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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희한한 '선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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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희한한 '선거공학'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선거를 활용해 대정부 협상력 높이는 GM의 전술

GM은 왜 2월 13일, 전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했을까? 바보 같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오늘 <인사이드 경제>는 이걸 화두 삼아 얘기를 풀어볼 생각이다.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작년 12월, 한국GM 임금교섭 막바지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8년 2월말" 명시를 고집한 GM

교섭이 막바지로 치닫던 작년 12월 29일 저녁, 갑자기 GM 측에서 잠정합의를 하려면 아래 문구를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이 지나면 사실상 연내 타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밤 늦게까지 이 문구의 삽입, 해석을 놓고 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결국 논란 끝에 위 문구가 삽입되었는데, 다음날 노동조합은 이 부분과 관련해 조합원들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GM의 물량 배정이 3월에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노사협상을 시작하자는 내용입니다."

이 얘기를 그대로 신뢰한다 하더라도 좀 이상하다. 선언에 불과한 문구라면 왜 저렇게 삽입하자고 고집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GM은 이미 2018년 5월말 군산공장 폐쇄를 오래 전부터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대부분의 언론들도 다 분석하듯이, 그건 올해 6월 13일 지자체·교육감 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군산공장 폐쇄를 던져야 문재인 정부에게 가장 큰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5월말'과 '2월말'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한국GM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르면, 공장 폐쇄 등 중대한 공장 운영의 변경이 있을 경우 사측은 90일 전에 노조에 미리 통보하고 성실한 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즉, 5월말로부터 90일 전을 역산하면 2월말이 나온다.


그렇다. GM은 단체협약 문구 하나까지 고려하며 시점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2월말이 아니라 왜 2월 13일에 군산공장 폐쇄를 공론화 했을까? 이것 역시 지자체 선거와 연관이 있다. 가족·친지가 모여 식탁에서 정치 얘기를 나누는 구정 연휴를 고려한 것이다. 구정 연휴 직전, 기습적으로 던져야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 것. 정말 주도면밀하지 않은가.

특혜와 보조금으로 크루즈 생산 유치한 호주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 직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호주 사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호주에서 GM은 ‘홀덴(Holden)’이라는 자회사와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호주 공장에서 주로 생산하던 차량은 코모도어(Commodore)라는 중대형 승용차였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트렌드가 급속도로 소형차 쪽으로 변화하게 된다. 노동자들 호주머니가 비어가니 중대형 승용차를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고용불안 심리가 엄습해왔다. 당연히 GM은 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때 호주 정부와 지방정부가 눈길을 돌린 것은 소형차 생산. 그들은 당시 한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던 쉐보레 크루즈에 눈도장을 찍었다. 연방 정부와 지방정부는 GM을 상대로 크루즈 생산을 위한 전방위 로비에 돌입했다.

심지어 그들은 ‘친환경차 기금’이라는 보조금을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당시 GM만이 아니라 대다수 메이커들이 호주에서 생산하던 차량은 중대형 승용차였으니, 당연히 배기량이 큰 엔진을 사용했다. 친환경차 기금이란 결국 배기량을 줄인 차량, 즉 소형차 생산에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GM만 지원하는 보조금을 만들면 특혜 논란이 일게 되니, 소형차 생산 보조금을 만들어 GM을 지원하도록 우회로를 만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각국 정부와 노조로부터 특혜와 양보를 받아내는 선수 GM이 이런 제안을 마다할 리가 없다. 2009년 6월부터 크루즈 현지 생산이 시작되었고, 호주 정부는 GM에 1억5000만 달러의 친환경차 기금을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호주 달러의 강세가 지속되고, 반짝 했던 소형차 인기도 시들해졌다. GM 자본은 호주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차라리 수입차를 파는 게 이윤이 남는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2011년 6월이 되자 GM 홀덴 측은 차세대 크루즈의 호주 생산을 원한다면 정부 지원을 더 확대하라고 노골적으로 촉구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막 크루즈 생산을 이곳에서 시작했다. 앞으로 12개월 안팎의 시간 내에 크루즈 차세대 생산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정부의 합작투자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사업 전망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이 나라에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저비용 지대에 투자하는 것이 더 좋은 이윤을 창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GM 홀덴 상무이사 Mike Devereux)

호주 총선 앞두고 구조조정과 신차로 압박하다

처음에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는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GM 홀덴 측의 지속적인 압박과 공장 폐쇄가 불러올 일자리와 경제 악화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결국 조건 없는 지원에 나서게 된다. 2012년 3월에 연방 정부,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와 빅토리아 주 정부가 합동으로 향후 10년 간 1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하고, 먼저 2억7500만 달러를 지원하게 된다.

