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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독자생존'의 최후...유럽 오펠 사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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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GM '독자생존'의 최후...유럽 오펠 사례를 보라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산업은행은 GM 독주 막을 장치 없나

아래 그림은 GM이 지난해 3월에 공개한 사업 포트폴리오 도표이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중요한 도표를 공개했을까? 갑자기 유럽 자회사인 오펠(Opel)을 PSA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시점이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유럽에서 철수한다고? 제정신인가?" 언론사 기자와 전문가들 질문이 쇄도했고, GM은 이 도표로 답한 것이다.


도표를 보면 GM은 가로축(수익성)과 세로축(GM 사업능력) 2가지를 기준으로 투자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있다. 그래서 2가지가 높은 것은 초록색(북미 트럭·SUV, 중국, 남미, 상용차, 캐딜락, AV/TaaS)으로 나타내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고, 검은색(오펠·복스홀, 쉐보레 유럽·러시아 등)으로 나타낸 곳은 아예 가능성이 없으니 철수(Exited)한다는 의미이다.

즉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던 질문, 유럽 철수 이유에 대해 “수익성이 낮으니 과감하게 버린다”고 답한 것이다. 수익성 높은 다른 많은 사업들이 있으며, 유럽을 포기함으로써 입을 타격보다, 다른 곳에 투자를 늘려 얻을 이익이 훨씬 많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도표를 보는 한국 노동자들 관심은 붉은색에 꽂혔다. 2가지 기준 점수가 낮은 사업부문은 붉은색으로 나타내 투자를 축소한다는 것인데, 거기에 북미 승용차(NA Car)와 함께 ‘일부 GMI 시장(Select GMI Markets)’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한국GM은 호주·태국·인도 등과 함께 GM International, 즉 GMI에 속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2~3년 사이 GMI 부문에서 엄청난 구조조정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GM은 호주에서 생산공장을 폐쇄하고 디자인센터만 남겼고, 인도에선 2개 공장 중 1개를 폐쇄하고 500명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뒤 상하이차(SAIC)에 매각해 버렸다. 한국에선 군산공장이 폐쇄되었고, 태국에선 승용차 부문을 버리고 트럭·SUV 부문만 살리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6000명 이상의 GM 노동자들이 정리해고·희망퇴직 등으로 일자리를 상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을 분리한다면?

그런데 최근 저 도표가 바뀌었다. CEO 매리 바라(Mary Barra), 사장 댄 암만(Dan Ammann)이 각종 국제 컨퍼런스에서 사용하는 프리젠테이션에 아래와 같은 새로운 도표를 소개하고 있다. (프리젠테이션 파일은 GM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음.)


투자 축소를 의미하는 붉은색이 사라진 대신 ‘Maintain(유지)’ 항목, ‘New(신규)’ 항목이 새로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신규 사업부문에는 전기차(Electrification)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전기차를 포함해 남미(South America)와 캐딜락(Cadillac) 부문은 화살표를 사용해 수익성과 사업능력을 적극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놓았다.

그런데 지난해 붉은색으로 투자를 축소한다고 했던 ‘일부 GMI 시장(Select GMI Markets)’이 검은색, 즉 철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와 함께 ‘남아 있는 GMI(Remaining GMI)’가 새로 생겨 노란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GMI 부문 일부에 대해서는 철수하고 나머지는 남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GM은 GMI 내의 각 법인들을 면밀하게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익성이 안 된다고 판단하는 곳은 과감하게 버리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해온 것이다.

GM의 투자 우선순위와 기준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하필 한국에서는 연구개발 법인을 분리한다고 한다. GMI 내에서 살릴 곳과 버릴 곳을 가리고 있는 지금, 멀쩡한 회사를 생산 법인과 연구개발 법인으로 쪼갠다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2개의 법인을 놓고 살릴 곳과 버릴 곳을 가리는 공포영화가 시작될 것이다.

