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 학교 폭력의 ‘사회적’ 효과, 도시 빈민의 '사회적' 지위 … 우리는 살면서 '사회적(social)'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만큼 이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도 다양해서, 한 가지로 뜻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다만, 위의 용법을 보건대 기업·학교폭력·도시 빈민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책임·효과·지위를 따지기 위함이라는 점을 어렴풋이 읽을 수 있다.
어떤 의제가 ‘사회적’ 쟁점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넓은 사회 구성원의 관심을 얻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민들 다수가 그 쟁점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한다. 전문가·정부기관·의회 관계자들은 평범한 시민들이 토론을 벌일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름표만 붙인다고 ‘사회적’?
오늘 <인사이드 경제>가 주제로 선택한 것은 ‘사회적’ 대화이다. ‘사회적’이란 수식어는 보통 많은 사회 구성원의 토론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대화’라는 단어에 ‘사회적’이라고 이름표를 붙여놓았으니, 말로만 보면 TV 토론 몇 번쯤은 기본적으로 진행되었어야 할 법한 주제이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사회적 대화’를 검색하면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고 있다는 뉴스가 대부분이다. 도대체 그놈의 ‘사회적 대화’가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시급한 의제로 뭘 논의하려 했는지, 언제쯤 결과와 성과를 내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웬만한 분들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불참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역대 정권이 사회적 대화기구로 활용해온 '노사정위원회'가 최근에 ‘경제사회노동위원회’라고 간판을 바꿔달기로 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사회적 대화는 과연 ‘사회적’인가?
만일 사회적 대화가 사회적 쟁점이 된다면 그 모든 공은 민주노총에 돌려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결정 덕이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민주노총이 불참하지 않았다면 ‘사회적 대화’는 결코 ‘사회적 쟁점’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더 ‘사회적’인가
노사정위원회 간판이 바뀌는 사실을 아는 분도 많지 않으니, 간판이 바뀌게 된 토론 과정과 내용을 아는 분은 더더욱 없다.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회적’이라기보다 ‘정치적’ 논의와 판단만 보인다. 기존 노사정위원회 20년 오욕의 역사가 있기에 이걸 그대로 쓸 수는 없으니 간판을 바꿔달자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럼 그 판단은 누가 했을까? 고용노동부와 노사정위원회가 정부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노동을, 경총과 대한상의가 자본을 대표하여 6자가 모여 결정한 것이다. 이름을 바꿨으니 구성도 약간 바뀌었고, 역할도 대동소이 하긴 하지만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가 ‘환골탈태’를 했다고 할 만큼은 전혀 아니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6자가 모여 합의한 노사정위 명칭·구성·역할 변경 내용은, 19대 국회 때 김성태 의원(당시 새누리당)이 제출했던 노사정위법 개정안과 대동소이 하다는 점이다. 만일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 논의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면 누구나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19대 때는 왜 이 내용으로 합의하지 못했나요? 새누리당이 낸 거라서?”
사회의 관심 밖에 있었기에 어떻게 만들든 쟁점이 되지 못했던 노사정위 개편 문제와 달리,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는 일찌감치 팽팽한 긴장감으로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이 쟁점으로 사회적 대화가 진행된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지난 1년 동안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전문가들까지 동원하여 집중 토론을 진행했지만 합의는 불가능했다. 오히려 그런 사회적 대화를 무시하고 정부·여당이 국회 입법에 나서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사회적 쟁점이 된 것이다.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노사정위 개편처럼 큰 문제없이 사회적 대화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때엔 사회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쟁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사회적 대화를 무시하고 최저임금법을 개악할 때, 그리고 그 개악에 항의하며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박차고 나올 때에나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이 기막힌 역설 말이다.
최저임금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화기구(?)
최저임금위원회는 국무총리실에 설치된 정부 위원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위원회가 ‘사회적 대화기구’로 불리기 시작했다. 필자의 기억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그 누구도 이 위원회를 두고 ‘사회적 대화’ 운운하는 이들이 없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갑자기 대화기구로 부르는 것인데, 그 이유를 따져보면 아전인수가 따로 없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박차고 나왔으나, 오는 9월에나 출범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가 당장은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정말 급한 건 최저임금위원회였다. 그러다보니 청와대와 정부·여당의 논리가 이렇게 된 것.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라. 우선 최저임금위원회부터.” 이렇게 해서 최저임금위원회는 사회적 대화기구로 둔갑(?)했다.
