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가 2019년도 예산안 심사 방침을 발표하며 종전까지의 입장과는 달리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100% 대상 아동수당 지급'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기자들이 귀를 의심하며 발표 내용을 몇 번씩 되묻는가 하면, 김성태 원내대표 면전에서 "지금까지 비판하던 '민주당 포퓰리즘'이랑 뭐가 다르냐"는 질문까지 나왔다.
한국당 원내지도부는 2일 오후 김 원내대표와 함진규 정책위의장, 장제원 예결위 간사가 함께 '예산안 심의 방향'을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내용과 정부 편성 예산안 내용을 비판하며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려는 눈속임 예산", "땜질하고, 쏟아붓고, 외상으로 소 잡아먹는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정부의 '가짜 일자리' 예산 8조 원과, 핵 폐기 없는 일방적 대북 '퍼주기' 5000억 원 등 세금중독 예산 20조 원을 삭감하겠다"고 벼르며 "소득주도성장위원회로 대표되는 위원회 중독 예산, 정권 홍보에만 치중하는 전시성 홍보성 예산도 삭감하겠다"고 했다. 일자리 예산과 대북사업 예산에 대한 삭감 방침은 충분히 예상됐던 바다.
의외의 내용은 감액이 아닌 증액 쪽에서 나왔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7대 분야 20개 증액 사업을 선정했다"며 그 첫머리에 저출산 대책을 놓았다. 그는 "임산부 30만 명에게 '토털 케어' 카드 200만 원을 지급하고, 출산 장려금 2000만 원을 일시 지급하는 예산을 세우겠다"며 "초등학교까지 아동수당을 확대, (현행) 취학 전 6세까지 소득 하위 90%에게 월 10만 원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소득에 관계없이 초등학교 6학년까지 확대하되 3년내 월 30만 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해 단박에 기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현행 아동수당 지급 대상이 '소득 하위 90%'인 것은 다름아닌 한국당의 반대 때문이었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6세 이하 아동이면 누구나 100% 지급하자고 했으나, 한국당은 지난해 2018년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상위 10%는 제외하고, 지방선거 이후부터 지급하자'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그런데 1년 만에, 심지어 최근까지도 '10% 제외는 타당한 결정이었다'는 옹호가 당 내에서 나오고 있는 가운데 원내지도부가 전격적으로 전향적 입장 표명을 한 것.
기자들은 황당한 듯 질문을 쏟아냈다. "아동수당은 보편적 복지 원칙으로 돌아섰다고 기사를 써도 되나?", "(김 원내대표가) 만날 비판하던 '민주당 포퓰리즘'과 다른 게 뭐냐?", "상위 10% 배제하자는 건 작년에 한국당이 주장한 것 아니냐?", "국정감사 때까지만 해도 한국당 복지위원들이 '소득상위 10% 걸러내는 데 드는 행정비용이 과대 집계됐다'고 했는데?" 등등.
김 원내대표는 이에 "저출산 문제는 재앙"이라며 "한국당은 가짜 일자리 예산과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세금 중독 예산을 삭감시킴으로써 국가적 재앙인 저출산을 극복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 과거 자신들을 비판했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해 "앞으로 (소득 상위) 10%를 구분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비용적 문제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출산에 관한 부분만큼은 소득에 관계 없이 예산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며 "청소년, 중학생 역시 3년 내 30만 원까지 지급해서 초등학교, 아동수당과 내용을 맞추겠다"고 했다. 재원과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17만4000명 공무원 증원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며 그는 "한국당은 저출산에 '올인'하겠다"고도 했다.
'왜 작년과 입장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김 원내대표는 "정책적 입장이라는 게…"라며 "보세요. 옛날 얘기 가지고 말하면 아무 것도 개선하지 못하죠"라고 태연히 대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당도 바꿀 건 바꾸죠." 장제원 예결위 간사도 가세했다. "무상급식은 소득 구분 없이 주잖아요. 같은 개념이죠. 무상급식(과 같은) 차원에서, 학교에 들어가면 보편 복지로 가야 한다는 입장인 거죠."
장 의원은 "저출산 대책 관련 증액은 총 15조 원 정도"라며 "'가짜 일자리 예산'을 삭감해 현금성 지원을 집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출산은 더 이상 놔두면 (국가) 존폐의 위기라 마지막 수단, 내년에 정말 집중해서 극약처방을 한 번 해보자(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 원내대표는 회견 말미에 "만날 비판하던 '민주당 포퓰리즘'과 뭐가 다르냐"고 한 기자가 묻자 "저희는 이제 야당이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저희는 (여당 시절) 재정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야당이 된 마당에서도 국가 재정을 위해 헌신적인 입장이었지만 민주당은 집권당이 돼서도 '묻지마' 예산편성을 하고 있다"며 "저희는 일단 쓰고 보자는 무조건적 포퓰리즘은 하나도 없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재앙인 저출산 극복을 위한 획기적 예산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고, 문재인 정권과 포퓰리즘에서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저희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고 맞받았다.
한편 한국당은 저출산 대책과 함께 증액해야 할 7대 분야 중 하나로 사회간접자본(SOC)를 들었다. 김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인 22조 원까지 (SOC 예산을) 늘리겠다"고 했다. 함 의장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현 정부 들어 일자리와 복지 예산은 잔뜩 늘리면서 SOC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결과 올해 성장률이 최대 0.2%까지 내려갈 수 있음을 기재부가 어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시인했다"며 "초단기 가짜 일자리를 양산할 게 아니라 국가 전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지역경제에 파급 효과가 큰 인프라 확충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SOC 예산 증액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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