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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강당에서 울려 퍼진 노교수의 피아노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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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강당에서 울려 퍼진 노교수의 피아노 선율

이봉기 교수 앵콜 화답에 "해외순회연주 마치고 다시 오겠다" 약속

15일 군산소룡초등학교 강당에서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이봉기교수 ⓒ프레시안
오는 27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시베리아국립교향악단' 초청 협연부터 모스크바와 쌍트 페테르부르크 독주회, 12월 1일 미국 워싱턴 독주회, 12월 11일 브라질 상파울루 독주회 등 을 앞두고 하루 평균 7~8시간 연습을 하고 있다는 68세의 피아니스트 이봉기 교수.

7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연주 일정은 젊은 사람도 따라하기 힘들 정도의 강행군이다.

바짝 다가온 해외 순회연주를 앞두고 한창 연습에 열중하고 있어야 할 그가, 15일 오전 전북 군산소룡초등학교(교장 지혜란)를 찾았다.

이유는 지난 8일, 전북 김제문화예술회관에서 자신이 주최한 연주회가 공연장 사정으로 일정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한 채 군산소룡초 교사와 학생들이 빗속을 뚫고 김제까지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쳤고, 그 사정을 직접 듣게 된 이교수는 미안한 마음에 소룡초등학교를 직접 찾아 독주회를 열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먼저 도착해 피아노연주회가 열릴 학교강당을 돌아 봤다. 평소에 체육관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회가 열리기 직전 시간에도 학생들이 피구운동을 하면서 뛰어 놀고 있었다. 강당 단상위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아닌 일반형 피아노 한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조금 후에 도착한 피아니스트 이봉기교수를 프레시안이 만나 봤다.

프레시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초등학교 강당에서 연주회를 한다고 하니, 이목이 집중됐었다. 초등학교 강당에서 연주하기는 처음 아닌가?

이봉기: 내 고향이 군산이고 군산초등학교에 다녔다. 모교이기 때문에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교장으로 있을 때 불러서 군산초 강당에서 두 번 연주한 적이 있기 때문에 처음은 아니다. 그렇지만, 와서 보니 연주회로 적당한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한 피아니스트라면 관객이 몇 명뿐 이라도 가서 연주해야하고 때와 장소를가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이 진정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음악가라면 불러 주면 어디든 가서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여하튼 빡빡한 일정의 해외연주를 앞두고 아무래도 연습시간이 많이 부족할텐데, 이렇게 오게 된 배경은?

이봉기: 지난 8일 김제까지 내 연주회를 보려고 선생님과 아이들이 김제까지 찾아왔는데 헛탕을 치게 된 것은 분명 내 책임이다. 내가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도리다. 어른은 잘못한 것에 대해서 책임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정이 좀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왔다. 내가 워낙 잘못했으니까(웃음) 오늘 연주가 많이 기대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 히스토리가 있지만 열정적인 교사가 있어서 참 기쁘다.
15일 군산소룡초등학교 강당에서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이봉기교수ⓒ프레시안
프레시안: 아이들의 기대가 클텐데, 이 교수님 연주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는가?

이봉기: 아이들의 귀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곡을 연주하면서 간간이 설명을 해주려고 한다. 음악적인 형식이라든가 음악에 대한 상식을 조금이라도 넓혀주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면서 모든 것에서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다.

프레시안: 교수님의 연주를 보는 아이들에게는 평생 남게 되는 소중한 추억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어떤 아이에게는 교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한마디.

이봉기: 저는 지금까지 피아노치면서 70세가 다 되고 있는데, 음악 뿐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목표를 향해 꿈을 꾸고 항상 생각하면서 그 일을 사랑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목표점 도달한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다.

프레시안: 학교교육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본다. 음악교육에 대해서 한 말씀.

이봉기: 정서적으로나 생각하는 것에서 음악 이상 좋은 게 없다. 마음이나 머리에 심어줄 수 있는 것 가운데 제일 좋은 것은 음악이다. 음악을 듣고 접하면 정서적으로 차분해지고, 모든 일에 콘트롤할 수 있는 기본 힘이 생긴다.

아이들이 음악들으면서 정서적인 면에서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익스피어도 음악이 없는 세상은 암흑이라고 했잖은가? 기본적인 음악교육이 학교교육의 바탕이 돼야 한다고 본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봉기교수는 나비넥타이에 연미복으로 갈아 입고 체육관으로 쓰이는 강당으로 들어 갔다. 단상에 올라 선 이교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모짜르트는 피아노의 무엇?" 아이들의 대답은 정답만 피하면서 "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 등 온갖 대답을 쏟아 냈다.

피아노의 천재 '모자르트의 터키행진곡'을 시작으로 이교수는 쇼팽의 녹턴, 베토벤의 월광곡, 소녀의 기도, 엘리제를 위하여 등 주옥같은 선율의 곡을 재치있는 설명과 함께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쇼팽의 왈츠'를 앵콜곡으로 들려줬다.
연주를 마친 이교수가 학생대표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프레시안
아이들의 뜨거운 박수와 함께 따뜻한 연주회를 마친 이 교수는 즉석에서 '다음 연주회'를 약속했다. 이번에는 약속을 지키지 위해 조금은 조급한 마음에서 찾아 왔지만, 해외순회 연주를 마친 후에는 정식으로 다시 찾아와서 아이들과 교사들의 신청곡을 받아 연주하겠다는 약속이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앵콜공연을 기대하는 표정이다. "교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고, 신청곡을 받아 준다고 하셨으니 신청곡을 준비하겠다. 듣다보니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아는 곡이 나오면서 너무 기뻤다. 피아노를 좋아하는데 앞에서 직접 연주하시는 것을 보니 참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측은 이날 연주회를 앞두고 피아노가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이 교수께서 조율이 잘 됐다고 하고 연주회 과정에 별다른 지장이 없었기에 천만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이날 이봉기교수가 연주한 '피아노'는 아이들을 데리고 김제까지 갔다가 헛탕을 친 인솔교사(임두진 교사)가 5년전 군에 입대하기 전에 구입해 놓고 간 피아노였다고 한다. 그 피아노가 많은 인연이 켜켜히 쌓여진 이 날 드디어 제 값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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