뭐, 이름 갖고 시비 거는 건 이쯤 해두자.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다. 여기에서 <인사이드 경제>를 쓰고 있는 필자의 독특한 이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최저임금위원회 교섭과 토론에 참여해 왔다. 비록 최저임금위원이 아니라 참관인 자격일 뿐이라 발언권은 없었지만 적어도 충실한 ‘목격자’ 역할은 할 수 있었다.
2015년과 2016년은 박근혜 정권, 그리고 2017년은 문재인 정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 것이니 두 정권의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아니, 두 정권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도대체 그게 뭘까. 그건 당연히 청와대와 정권 핵심부가 최저임금 결정에 매우 깊숙이 관여한다는 점이다. 이건 역대 정권 누구나 그랬던 것이라 공통점이라 얘기하는 게 멋쩍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수단을 통해 정권의 의지를 관철할까? 필자가 보기에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모두 주요하게 2가지 수단을 동원했다. 27명의 최저임금위원 중 9명의 공익위원에 대한 임명권을 정부가 행사한다. 이로써 정권의 의지를 관철할 '사람'의 문제가 해결된다. ‘공익위원’이 아니라 사실상 ‘정부위원’이라는 지적은 역대 모든 정권에 공통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27명 중 9명에 불과한 공익위원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최저임금 액수를 좌지우지할까? 최저임금 액수 관련 노·사 간 의견 차이는 해가 갈수록 증가해왔다. 따라서 합의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몇 차례 공방전이 오가다가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할 시한이 다가오면 그때 바로 공익위원들이 나선다. 이른바 ‘심의촉진구간’이라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양 노총을 뛰쳐나오게 만든 심의촉진구간
막바지에 다다르면 공익위원들은 노·사 간 의견차를 좁힌다는 명분으로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한다. 내년 최저임금은 얼마에서 얼마 사이에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며 의견을 내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보이지만, 역대 최저임금이 항상 제시된 구간 안에서만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강제 조정’의 일환이다.
필자가 관여했던 최저임금 교섭 중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년과 2016년에는 공익위원들이 아래 그림에 표시한 것처럼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했다. 나름대로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기준인 △유사근로자 임금 △소득분배율 반영을 위해 △협약임금상승분 △소득분배개선분 수치를 활용했다. 여기에 ‘협상조정분’ 개념을 도입해 노·사 간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익위원들은 2015년에는 6.5%~9.7%, 2016년에는 3.7%~13.4%를 심의촉진구간으로 제시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양 노총이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식 요구안으로 내건 시점이 바로 2015년부터였다. 1만 원을 당장 실현하지 않고 3~4년에 걸쳐 달성하더라도 최소한 두 자릿수 인상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2015년 상한선은 아예 한 자릿수(9.7%)였다.
양 노총 소속 노동자위원들이 인내할 수 있는 수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교섭장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2016년 역시 상한선이 두 자릿수(13.4%)로 제시되긴 했으나 이는 노동자위원들의 퇴장을 막기 위한 립서비스였을 뿐임이 교섭과정에서 모두 드러났다. 노동자위원들은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열망을 무겁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박차고 나와 일궈낸 ‘사회적’ 대화
양 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공익위원들은 사용자위원 제시안인 7.3% 인상(시급 6,470원)에 손을 들어줬다. 심의촉진구간의 평균치(8.5%)보다 낮은 액수였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제기가 나온다. 어차피 극복할 수 없는 촉진구간이라면, 끝까지 협상장에 앉아서 단돈 10원이라도 올리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최저임금위원회 ‘내부’만 본다면 그 얘기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돈 10원이라도 올리려는 노력을 포기한 대가로 민주노총은 훨씬 큰 것을 따낸다. 2016년 총선에서, 그리고 2017년 대선에서 거의 모든 정당들이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채택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한 대통령이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만일 사회적 대화기구(?)에 앉아 노·사 간 합의를 하거나, 공익위원이 제시한 구간 중 높은 쪽에 표결하는 일 따위를 벌였다면? 그래, 2016년과 2017년 최저임금이 10~20원 더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은 그저 한 푼이라도 높은 최저임금을 따내기 위한 전술적 슬로건일 뿐, 그 누구도 진정성을 인정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박차고 나옴으로써 민주노총은 진정한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500만 서명운동, 장그래 대행진 등 수많은 기획사업을 통해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과 만나며 최저임금 1만 원에 대한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 밑바닥 여론과 민심을 움직이는 것, 더 많은 사회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회적’ 대화가 아닌가. 그런 대화를 통해 최저임금 1만 원을 움직일 수 없는 대세로 만들어낸 것이다.