정부 지원이 지속되는 2022년까지 생산공장을 유지하겠다던 GM의 약속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깨지기 시작했다. 2.75억 달러의 지원을 받고도 GM은 차세대 크루즈 생산을 확약하지 않은 것이다. 2013년 9월로 예정된 호주 총선을 앞두고, GM은 오히려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2012년 2월, 2교대를 1교대로 줄이며 150명 계약직을 전원 정리해고 했다. 하나의 교대조로 통합된 정규직들은 이전보다 높은 노동강도로 더 많은 차량을 생산해야 했다. 2012년 9월에는 휴업이 확대되더니 결국 11월에 희망퇴직으로 170명의 노동자들을 내쫓는다. 총선이 예정된 다음해까지 구조조정은 지속되어, 2700명이던 노동자 규모는 1900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GM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총선에서 집권을 원하는 정치세력이라면 누구나 일자리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일자리 유지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차세대 크루즈 신차를 유치해야 할 것이다. 이걸 원한다면 더 많은 지원을 약속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주 민심은 GM에 퍼주기만을 해주던 노동당 정부로부터 등을 돌렸다. 2013년 9월, 보조금 삭감을 공약한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보조금이 삭감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2013년 12월, 애초 약속을 모조리 깨고 GM은 호주 공장 폐쇄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브라질 정치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한 GM의 전략

브라질에서 노동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룰라 다 실바. 그는 미국의 완성차업체 빅 3(GM, 포드, 크라이슬러) 공장들이 입주한 공단에서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금속노조의 위원장을 지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4년의 대통령 임기를 2차례 수행했고, 2010년 대선에서는 같은 노동당 후보인 지우마 호세프가 당선되기에 이른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당시 신흥국으로 불려지던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비켜간 것처럼 보였다. 이들 국가 모두 2008~2009년에 잠깐 생산·판매가 줄어들긴 하지만 이내 회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는 지연된 것이었을 뿐 비켜간 게 아니었다. 중국을 제외하면 브라질·러시아·인도 모두 2012년을 기점으로 생산·판매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2012년에 GM 브라질 공장에서는 파업을 몇 차례 겪게 된다. 그 직후 GM은 2014년으로 예정된 변속기 공장 투자를 잠정 연기하겠다고 발표한다. 애초 GM은 3억8400만 달러를 투자해 360여명을 고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왜 2014년이고, 그걸 2년이나 앞둔 시점에 투자 연기 발표를 한 것일까?

2014년 10월에 브라질 대선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GM은 처음부터 브라질 정치일정을 고려해 투자계획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선을 2년이나 앞둔 상태에서 브라질 정부와의 벼랑 끝 협상을 위해 미리 ‘투자 잠정 연기’라는 수를 둔 것이다. 재선을 노리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입장에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끔 말이다.

2014년 1월, 브라질 정부는 완성차업체가 2013년에 출시한 신차에 대해서 공업세를 감면해 주겠다고 발표한다. 이 결정을 포함해 2012년 이후 GM은 2년 동안 브라질 정부 특혜로 거의 30억 달러의 세금감면 혜택을 누렸다. 그런데 GM은 돌연 산호세 도스캄포스 공장에서 1000명 가까운 노동자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다. 당장이 아니라 2014년 12월에 해고한다고 말이다. 10월에 벌어질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대선 직전인 2014년 8월, GM의 CEO인 매리 바라가 브라질로 날아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면담하고 28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한다. 지우마 호세프는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고, 노사 합의를 통해 정리해고는 잠정 연기되었다. 호세프는 10월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브라질 경기는 회복되지 않았고 GM 입장에서 정부의 지원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GM은 대선 직후 곧바로 정리해고 카드를 들이민다. 5200명의 노동자들이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2년 전만 해도 7500명에 달하던 노동자 규모였다. 정부가 30억 달러의 세금을 감면해주던 2년 사이 23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던 것이다.

