸었다. '철통 보안'이라고 했다. 다음 날인 27일 이 대통령은 UAE 수도 아부다비 힐튼호텔에서 생중계된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47조 원 규모의 원전을 수출하게 됐다고 전 국민에게 알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내 입술이 터진 보람이 있네"라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은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받아 적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집념이 해냈다"는 취지의 기사들을 내보냈다. 2010년 새해는, 언론 보도만 보면 '축제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그로부터 3년 8개월가량 흐른 후,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의 집에서 6억 원의 현금 뭉치가 발견됐다. 이 현금 뭉치의 출처 일부는 한국정수공업이라는 수처리 전문 업체로 알려졌다. 한국정수공업은 2010∼2012년 UAE 브라카(BNPP) 원전 1∼4호기에 1000억 원대 용수처리 설비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업체다. 여기에 이른바 '영포 라인(영일·포항 출신 정치인·공직자라는 의미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을 중심으로 형성된 측근 그룹)'으로 분류됐던 이명박 정부 핵심 실세가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UAE 원전 수주와 관련해 억대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국의 원전 안전성 및 투명성과 관련해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입술이 터"져 가면서 군사 작전을 하듯 추진하고 선전했던 UAE 원전 수출의 '꿈'이 '영포 라인 비리'의 악몽으로 뒤바뀌고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12월 29일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입술에 터진 자국이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UAE 원전 수출을 확정짓고 2009년 12월 27일 특별 기자회견을 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입술이 터진 보람이 있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4대강 마피아', '원전 마피아' 뒤 MB 정부 실세들의 '실루엣'

최근 검찰은 수신자가 '이규철 대표이사님'으로 된 문건 하나를 확보했다. 2012년 5월 1일에 팩스로 전달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이규철 대표는 현재 한국정수공업의 2대 주주로 돼 있고, 당시에는 한국정수공업회장을 지내고 있었다. 다음은 문건의 내용 일부다.

"귀사(한국정수공업)의 오희택 부회장이 귀사의 수처리 설비와 관련해 '한수원의 기존의 계약을 유지시켜달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의 수처리를 하게 해달라'고 자꾸 찾아와 부탁한 바 이를 수락하고 일을 성사시켜서 한국정수공업이 한수원 수처리 관리와 한전의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수처리를 수주하게 됐습니다. 누구를 통해 어떻게 됐는지 글에서 밝힐 수 없지만 이규철 대표님이 더 잘 아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 편지를 작성한 인사는 이윤영(구속) 씨다. 이 문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오희택(구속) 씨가 이윤영 씨를 통해 UAE 원전 수출 과정에서 수처리 시설 수주를 부탁했고, 이것이 성사됐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오희택 부회장을 추궁해 "이윤영 씨를 통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금품 로비를 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조선일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검찰 관계자는 "오 씨는 자신이 한국정수공업 이 회장으로부터 로비 자금으로 13억 원을 받았고, 이 중 3억 원을 박 전 차관에게 전달하려고 이 씨에게 건넨 것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UAE 원전 수처리 시설 수주 로비 의혹과 관련해 '한국정수공업-오희택-이윤영-박영준'의 연결 고리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오희택 씨는 재경포항중고동창회 회장을 지낸 인사로 이른바 '영포 라인'으로 분류된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건설분과 위원장, CSG건설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이윤영 씨는 한국노총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출신으로 한나라당 소속 제7대 서울시의원(재정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 상임자문위원 직함도 갖고 있다. 이명박 캠프에서 활약하며 박영준 전 차관과 돈독한 관계를 다졌다고 한다. 2012년 총선 때는 서울시 중구 국회의원 예비 후보로 등록하기도 했지만, 공천에서 떨어졌다.


▲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연합뉴스

박영준 전 차관은 경북 칠곡 출신이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 '영포 라인'의 정점에 섰던 인물이다. 이들의 연결 고리는 단순하다.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 전 차관이 UAE 원전 수출 과정에서 수처리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1000억 대의 사업을 성사시켜 준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된 문서에는 최근 부도 처리된 물 산업 관련 대기업이 한국정수공업을 인수하려는 시도를 막아달라고 오희택 씨가 이윤영 씨에게 요청을 했다는 정황도 담겨 있다. 이를 위해 해당 대기업을 관할하는 지방국세청을 통해 해당 대기업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했고, 결국 압력을 넣었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겨 있다.

문서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오희택 씨는 "정책금융공사 고위층을 통해 자금을 동원, 팔려고 하는 주식을 인수하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실제 정책금융공사는 지난 2010년 말 경영권 분쟁에 시달리던 한국정수공업의 지분 58.5%를 사모펀드 운용사를 통해 642억 원에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책금융공사는 '압력' 여부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석연치 않은 정황인 것은 분명하다.

문건 내용을 보면, 지난 정부 시절 원전 주변 업체들과 '영포 라인' 실세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결국 '원전 마피아'는 MB 정부 실세들이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4차례나 공개 석상에서 "원전 비리 척결"을 당부했다. 원전 비리와 관련해서는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무관용 원칙)'를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지난 5월 29일 원전 비리 수사에 본격 착수한 지 2개월여 만에 24명을 구속하고 11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원전 비리마저 '전 정권 비리' 의혹으로 흐르고 있다. 4대강 사업과 원전 수출. 이명박 정부가 강조했던 핵심 국책 사업들이 모두 '정권 비리'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토건 마피아'와 '원전 마피아' 위로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