2015년, 2016년에 저런 심의촉진구간이 제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2016년과 2017년에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글자는 세상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주요 정당의 후보자들 공약으로, 주요 언론사의 분석 기사로 말이다. 그러니 <인사이드 경제>는 묻고 또 묻는다.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사회적 대화’는 어느 쪽인가 말이다.
'답·정·너'와 '죄수의 딜레마'
2017년이 되었고 정권도 바뀌었다. 2016년에 최저임금위원회를 박차고 나왔던 노동자위원들도 복귀하게 된다. 박근혜 정권 시절과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을까? 어쨌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약속한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재차 삼차 공약 이행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두 자릿수 인상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일부 공익위원 교체가 이뤄지며 ‘사람’도 바뀌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교섭 마지막 날인(7월 15일), 공익위원들은 또다시 ‘심의촉진구간’을 활용하고 나섰다. 그런데 공익위원들의 꾀는 2016년보다 더 진화했다. 예년과 달리 상하한선을 모두에게 공개하지 않고 노동 쪽에는 상한선만, 자본 쪽에는 하한선만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위 사진은 당시 노동자위원들이 받은 (상한선이 적힌) 쪽지이다. 시급 7650원, 즉 공익위원들은 18.2% 인상을 상한선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에게 전달된 하한선은 얼마였을까? 사용자위원들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위원들이 전달받은 상한선도 아마 <인사이드 경제>에서 처음 공개하는 것 같다.
솔직히 필자는 이 대목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당시 공익위원들은 노·사 양측에 각각 상·하한선을 전달했을 뿐, 이를 비밀에 부쳐달라는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매년 공익위원 심의촉진구간은 최저임금위원만이 아니라 언론에도 공개되었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은 상·하한선의 구체적인 근거와 수치까지 공개했다. 오히려 이들 수치가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노동자위원들은 단순히 숫자만 전달받은 것이 아니다. 상한선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 어떤 공익위원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상한선을 그대로 적어도 공익위원 다수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도 함께 전달받았다. 그렇다면 사용자위원들도 7000원가량의 하한선 수치와 함께 하한선보다 높게 적어내야 한다는 얘기를 전달받았을 것이다.
이제 노동자·사용자위원은 각자의 밀실에 처박혀 고민에 빠진다. “도대체 얼마를 적어내야 공익위원 다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거야?” 게다가 당시 공익위원들 일부는 박근혜 정권이, 일부는 황교안 직대 체제가, 일부는 문재인 정권이 임명해 여러 성향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위원은 하한선보다 약간 높은 7200원을 적어냈고, 노동자위원은 상한선보다 120원 낮은 7530원을 적어냈다. 노·사 양쪽이 적어낸 수치가 공개되었고, 이를 놓고 표결이 했다. 결과는 15대 12로 노동자위원의 안이 선택되었다. 노동자위원 9명과 사용자위원 9명은 각각 자신의 안에 표결했을 테니, 공익위원 9명은 정확히 6대 3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런 게 '사회적' 대화인가?
누군가는 드라마틱한 결과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공익위원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정권은 여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함으로써 “답은 정해져 있다. 너는 그 답을 말하기만 하면 돼(답·정·너)”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다.