연구·개발과 생산의 극단적인 분리

만일 법인이 쪼개진다면 단순히 회사만 2개로 분리되는 게 아니다. 장기적으로 한국GM의 생산 법인과 연구·개발 법인은 그 어떤 인연도 맺지 않게 된다. 그동안 한국GM이 갖고 있던 중요한 장점, 즉 생산과 연구·개발의 긴밀한 결합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한국GM의 공장별 생산 라인업, 그리고 각 차량의 연구·개발 주체를 아래와 같이 표로 나타내 보았다. 우선 군산공장이 폐쇄되기 전까지의 생산 라인업을 보면, 부평 2공장에서 생산되는 말리부를 제외하면 트랙스·앙코르·아베오·캡티바·스파크·다마스·라보·크루즈·올란도 등 모든 차량이 한국GM에서 개발된 차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2020년에 트랙스 후속으로 출시될 코드명 9BU/Yx 차량까지도 한국GM이 연구·개발을 책임졌다. 그런데 이 차량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한국에서 연구·개발을 책임지는 차량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당장 9BU/Yx 의 후속 차량부터는 한국 역량의 지원이 일부 있긴 하겠지만 GM 본사가 직접 연구·개발을 지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창원공장에서 생산 중인 스파크는 ‘마티즈’라는 이름으로 생산될 때부터 한국이 연구·개발한 차량이다. 그러나 창원공장에서 2022년부터 생산 예정인 C-CUV는 한국에서 개발되지 않는다. 이 차량 역시 한국 역량의 일부 협력 아래 아마도 본사에서 직접 핸들링 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차량들은 이미 단종되었거나(크루즈·올란도·캡티바), 조만간 단종이 예정된 차량들(다마스·라보)이다. 아베오의 경우 한국GM이 연구·개발을 책임졌으나 차세대 아베오의 경우 유럽 법인인 오펠로 개발 주체가 변경되었다. 그러나 오펠이 PSA에 매각되면서 차세대 프로그램은 흐지부지된 상태이며,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아베오도 후속 차량 없이 단종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2022~2023년 경이 되면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량 중 한국 법인이 연구·개발을 책임지는 차량은 단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런데 최근 한국GM 경영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본사로부터 ‘글로벌 컴팩트 SUV’ 연구·개발을 한국이 배정받았다고 한다. 이 차량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생산 예정인 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량은 한국에서 연구·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데, 한국에서 연구·개발이 되는 차량은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즉, 생산과 연구·개발 사이에 모든 인연이 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생산 법인과 연구·개발 법인을 분할 매각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게 과연 기우에 불과할까?

"이건 오펠(Opel)의 DNA를 없애는 행위"

다시 오펠 얘기로 돌아가 보자. GM이 오펠을 PSA에 매각한 뒤에 오펠은 새로운 모기업 밑에서 잘 적응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7월, PSA는 2020년까지 수익성 회복의 일환으로 오펠의 R&D 센터를 분리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아, 이거 한국에서 우려하고 있는 사태 전개와 뭐 이렇게 똑같단 말인가!

오펠 노동자평의회, 그리고 독일 금속노조(IG Metall) 모두 단단히 뿔이 났다. GM을 PSA에 매각할 때에도 파업이나 쟁의를 벌이지 않았던 이들은, R&D 센터를 매각한다는 방침에 “파업 불사”를 선언한 상태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R&D 센터 매각을 두고 “오펠의 DNA를 없애는 행위”라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오펠 노동자들이 보기에 PSA가 천년만년 오펠을 쥐고 있진 않을 테고, 언젠가는 팔아치우거나 떠나게 될 텐데 그렇다면 ‘독자생존’을 위한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신차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R&D 센터를 매각하고 나면 생산공장만 남는 꼴이 되어 독자생존 능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것조차 한국의 상황과 너무 똑같다. GM이 한국 법인을 언제까지고 유지하진 않을 텐데, 그렇다면 한국GM 역시 독자생존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역량이 한국GM이라는 법인 한울타리 안에 함께 있어야 한다. 어쩌면 GM이 노리는 것 중 하나가 이것일지도 모른다. 한국GM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뿌리부터 잘라버리는 것!

