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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동자 구속, 원세훈 불구속…'법의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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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동자 구속, 원세훈 불구속…'법의 평등'?

[기자의 눈] 22명 자살, 더이상 죽음 막자는 쌍차 해고자는 '사회적 강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5일 제 50주년 법의 날 기념식에서 "법은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한 보호막이 되어야 한다"며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같은 부끄러운 말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상용되지 않도록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공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며 "'법대로 하자'는 이야기가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는 수단이 아니라 약자가 스스로를 지키는 안전판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주옥같은 말들이다. 법앞에 만인은 평등해야 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한 보호막이 돼야 하며, '법대로 하자'는 이야기가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해 무려 700여 명이 이 연설을 듣고 앉아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박 대통령의 말을 경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박 대통령의 주옥같은 말처럼 돌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도주 우려 없는 쌍차 지부장은 구속, 도주 하려다 들킨 원세훈은 불구속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서울 중구청의 대한문 쌍용차 해고노동자 임시 분향소 철거를 방해한 금속노조 쌍용차동차지부 김정우 지부장이 구속됐다. 불과 이틀 전 민주주의의 꽃 대통령 선거를 방해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불구속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누가 구속되고 누가 구속되지 않아야 하는가. '법대로' 따져보자. 현행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은 구속의 이유를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한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라고만 규정돼 있다.

김정우 지부장은 대한문 앞 쌍용차 분양소를 '지키기 위해' 철거를 방해했으므로 최소한 도주의 우려는 없다고 하겠다. 숱한 철거 시도 과정, 그리고 철거 과정에서도 숱한 채증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으니, 증거 인멸의 우려도 없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속해야 한다고 결정한 서울중앙지법 전휴재 영장전담판사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집행유예기간 중 동종 범행을 반복한 점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 및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범 우려'라는 논리를 댔다. 누가 봐도 '괘씸죄'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원세훈 전 원장은 어떤가. 그는 자신의 휘하에 있던 국정원 직원이 경찰 수사를 받을 때 "유학을 가겠다"며 지난 2월 해외로 나가려 했다. 만약 그가 그때 미국에 갔더라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검찰이 밝혀낼 수 있었을까? 이는 심각한 일이다. 도주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사건 초기에 문제의 국정원 직원이 임의 제출 형식으로 노트북을 경찰에 제공할 때 증거를 인멸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전 원장은 구속 여부에 대한 법원의 심사조차 받지 않아도 된다. 검찰이 친절하게 불구속 기소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선 수사팀장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사실상 수사개입 했다"며 '하극상'을 일으켰고, 법무부와 검찰간 낯뜨거운 공방은 언론에 실시간 중계됐다. 법무부와 검찰이 만천하에 "원세훈 불구속은 정치적 타협입니다"라고 알린 셈이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한 검찰이다.

▲ 지난 4월 분향소 철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 김정우 지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이날 "모든 것을 다 잃었다. 하루를 사는 게 죽기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언제부터 강자가 됐나?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백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찰리 채플린의 '살인광시대'에 등장하는 대사이기도 하고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용한 수사이기도 하다. 중국에는 비슷한 내용의 속언까지 있다고 한다. 학살자가 자신을 정당화할 때 사용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가장 공정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법이 불공정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비꼬는 은유로도 사용된다.

다른 비유도 있다. 누군가 100만 원을 빌리면 빚이 되지만, 100억 원을 빌리면 '투자'가 되고 '경제'가 된다. 빚쟁이가 되느냐 사업가가 되느냐, 그것은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7년도 더 지난 얘기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일이 있다. 자장면을 배달하던 배달부가 음식대금 77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는데, 비슷한 시기에 636억 원을 횡령하고 그 중 139억 원을 "용돈"으로 썼다는 최태원 SK회장은 불구속됐다는 얘기다.

지난 2011년에는 버스요금 6400원을 받아 400원을 자기 주머니에 넣은 '범죄'를 두 차례나 저질렀다는 이유로 '잘린'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른적도 있다. 동전 몇개, 800원 횡령하면 해고당하는 게 당연한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법관들의 인식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 말대로 사회적 약자가 '법대로'를 외친들,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을 합쳐 자살자만 22명이다. 이들이 대한문에 분양소를 차린 이유는 더 이상의 죽음을 막겠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적 살인'인 해고에 맞서 그 진상을 규명하고, 또 여전히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들이 사회적 '강자'가 됐나.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대로 법 앞에 서 있는 김정우 지부장과 원세훈 전 원장은 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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