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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에 일하고 싶은 노동자는 없다

[기고] '기업 살인법' 도입이 필요하다

역사적인 폭염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8월 2일 기준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의하면 올해 2799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중 35명이 사망했다. 온열질환의 발생현황을 보면 야외에서 2114명이 발생했고 이중 절반이상이 작업장이나 논밭이었다. 즉 야외에서 일하다 온열질환이 발생하는 경우가 제일 많은 것이다.

일하다가 사망한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7월 16일 오후 4시 21분쯤 세종시에서 보도블럭 작업을 하던 39세 노동자가 열사병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이튿날 사망했다. 7월 17일 전북 전주시의 한 건설현장에서 66세 노동자가 정신을 잃고 5m 높이에서 쓰러져 추락 사망했다.

7월 21일 오전 10시 반쯤 경북 봉화군 죽미산 정상 부근에서 풀베기작업을 하던 56세 노동자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사망했다. 같은 날 경북 예천군에서 32세 노동자가 당일 새벽 4시부터 태양광 장비 설치 작업을 마치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온열 질환 증세로 쓰러져 26일 사망했다.

7월 23일에는 오후 12시 50분경 충북 괴산군에서 일하던 베트남 외국인 노동자가 담배 밭에서 담뱃잎을 수확하던 중 쓰러져 사망했다. 7월 30일 오후 1시 30분경 광주광역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66세 노동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다음날 사망했다. 8월 1일에는 30세 드라마 제작 노동자가 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일간 야외에서 76시간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폭염 속에서 일하고 싶었던 노동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야외작업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올해 우리나라에 번역된 저서 <폭염 사회>에서 폭염에 의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 문제라고 진단 내린다.

ⓒ연합뉴스

어떻게 하면 폭염에 의한 노동자 생명을 구할까

어떻게 하면 '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시정하고 폭염에 의한 노동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쉬운 문제는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불평등 문제는 갈수록 심화되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불평등하다는 미국 다음이다. 그러나 생명보다 소중하고 꼭 지켜야 하는 가치는 없기에 방법을 꼭 찾아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노동자들의 협상 능력을 높여 단체 교섭을 통해 폭염에 대비하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10%인 노조가입률을 대폭 끌어올리고 실질적인 산별노조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25%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사장님들이 많은 나라가 노조에 호의적일 수 없다. 또한 국내에 70만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들의 존재도 노조가입률을 올리는데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노조가입률이 높아지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와 다단계 하청구조가 노노갈등을 유발하고 있어 통합 산별노조 성립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상당한 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자체 힘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두 번째는 노동부를 중심으로 행정서비스를 강화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미 노동부에 폭염에 대비한 각종 지침이 있고, 노동부 고시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폭염을 대비하기 위한 물, 그늘, 휴식이 명문화 되어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폭염에 의한 노동자의 건강악화와 사망을 줄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점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는 전체 노동인구대비 공공부문 고용 비중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 중에서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복지와 의료분야에 비해 노동서비스의 확장은 요원하기만 하다. 새로운 정부에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작년 기준 1300여명의 근로감독관과 408명의 산업안전감독관을 임기 내 두 배 이상 증원하기로 하고 작년 추경 때 800명의 추가인원을 신청했으나 실제 올해 실제 증원된 근로감독관은 240명으로 알려져 있다.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전 예방적 지도점검이 이루어져야 하는 데 현재의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근로감독관이 현장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가장 핵심적인 작업중지권이 법률로 보장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

세 번째로 작업중지권을 법률로 보장하면 어떨까? 어쩌면 기술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으로도 보인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6조에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근로시간 제한 규정이 있으나 폭염은 해당되지 않는다. 폭염을 유해위험작업으로 추가하는 것은 시행령만 개정하면 가능하므로 법률 개정보다 더 용이하다. 동법 제 26조는 작업 중지를 다루고 있다. 이 항목을 개정하여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보다 명료하게 보장하고 해당 상황에 폭염을 추가하여 법률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을 바꾸는 것에 대한 경영자 측의 저항이 있고 상대적으로 용이한 시행령 개정도 쉽지 않다. 최저임금논란에서 보듯 법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후속조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법을 개정하기 전에 작업 중지 시 노동자의 임금보전이나 기업의 피해보상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나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집행에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들은 혜택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혜택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의 생명은 책임져야

마지막으로 '기업 살인법'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기업 살인법'은 나쁜 사업주를 처벌하는 법이라기보다는 사업주에게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동기를 만들어 주는 법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과 하청제도를 받아들였고 이에 일부 노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방법을 잃어버렸다. 같은 맥락으로 산업안전보건서비스를 규제로 인식해 최소화시켰다.

법 개정과 관련해서 기업과 관련됐다면 기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사전조치를 명확히 해야만 개정하는 엄격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기업을 위해서 국가와 국민이 모든 것을 희생했다면 최소한 사업주는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의 생명은 책임져야 한다. 물론 도입이 쉽지는 않겠지만 국민의 지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폭염은 예측 가능한 위험이다. 예측 가능한 위험에 노동자를 방치하는 것은 작년, 제작년 우리 국민이 광화문 광장에서 그토록 분노했던 ‘비정상’이 아닐까? 유치원 차량에 방치되어 사망한 유아 사건에 전 국민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7건의 사망 사례로 별 다르지 않다. 덩치만 클 뿐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의 지혜를 모아 폭염 속에서 꺼져가는 노동자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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