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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낙연 총리가 원안위를 질타한 까닭?

[안종주의 안전사회] 라돈의 역습 <2>

라돈 방사성 침대 사건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너무나 부끄러운 사건이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성격을 지닌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초유의 일이다. 소비자들에게 음이온 건강 침대라고 회사가 선전하던 침대에서 외려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선과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의 최고 10배 가량이나 나왔다. 사용자들이 당혹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라돈 침대와 무관한 시민들도 이를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고 이번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라돈과 토륨, 모나자이트 등 어제까지만 해도 낯선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이제 일반상식처럼 통한다.


라돈의 특성과 위험성에 대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새삼 알게 된 시민들도 있지만 여전히 그 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자신들도 라돈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한다. 또 어떻게 이런 일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처럼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지게 됐는지 안타까움과 함께 궁금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또 우리 사회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이자 위험소통전문가인 안종주 환경보건학 박사가 이번 사태를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바로 가기 : 라돈의 역습 <1> : 침대는 라돈입니다?

한국을 불안 사회로 만든 라돈 침대 파문

21일 국무회의장. 이낙연 총리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작심 발언을 했다.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외려 국민의 불안을 심화시켰다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질타했다. 국무위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자력불안위원회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국무회의장이 대한민국은 안심사회가 아니라 불안사회로 자리매김한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적어도 인체에 치명적이며 흡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폐암 사망을 일으킨다는 방사성 물질인 라돈 피폭과 관련해서 말이다. 라돈 침대 파문과 관련해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라돈 침대 사건이 일반인에게 알려진 때는 지난 3일 SBS의 보도를 통해서다. 원안위는 즉각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 위험 또는 위기관리와 소통에서 정확한 위험평가는 사람의 만남에 비유하면 첫 만남에 해당한다.

첫 인상은 매우 중요하며 기억에서 오래 남는다. 따라서 첫 위험평가는 그 무엇보다 매우 신중하고 정확하며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정확한 평가를 하더라도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또 아무리 신속하게 평가를 해도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안위의 10일 1차 중간발표결과는 너무나 어설펐다. 이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도 금방 들통이 날 수준이었다.

2009년 4월 베이비파우더 석면 탈크 사건 때 당시 식약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은 한 방송사가 시중의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을 검출했다는 사실을 인터뷰로 하러 온 이 방송사 피디로부터 알아차렸다. 식약청은 즉각 시중에 유통 중인 베이비파우더 수십 종을 수거해 방송이 이루어지기 전 대한민국 최고 석면분석기관에 맡겼다.

이 분석기관은 식약청 직원들이 교대로 줄곧 지켜보는 가운데 사흘 밤낮을 새며 분석을 끝내고 방송 4시간 전인 오후 6시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베이비파우더에 석면이 들어 있음을 국민에게 언론보다 먼저 알렸다. 이런 신속·정확한 대처로 식약청은 가래로도 막지 못할 일을 호미로 막을 수 있었다.

위험평가는 최악의 상황 전제해야 함에도 원안위는 무시

위험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을 평가할 때 평균이 아니라 최악의 노출수준과 갓난아이를 비롯한 어린이, 임산부, 노약자, 만성질환자와 같은 건강·안전 약자의 건강에 끼칠 수 있는 환경을 가정하는 것이다. 원안위는 이 모두를 무시했다.

대진침대의 음이온 방출 선전 침대 모델은 어떤 것이 있으며 라돈과 같은 방사성 물질을 내뿜는 모나자이트가 침대 어디에 쓰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다음 얼마만한 양이 쓰였으며 언제부터 쓰였는지, 모델에 따라 얼마만한 양의 모나자이트를 사용했는지를 파악해 소비자들의 실제 사용과 최대한 똑같은 조건에서 방사선 측정과 방사성물질 방출량을 정량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원안위가 방송 후 1주일 동안 한 일이라고는 고작 한 개의 침대에 대해 외부피폭선량과 내부피폭선량 계산과 문제가 된 물질이 모나자이트라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모나자이트가 침대 어디에 쓰였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의 실제 사용한 것과는 동떨어진 조건에서 침대에서 나오는 라돈을 측정해 피폭선량을 계산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실제 노출될 수 있는 피폭선량에 견주어 50~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방사선 피폭에는 안전한 선량 없어-ALARA 원칙 지켜야

방사선 피폭에는 안전한 선량이 없다. 연간 피폭선량이 1밀리시버트니, 방사선 방출량이 100㏃(베크렐)/㎥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 이하면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관리기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원안위는 강조하지 않았다.