2015년 8월, 결국 1000명의 정리해고자들이 임시직으로 복직하는 것에 노사 합의가 이뤄진다. 회사 사정에 따라 다시 정리해고를 할 경우 4개월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말이다. 정부는 GM에 열심히 퍼줬지만, 대가로 받은 것은 ‘일자리를 덜 줄이는 것’이었다.

2016년에 지우마 호세프 탄핵 국면이 벌어지며 브라질에 엄청난 정치·경제적 위기가 찾아온다. 이때를 놓칠 GM이 아니다. 이 위기 국면이 지속될 경우 투자계획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위기가 종식되면 2019년에 신차를 투입한다고 말이다. 왜 2019년일까? 그렇다. 2018년 말에 다시 브라질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 메리 바라 GM 회장(오른쪽), 지우마 호세프 당시 브라질 대통령(왼쪽)이 2014년 8월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GM의 브라질 투자 계획에 합의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GM

차기 대선이 치러지는 2022년에 신차 투입?

GM이 한국에 투입한다는 신차 2종 중 하나는, 사실은 새롭게 오는 차종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 모든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차세대 트랙스’(코드명 9BUX/9BYC)이다. 2016년 임단협에서 한국GM 노사는 이미 이 차량의 부평공장 생산을 합의했으며, 심지어 이 차량에 탑재될 CSS 엔진의 부평 생산까지 합의한 바 있다.

이 차종은 2019년 말에 뷰익 버전의 차량 생산이 시작되어 북미 수출을 하게 되며, 2020년 초부터는 쉐보레 버전 차량 생산이 이뤄져 내수 판매도 시작될 예정이다. 그런데 뷰익 버전의 차량은 기존 이름 그대로 ‘뷰익 앙코르’를 사용하는 반면, 쉐보레 버전의 차량은 트랙스가 아니라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는다고 한다. 이름만 살짝 바꿔서 신차처럼 포장하겠다는 꼼수 아닌가.

그렇다면 이 차종 말고 나머지 하나의 신차는 무엇일까? 차종이 CUV라는 것 말고는 아직까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작년 임금교섭, 그리고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GM은 이 차종에 대해 북미 수출 포함해 20만 대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CUV라면 크로스오버, 즉 승용차와 같은 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 유틸리티 차량이니 소형 SUV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북미에서 잘 팔리는 중대형 SUV와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GM은 올해 2월 교섭에서 이 차종의 양산 시점을 ‘48개월 뒤’라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빨라야 2022년 2월이라는 것이다. 왜 2022년 2월일까? 그렇다. 차기 대선이 있는 해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2022년 5월 9일까지이므로, 인수위 기간을 감안하면 2022년 3월에는 선거를 치러야 한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 아닌가.

폭탄 돌리기도 불가능하다. 어차피 이 정권에서 해결해야

2012년 호주 정부로부터 2.75억 달러를 먼저 지원받고도 GM이 차세대 크루즈 생산 약속을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2013년 9월 총선에서 이를 카드로 써먹기 위함이었다. 2년 동안 엄청난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도 1000명 정리해고를 강행하려 했던 것 역시, 2014년 브라질 대선에서 더 많은 특혜를 약속받기 위함이었다.

2022년에 생산을 시작한다는 CUV? 우리는 아직 그 차량에 탑재될 파워트레인이 뭔지조차 들은 바가 없다. 신차가 있다고 설명하려면 최소한 거기에 무슨 파워트레인을 적용할 건지 함께 얘기하는 게 기본 아닌가. 세그먼트가 뭔지에 대해서도 정보가 전혀 없다. 말 그대로 ‘상상 속의 차’에 불과하다.

산업은행이 제대로 실사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실사와 무관하게 GM과 교섭을 진행하는 정부가 명심해야 할 것이 여기 있다. 급한 것만 막아보자는 생각으로, 또는 내 임기 중에만 다시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심리로 일을 풀어봐야 헛된 꿈에 불과하다. 어차피 폭탄은 현 정부 임기 안에 다시 터진다.

신차가 2022년 2월부터 양산된다면? GM은 2020년이나 2021년부터 이 신차를 놓고 한국에서 생산하려면 이런 조건 저런 양보를 더 받아내야 한다는 얘기를 쏟아낼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20년은 또 총선이 있는 해이다. GM이 총선이라고 그냥 지나칠까? 정부가 폭탄 해제를 올해 마무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 때마다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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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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