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재판 거래'로 청와대와 협상을 하려 했다는 의혹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판사들의 긴급회의가 잇따라 소집되는가 하면, 전국 법원의 대표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이 관련 내용의 엄정한 조처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28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하여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30일 언론에 공개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 "사법부 스스로 존재근거를 붕괴시켰다"
최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의 무리한 입법 추진 등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성향과 동향, 심지어 재산관계까지 파악하고, 좋은 재판을 향한 법관들의 학술활동 자유를 침해한 것은 반헌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으로서 대법원장에게 이번 조사결과 드러난 헌정유린행위의 관련자들에 대해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행정처 문건으로 드러난 '재판 거래'와 관련해서도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정치적 거래나 흥정 대상으로 삼아 주권자인 국민의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와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법부 스스로 존재 근거를 붕괴시키는 참담한 결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의 협상 카드로 삼으려 했던 재판으로 알려진 'KTX 승무원 재판'과 관련해서는 "재판을 받은 당사자의 삶을 비극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최 부장판사는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사법행정권 남용사태를 방관하지는 않았는지, 견제와 감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법관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해 조사결과의 후속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선 판사들도 집단행동 나서
일선 판사들도 집단행동에 나섰다. 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는 6월 4일 '현 사태에 관한 입장 표명'을 안건으로 회의를 연다. 서울중앙지법에는 83명의 단독 판사가 근무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도 같은 날 단독 및 배석판사 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관련, 논의를 진행한다. 단독 및 배석판사회의에 참여한 법관들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6월 11일로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러한 법원 내부 반발에 다급해진 것은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파문이 커지자 사태수습에 나섰다.
김 대법원장은 30일 오후 법원행정처 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한 법원행정처 내부 의견을 수렴한다. 김 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는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검토하며 다양한 의견을 공유할 예정이다.
사태수습에 나선 김 대법원장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이와 같은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 일선 법관들이 의견을 내고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생각한다"면서 "그와 같은 의견 또한 제가 경청해야 할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양 전 대법원장 조사를 포함한 추가 조사, 의혹 관련자 검찰 고발 여부 등을 놓고 법관들과 논의할 계획이다.
대법원은 전날 대법정에서 농성을 벌인 KTX 해고승무원들과의 면담도 진행한다.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2시 대법원에서 해고 승무원 대표 대표와 면담하기로 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 협상 카드로 쓸 만한 재판으로 'KTX 승무원 재판'이 포함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재판 거래' 파문에 대한 사태 수습에 나선 대법원이 향후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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