원안위는 그 어느 기관보다도 우주방사선 등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자연방사선 외에 생활방사선 노출은 최대한 적게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를 시민들에게 경고(ALARAM)해야 할 책무가 있는 원자력 안전 최고기관이 오히려 문제가 없다는 식의 1차 발표를 했다.

이번 사태를 보면 많은 소비자들이 원안위를 불신의 눈초리로 보고 그 전문성까지 의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원안위는 15일 2차 발표 때 기준치를 넘어선 방사성 라돈 물질이 검출된 침대 모델이 무더기로 나온데 대해 시간이 없어 서두르다 실수를 했다고 해명했다.

이는 해명이 아니라 명백하게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라돈 침대가 무려 6만 대가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문제의 모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은 아무도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등 원자력계에서는 비밀주의와 위험 과소평가하기가 주특기처럼 오랫동안 이루어져왔다. 대중에게 알려야 할 사안인데도 별 것 아니라는 자체 판단에 따라 쉬쉬해오다 뒤늦게 알려져 문제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문제가 지적되지만 그때뿐이고 다시 비밀주의와 위험 과소평가하기가 고질병처럼 도지기를 반복해왔다.

원안위는 라돈 침대 사태의 예방과 조기 수습에 실패했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원자력의 위험을 감시·감독·관리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한 원안위도 원자력계의 일그러진 관행과 고질병에 감염되어 있었음에도 이를 모른 채 지내온 게 아니냐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원안위 발표 하루 전 생활방사선 안전 자화자찬 홍보물 대거 홈페이지 게재

원안위는 적어도 생활방사선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왔음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원안위 홈페이지 초기화면에서 정보마당의 생활방사선에 들어가면 생활·환경방사선과 관련한 6종의 홍보물이 나온다.

5~17쪽 짜리의 만화, 그래픽 등을 곁들인 간단한 홍보내용은 △환경방사선 감시망-eRAD △생활주변 방사선 어떻게 관리할까요?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 5년 성과 △생활주변 방사선 정보서비스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 주요 내용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 왜 시행되었을까? 등의 주제를 가지고 다루었다.

이 홍보물들은 공교롭게도 라돈 침대 1차 발표 하루 전인 5월9일 일제히 게시됐다. 이 가운데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법(생활방사선법)이 제정·시행된 2012년 7월 이후 지난 5년 성과를 다룬 <지난 5년간 생활주변방사선 이렇게 안전관리 했습니다> 홍보물에서는 "수입화물에 대한 감시 강화와 감시 인프라를 확충해 감시체계의 신뢰도와 정확성을 확보하였다"고 밝혔다.

또 원안위는 관세청,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지자체 등 관계부처와 협력을 통한 천연방사성물질 규제를 내실화해 수입화물과 공정부산물 등에 의한 불필요한 방사선에 국민들이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특히 이번 라돈침대 사태와 관련한 부분인 생활밀착형 제품 안전성 확인에 대해서는 가공제품의 결함 확인 즉시 판매중지 및 회수조치를 하고 있고 음이온 광고 제품의 유통망에 대해 집중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5년간 원안위는 생활방사선 관리와 생활밀착형 제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국민과 전혀 소통하고 있지 않다가 라돈 침대 사태를 맞아 대대적 홍보물을 제작해 뒤늦게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라돈 침대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정부, 특히 원안위에 대해 라돈침대 사용자와 환경단체, 소비자단체 등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면서 이런 홍보물은 외려 이들을 자극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원안위는 최근 생활밀착형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2016년과 2017년 각각 생활주변 방사선 안전관리 실태조사와 원료물질 분석을 해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 보고서 내용 가운데는 방사성 광물 가운데 하나인 토르말린(tourmaline)을 사용해 만든 제품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과 방사성물질이 검출됐음에도 따로 보도자료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가 라돈 침대 사태 이후 뒤늦게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안전 위협 대어는 놔두고 피라미에만 관심 쏟은 원안위


원안위는 천연방사성 물질을 내실 있게 규제하고 있으며 생활밀착형 제품의 안전성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라돈 침대 사태가 불거지면서 결과적으로 자화자찬한 꼴이 되어버렸다. 정작 중요한 대어, 즉 라돈 침대는 놔둔 채 토르말린 가공제품과 음이온 팔찌 등 피라미를 잡는 데만 힘을 쏟은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자력불안위원회가 아니라 원자력안심위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자기고백과 함께 자기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1차 발표 때 조사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한 점의 숨김없이 솔직하고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시민들이 매우 불안하게 생각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핵의 안전을 다루는 원안위는 그 어느 부처보다도 위험소통과 위기소통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배우는 자세부터 가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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