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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거대한 중증외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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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거대한 중증외상센터

[복지국가SOCIETY] 소득주도 성장의 성공을 위한 3박자 : 정책・예산・행정

지난해 판문점 귀순 병사를 기적처럼 살려냈던 이국종 교수(아주대학교 권역외상센터)가 지난 11월 8일 JTBC 뉴스 인터뷰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환경과 부실한 운영 실태를 고발했다. 귀순 병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것이 의사로서 한 인간이 발휘했던 극도의 정신력 덕분이었다면, 낙후된 시스템으로 많은 사람들이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에 이르는 현실은 또 다른 일상이다.

중증외상센터는 우리 사회의 단면

이국종 교수는 뉴스 인터뷰에서 세 가지 지점을 짚었다. 첫째, 행정 실무의 중간 관리자들이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고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둘째, 이런 불통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개선할 위치에 있는 기득권층, 특히 정치인들조차 이를 방치하고 있다. 셋째, 이로 인한 피해는 이 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블루칼라와 약자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위급 상황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바로 정상적인 행정 루트를 방치한 채 인맥을 동원한 이른바 '새치기'를 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해마다 편성되는 예산(Input)은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 것일까. 그는 예산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들어와서 봐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국종 교수는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과 장해가 일상화된 현실도 불행이지만, 이로 인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불합리한 행정으로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은 조직의 본래 목적을 반감시킨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닌 잘못된 행정의 뒤처리를 감당하는 데 예산이 낭비된다. 이런 현실이 과연 중증외상센터만의 문제일까. 경직된 행정, 비효율적 예산 운영으로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이 사회 시스템이 후퇴하거나 악용되는 사례는 많다.

▲ 이국종 아주대학교 권역외상센터 교수. ⓒ연합뉴스

빈곤 탈출을 넘어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로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조세 재정 정책의 소득 재분배 효과 국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저소득층은 정부의 조세 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80.5%가 여전히 저소득층으로 남아 있고 빈곤 탈출률은 19.5%에 불과하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 회원국(총 36개국 중 일본·터키 등 8개국 제외)의 평균 빈곤 탈출률은 64.1%였다. 조세 재정 정책을 통한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 효과'도 한국은 OECD 평균(62.1%포인트)에 비해 크게 낮은 11.5%포인트에 그쳤다. 이는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액 비중이 OECD 평균인 2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4%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의 기능인 소득 재분배와 사회 안전망 구축이 시급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두 가지 기능 모두가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은 428조 원이었다. 내년 예산은 9.7% 늘어난 470조 원이 될 전망이다. 증가분의 상당 부분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기반을 다지는 데 쓰인다. 일자리와 함께 취약 계층의 민생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보건・복지・고용 예산(12.1% 증가)과 취약한 산업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14.3% 증가) 부분이다. 우리나라 빈곤 탈출률, 소득 개선 효과의 성적표가 모두 낙제점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방향이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에서 일자리와 복지 지출의 규모를 대폭 증가시킨 이유는 한번 빈곤층으로 떨어지면 재기할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결국 양극화를 해결하고 보편적 복지가 작동하는 안전한 사회를 염두에 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이렇게 투입되는 예산을 가지고 소득 재분배 문제와 사회안전망의 강화를 어떻게 보통 사람들이 실감할 만큼 제대로 실현할 것인가다.

효율적 예산 운영을 하려면 행정 시스템을 개선해야

이런 목표들을 실현하려면 합리적 행정을 가로막는 적폐를 함께 개선해야 하는데, 그 개선 작업이 아주 더디다. 때로 시민들 비판이 빗발쳐도, 장관들을 질타해 봐도 번번이 국민들의 기대치를 넘지 못하곤 했다. 일각에서는 장관이 개혁하려고 해도 관료들이, 실무진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우연인지 이국종 교수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지난해 월남한 병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외상 응급의료 체계의 심각한 문제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도 장관이 나서서 예산도 추가 배당하고 직접 지시하고 챙겼지만, 관리자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1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인재로 사망하는 일도 없는 나라가 되려면 합리적 행정의 운영은 필수적이다. 이는 예산을 집행하는 주체들(공무원) 스스로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려는 열린 자세,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행정으로써만 가능하다. 국가 행정을 감시할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소득 주도 성장 기틀 다잡자

이국종 교수는 '권역외상센터 확충을 통해 대한민국은 생명의 위기에 처한 모든 사람이 최대한 가까운 시간에, 최대한 가까운 장소에서, 최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아 생명을 지키는 나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생명을 지키는 나라'가 되기 위해 변해야 할 부문이 비단 중증외상센터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려면 올바른 예산 편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근 통계청에 따르면 비소비 지출이 소득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3분기 비소비지출은 1년 전보다 23.3% 늘어난 반면 전체 가계소득은 4.6%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가계가 실제 소비에 쓸 수 있는 처분 가능 소득(총소득-비소비 지출)이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물가를 고려하면 실질 처분 가능소득은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높다.

고용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예산은 소득양극화, 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소득주도 성장의 기틀을 다잡기 위한 것이다. '예산 따로, 정책 따로, 행정 운영 따로'가 아닌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가야 한다. 그러려면 각종 민생 지표들도 꼼꼼히 살피면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자영업자, 영세 기업들 지원 정책이 엇박자를 냈던 경험이 있다. 경제 전반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는 정책이 곧바로 이어지지 않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경험도 마찬가지다. 치밀하게 준비해서 국가 예산이 우리의 삶을 개선해주리라는 꿈을 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김진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노동위원장은 노무법인 벽성 대표입니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박원순 이상이 토크, 서울의 미래 복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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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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