그 답은 뭘까? 2020년까지 1만 원을 달성하려면 단순 계산으로 매년 15.62%씩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작년 최저임금인 6470원에 15.62%를 인상하면 7480원이 된다. 즉 7480원 언저리에서 결정을 하되 절대로 7650원을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 ‘답’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권은 노동자위원에게 상한선만 보여줌으로써 ‘죄수의 딜레마’ 기법을 추가한다. 즉, 사용자위원이 대폭 양보한 안을 가져오면 공익위원들이 그쪽을 지지할 수 있으니 노동자위원들도 대폭 양보한 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노동자위원들이 만일 7520원이나 7540원을 적었다면? 아마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위원들이 7600원 가까이 또는 그 이상을 적어낸다면?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노동자위원 심리는 자연스럽게 7480원~7540원 사이로 몰린다. 문제를 출제한 공익위원들은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다. “10원 단위까지 답을 정해주진 않을게. 대신 너희들 자율성은 딱 거기까지야. 50~60원 사이에서 우리 마음을 얻어 봐. 가장 많이 양보하는 쪽에 표를 줄 거야.”
사용자위원들이 파격적으로 7400원대를 적어냈다면 표심은 또 출렁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기준점인 7480원에서 (오차범위) ±50원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다. 즉, 최저임금위원회 논의는 사실상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 몇십 원을 누가 더 가져가는가 하는 ‘게임’으로 전락하게 된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 때와 달리 상·하한선은 아예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개되지도 않는다. 오직 저 교섭에 참여한 이들이 밀실에서 자기들만 보고 쑥덕거릴 수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 도대체 무슨 ‘사회적’ 토론이 있는가. 이런 게 정녕 ‘사회적 대화’란 말인가?
진실로 사회적인 대화를 원한다면
민주노총은 대화기구를 박차고 나왔다. 총파업도 하고 집회도 한다. 캠페인도 하고 서명운동도 하며 노조를 갖지 못한 이들을 대규모로 만나게 된다. 어떤 이는 죽어라 비난하고, 어떤 이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바로 그 ‘어떤 이’들 모두가 대화에 참여해야 할 사회 구성원들 아닌가? 비난도, 응원도 모두 그들이 대화에 참여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이고 말이다.
대화기구를 박차고 나오자 대통령과 면담도 이뤄지고 장관과 노·정 협의 자리도 열린다. 얘기가 잘 안 풀리니 각자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여론의 향배와 추이를 살핀다. 밀실에서 도대체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모르는 것보다, 각자 얘기를 공론화하고 사회 구성원의 평가와 토론을 병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회적인 대화가 아닌가?
지자체 선거를 지났음에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자,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위원장과 여당 원내대표가 주요 패널로 참여하는 TV 토론이 JTBC <썰전>을 통해 성사되었다. 이런 게 훨씬 사회적인 대화가 아닌가? 아직 변변한 TV 토론 주제로 선정되어 본 적도 없는 '사회적 대화'보다는 말이다.
ILO 협약 비준을 공약한 대통령이라면 전교조 합법화는 행정조치로 간단히 해낼 줄 알았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나거나 법률 개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단다. 그런 말은 이명박·박근혜 정권도 할 수 있는 얘기이다. 그래서 전교조의 농성이 시작되었고 결국 지난주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연가투쟁이 진행되었다.
그러자 6.13 선거에서 당선된 다수의 교육감들이 전교조 합법화를 촉구하고 나선다. ILO 협약 비준이 다시 사회적 쟁점이 되고, 대통령은 공약 이행을 다시 한 번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도 각 주체들의 반응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인사이드 경제>가 보기에 이런 과정 모두가 사회적인 대화로 보인다. 밀실에서 협상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방식 아닌가.
그 탄생과정의 토론 내용이 잘 알려지지도 않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를 하게 되면 기껏해야 1~2쪽짜리 짤막한 브리핑이 전부인 모임에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만병통치약처럼 거론되는 ‘사회적 대화’의 실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거야말로 사회적 대화의 대상이다. 오늘도 필자는 이런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올리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런 게 바로 <인사이드 경제>에 부여된 ‘사회적’ 역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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