▲ 미국 자동차 회사 인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는 지난 3월 유럽 자회사인 오펠(Opel)을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인 PSA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독자생존 가능성 잘라내기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0년 말, 산업은행은 GM 본사와 기나긴 협상을 거쳐 ‘GM대우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은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았던 것 같다.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내용을 설명하던 산업은행 부행장은 “GM이 철수하더라도” GM대우가 독자생존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연신 힘주어 설명했다.

2014년에 산업은행이 국회 정무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체결된 기본합의서에는 GM 본사로부터 △GM대우가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에 대한 항구적인 무상사용권 CSA가 해지되더라도 비용분담율에 따른 로열티 수령권을 인정받았다고 적시되어 있다.

GM이 철수해도 한국 법인이 함께 개발한 차량은 별도 비용이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고 한국GM이 생산·판매·수출을 할 수 있다. 아울러 그런 차량을 GM의 다른 나라 법인이 생산할 경우 GM이 한국에서 철수한 후에도 로열티를 한국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뭘까? 그렇다. 이명박 정권은 정말로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때에 대비한 계획을 세워두었던 것이다.

지난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만약에 연구·개발 법인이 분리될 경우, 위에 적시된 권리는 유효한 것일까? 유효하다면 과연 어떤 법인이 그 권리를 승계하게 될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어떤 법인이 승계하더라도 이 권리는 망가지고 만다. 이를테면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 즉 스파크와 같은 차량을 GM이 철수한 뒤에도 생산·판매·수출할 수 있는 권리를 놓고 따져보자. 이 기술을 사용해 생산을 할 수 있는 권리이니 생산 법인이 승계해야만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만 하면 끝인가? 이미 구세대가 되어버린 스파크를 계속 생산하려면 소비자 기호에 맞게 변경 설계를 해줘야만 원활한 판매를 기대할 수 있다. 변경 설계에 따른 부품 변경이 있을 수도 있고, 불량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있어야 한다. 즉, 연구·개발 역량이 함께 붙어 있지 않는 한, 스파크를 생산·판매·수출할 수 있는 권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GM의 법인 분리 강행은 한국GM의 독자생존 가능성이 뿌리채 뽑히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GM의 철수에 대비해 체결된 2010년 협약, 그리고 그 협약 내용에 따라 변경된 비용분담협정(CSA)은 사실상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2010년 협약, 그리고 당시 CSA 개정은 다름 아닌 산업은행이 주도한 것이었다. 그 시절 그 일을 이제는 모두 잊었단 말인가?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제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입버릇처럼 ‘독자생존’을 강조한다. 즉,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을 도와주는 것일 뿐 해당 기업을 책임질 수는 없으며 종국에는 해당 기업이 독자생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그래, 2010년에 산업은행이 체결한 협약은 정말로 ‘독자생존’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올해 체결한 협약은 독자생존 가능성을 더 넓혀놓았는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지난 10일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동걸 회장은, 가처분신청에서 패소하더라도 GM이 강행하는 주주총회에서 법인 분리 관련 ‘비토권’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만일 독자생존의 길을 넓혔다면 일이 이렇게 진행되기 전에 이미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재깍재깍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제 또다시 한국GM에 운명의 주가 시작된다. 10월 17일 경이면 산업은행의 가처분신청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기각될 경우 GM은 10월 19일 법인 분리 주주총회를 강행할 것이고, 산업은행은 비토권을 행사한다고 할 것이다. 만일 GM이 그 비토권조차 인정할 수 없다며 주주총회 의결까지 강행한다면?

이동걸 회장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렇게까지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GM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산업은행은 경영에 대한 견제장치를 확보했다며 자랑스럽게 언론에 발표한지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GM이 저런 막가파식 행보를 취하는데 산업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가처분신청과 비토권 사용 의사표시밖에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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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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