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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구하다 죽은 소방관은 국립묘지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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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구하다 죽은 소방관은 국립묘지 못 간다?

[119가 필요한 소방관들 ③] 트라우마 심각…"노동권 보장해야"

불. 사람들이 소방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단어다. 맞다. 소방관은 불을 끄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매일 목숨 걸고 불과 싸우는 이들이다. 그러나 소방관이 하는 일은 화재 진압만이 아니다. 불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다른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 또한 소방관의 몫이다. 예컨대 보행자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고층 건물의 얼음도 깨고, 가스 폭발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어김없이 출동한다.

이렇게 소방관은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공무원이다. 하지만 소방관이 어떠한 삶을 사는지 잘 아는 시민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순직이 이어지고 처우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현실도 이처럼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프레시안>은 소방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8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서울 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 대원들이 홍제동 가정집 화재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소방관들은 20여분 동안 화마와 결사적으로 싸웠다. 누군가 '집 안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다. 망설임은 없었다. 9명의 소방관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먹고 물을 먹은 벽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9명의 소방관이 매몰됐고 이 중 6명이 숨졌다. 소방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날이었다. 순직한 소방관 중 고(故)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 유리판 밑에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고
가날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소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희 과업을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와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스모키 린(A.W. 'Smokey' Linn)이라는 소방관이 1958년 출간한 시다. 미국 소방관들이 즐겨 암송하는 시라고 한다.

▲ 지난달 13일 오후 경기도 포천시 포천장례식장 고(故) 윤영수 소방교의 빈소에서 조문객이 절하고 있다. 이날 오전 4시 15분께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플라스틱 공장에서 난 화재를 진압하던 가산 119소방센터 구급대원 윤 소방교가 숨졌다. ⓒ연합뉴스

소방관은 목숨을 거는 직업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한국에는 3만7826명, 일본에는 15만9354명의 소방관이 있다(2011년 기준). 2007년-2011년에 한 해 평균 한국에서는 7명, 일본에서는 11.2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순직률(소방관 1만 명당 순직자 수)은 같은 기간에 일본이 0.7명, 한국이 1.85명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소방관 순직률은 일본의 2.6배가 넘는다. 일본의 인구당 소방관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고, 일본 자체가 상시적으로 지진 위험에 노출된 국가일 뿐만 아니라 2011년에만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29명(다른 해 평균의 4배)의 소방관이 순직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 소방관의 순직률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재난에 상시적으로 시달리는 일본 소방관들의 순직율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인구당 소방관 비율에서 일본이 한국을 압도하는 면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 비해 인력 사정에 여유가 있고, 이것이 사고 감소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 소방관들이 직면한 현실은 일본과는 많이 다르다. 순직률이 높고 평균 수명은 매우 낮다. 한국 소방관의 평균 수명이 58.8세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2001년 기준, 당시 한국인 평균 수명은 76.5세). 이는 많은 소방관이 자조 섞인 '질 나쁜 농담'으로 자주 인용하는 사례다.

고양이 구하다 순직하면 국립묘지 못 간다?

홍제동 사건 당시 소방관의 하루 생명 수당이 1000원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 화제가 됐었다. 지금도 소방관들의 생명 수당은 한 달에 5만 원에 불과하다. 소방방재청이 낸 '2012년 소방방재 통계'에 따르면 2011년도 공상자는 355명이고 순직자는 8명이다. 최근 5년간 공상자는 1666명이고, 순직자는 35명이다. 연평균 7명이 순직하고 있는 상황이다.

▲ 소방관 공상 및 순직자 현황 ⓒ소방방재청

순직한 공무원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현행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에는 "화재 진압, 인명 구조 및 구급 업무의 수행 또는 그 현장 상황을 가상한 실습 훈련 사망"이나 "상이등급 1급·2급·3급을 받고 사망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2008년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주택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했다가 복귀하던 소방차가 옹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났다. 갑자기 나타난 물체(야생동물로 추정)를 피하려다 발생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순직한 20년 경력의 고(故) 차주문 소방관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순직 인정과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했다. 경기도 이천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고장 난 소방차(펌프카)를 수리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진 여주소방서 고(故) 최태순 소방관도 마찬가지로 국가보훈처로부터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했다. 역시 순직 군경 지정을 거부당해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받지 못했다. 이 두 사안 모두 화재 진압이나 인명 구조 등의 업무 수행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더해 강원도 속초시의 한 건물 3층에 고립된 고양이를 구조하다 로프가 끊어져 사망한 고(故) 김종현 소방관은 국가 유공자로 인정은 받았지만, 인명 구조 작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당했다.

앞선 두 경우는 유가족들이 법정 싸움까지 한 끝에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 김종현 소방관의 경우, 유가족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 소방관의 사례는 다른 소방관들에게도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 사건은 소방관들 사이에서 이른바 '고양이 소방관'으로 통하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고양이가 됐든 뭐가 됐든 신고가 들어오면 안 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 이런 논란이 생기는 것 자체가 서글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소방관들은 평상시에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소방본부

소방관 '트라우마' 빨간불…그럼에도 소방병원 하나 없어

지난해 11월 15일, 문상필 광주광역시의원이 광주시 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광주시 소방본부 소속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1089명의 소방관 중 무려 24%에 달하는 258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수면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고위험군은 40명이나 됐다.

이 같은 실태 조사에 앞서 2011년 5월 전후 한 달 사이에 전남본부 소속 소방관이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전남 지역 소방관 3명이 연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당시에도 소방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같은 정신 질환이 원인으로 지목됐었다. 한 소방관은 "전국의 다른 시도도, 조금씩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실태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중앙소방학교가 현직 소방관 2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27%가 '직접 경험한 가장 충격적인 일'로 '처참한 시신을 목격한 일'을 꼽았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았던 경험',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소방관들이 겪는 일상적인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에 대한 체계적인 치료를 담당하는 기관은 없다. 일부 소방본부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경찰병원이나 군병원과 같은 '소방병원' 하나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소방관의 근무 환경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예컨대 구급차를 운전하는 경우 항상 사고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 소방발전협의회가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에 제출한 소방정책건의서에는 구급차의 교통사고 사례가 나와 있다.

일례로 2010년 3월 고속도로 교통사고 현장으로 긴급하게 출동하던 구조 버스가 신호를 무시하고 사거리를 통과하려 했다. 구조 버스는 다른 방향에서 오고 있던 차량에 사이렌을 울리고 교통 신호봉을 휘둘렀지만 결국 추돌 사고가 났다. 영업용 택시 4대가 연쇄 추돌한 사고였다.

이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돼 검찰에 송치됐다. 운전을 담당했던 소방관은 형사 합의를 보고, 반성문과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해 결국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당연한 사건 처리지만, 이 과정에서 소방관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방발전협의회는 "현행법의 내용은 긴급 차량의 경우 사고를 발생시키지 말고 빨리 가라는 것일 뿐, 일단 사고가 발생되면 면책이 없다.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 등 긴급 차량이 교통 법규를 다 지키는 준법 출동을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소방관들은 "구급차인데 왜 신호를 지키느냐"는 피해자 가족의 항의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방법은 마땅치 않다. 소방관들은 생명이 걸려 있어 촌각을 다투는 상황과 교통사고의 위험 사이에서 불안해할 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소방 및 경찰공무원이 소방기본법 및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른 긴급한 각종 출동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교통사고에 대해 공소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에 대해, 현재 교통사고 관련 특례를 줄여가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장은 "지금 소방관은 사고가 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다 자체 징계까지 받아야 하는 2중 부담에 시달린다. 사고와 관련돼 면책을 주는 게 불가능하다면, 명백하게 소방관의 과실이 아닐 경우 자체 징계를 면해주는 방식으로 현행 제도를 바꾸는 것 역시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문제는 노동 기본권…"직장협의회 구성 막지 말아야"

결국 근본 대책은 소방관들의 기본적 노동권을 보장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소방관은 노동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노조나 직장협의회가 없다. 경찰이나 군인이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소방 공무원의 전국공무원노조 가입 불허를 합헌으로 판단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6년과 2007년, 2009년 세 차례에 걸쳐 소방관의 단결권을 보장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부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소방 공무원들은 2008년 일부 일간지에 "소방 공무원 인권 사수를 위해 노동 단결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의견 광고를 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선진국의 경우 소방 공무원들도 단결권을 제한적으로나마 보장받고 있다. 미국에는 조합원 15만 명의 국제소방협회가 있다. 1873년에 결성된 전미소방기사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Fire Engineers)이 그 연원이다. 미국을 비롯한 상당수 서구 국가들의 소방 시스템이 민간 영역에서 발전해온 것을 감안하면 정책 결정 등에서 미국의 국제소방협회가 갖는 권위는 막강하다. 일본에는 한국의 소방발전협의회 등과 비슷한 임의단체인 전국소방직원협의회가 있다. 이들도 한국보다 사정이 낫다. 단체협약권이 일부 보장되는 일본의 공무원 노조, 혹은 공무원 직원 단체와 긴밀한 협의체 구성이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는 직장협의회보다 수준이 높은 소방관 노조가 있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 회장은 "하위직 소방공무원에게 노동 기본권이 허용돼야 한다. 현재는 일상적인 고충 사항도 얘기하거나 건의할 수 있는 창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소방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근무 환경 개선, 업무 능률 향상, 일반적인 고충 처리 등을 소속 기관의 장과 협의해 소방 공무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 등은 국가 긴급 재난 등을 담당하는 소방관에게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 소방 관계자는 "재난이 발생했는데 파업을 하는 정신 나간 소방관이 어디 있겠나. 정부에서 직장협의체 구성을 반대할 때 내는 전형적인 논리인데,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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