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법정 최저임금제를 운용하는 나라 가운데, 중위 및 평균임금에 대비했을 때 중간 수준으로 측정되었다. 2018년에는 큰 폭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됐으므로 훨씬 높게 조사될 것이다. SG증권의 오석태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8년 중위값 대비 최저임금의 추정치는 58.3%로 높아져1) 완연한 상위권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58%는 OECD 국가의 역대 추이에 견줘도 확실한 상위권이다). 2020년 1만 원 공약이 달성되면, 이 수치가 70%를 넘어설 것이라고 오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70%대의 중위값 대비 최저임금은 오직 터키와 칠레만이 밟아본 지점이다.
그런데 멕시코, 한국과 함께 속칭 OECD '노답 삼형제'로 악명 높은 터키와의 교집합이 늘어난다니 어쩐지 께름칙하다. 칠레 역시 멕시코에 가려져서 그렇지 '사형제'를 결성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이렇게 오르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요컨대, OECD 중 여덟 나라는 최저임금제 없이 산업별 협약을 바탕으로 그에 준하는 급여를 책정하고 있다.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아이슬란드‧스위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가 이에 속한다. 이들이 법정 최저임금을 두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저임금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함이고, 통상 최저임금제가 있는 나라보다 급여 수준이 우월하다. 일례로, <뉴욕 타임스>가 취재한 덴마크 버거킹 점원의 시급은 2014년 기준 20달러를 상회하는데, 이는 미국의 세 배에 달하며2), 어떤 OECD 국가의 법정 최저임금보다도 높게 형성되어 있다. 또 스웨덴의 맥도날드 점원은 2015년 기준 덴마크보다 적은 14.5달러의 시급을 받지만3), 덴마크의 고용주라면 내지 않는 사회보험료가 급여의 30%에 달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덴마크와 스웨덴의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부담하는 인건비는 서로 비슷하게 '진짜' OECD 최고 수준이다.(참고로 이 점원들에겐 약 30%의 소득세가 부과된다.)
필자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되는 데 양손 들어 찬성하는 입장이다. 급격히 오르는 것도 매우 환영한다. 저임금 노동자조차 만만찮게 세금을 내는 사회, 호사는 아니더라도 복지에 힘입어 무탈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통계를 들여다보면, 과연 2020년 1만 원이 괜찮을지 상당히 불길한 패턴이 나타난다.
녹색 칸은 산업별 사회협약을 토대로 임금 및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나라들이다. 상하위의 임금격차가 가장 작거나 비교적 양호하다. 남유럽의 문제아 중 하나인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고용률 또한 다들 가장 좋거나 준수하다. 눈에 띄게 높은 여성고용률에 비해 남성고용률이 다소 처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여성과 남성의 노동시장 진입이 고루 활발하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남녀 고용률 차이가 가장 근소하게 나타난다.
연두색 칸의 뉴질랜드, 네덜란드, 호주는 법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면서 격차와 고용률이 우수한 나라들이다. 오세아니아의 두 선진국은 최저임금의 상대값 지표가 상위권인 반면, 네덜란드는 하위권이다. 하지만 물가를 보정한 최저임금의 연간 환산액을 보면, 오히려 네덜란드가 뉴질랜드, 호주를 앞지른다.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네덜란드의 최저임금 수준이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녹색과 연두색의 초록 그룹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고용률과 격차에 관련된 핵심 지표들이 두루 양호함과 동시에, 흔히 행복지수로 불리는 주관적 지표가 장기간 제일 앞서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초록 그룹의 특성은 일본,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과 대비되는 지점인데, 이를테면 일본의 경우, 여성 저임금 비율(상용근로자 총임금의 3분의 2 이하의 비율)과 남녀 중위임금의 격차 그리고 남녀 고용률 차이가 모두 밑으로 처져 있다(앞의 두 지표의 꼴찌는 한국이다). 성인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에서도 일본은 최하위권인 미국, 한국의 바로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참고로 호주와 뉴질랜드는 일본과는 달리, 기존 OECD의 여러 격차 지표에 비해 상위 10% 집중도가 우수하다)4). 결정적으로, 삶에 대한 주관적 총평을 알아보는 대국민 조사에서 일본은 10점 만점 기준 5.9점을 기록하며(2014~2016의 평균), 7점대 이상인 초록 그룹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오스트리아의 경우 초록 그룹 중 격차와 고용률이 가장 뒤처지는데 주관적 지표 역시 마찬가지다)5).
적색 칸의 터키, 칠레, 포르투갈, 폴란드는 최저임금의 상대값 지표에서 모두 상위권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초록 그룹과는 달리 임금격차가 열악하고 일자리마저 부족하다. 한국의 경우, 극심한 임금격차와 중하위권의 전체 고용률, 최하위권의 여성고용률 그리고 중상위권의 남성고용률이 짝을 이룬다. 전반적으로 초록 그룹보다는 적색 그룹에 근접한 고용 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1만 원까지 최저임금의 상대값이 상승한다면 임금격차가 줄어들며 초록 그룹에 한 발짝 다가설 가능성도 있지만, 기대와는 달리 적색 그룹에 더욱 가까워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 최저임금의 겉보기 수준이 높음에도, 실제로는 임금격차가 지독하고 취업도 여의치 않은 그런 난감한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지표에서 한국이 쫓아가려 하는 적색 그룹의 나라들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취업이 부진할 뿐 아니라 청년 고용 또한 저조하다. 폴란드의 25~29세 고용에서의 잠깐 예외를 빼면, 다들 청년이 일할 만한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자영업의 비중이 높고 노동시간이 길다는 공통점도 있다. 또 앞서 보았듯 임금 격차도 제일 크다. 자영업 부문 취업자와 여타 영세기업 저임금층의 소득을 올려보고자 명목상의 최저임금을 높이 책정했음에도, 일부 노동자가 혜택을 볼 뿐 부진한 일자리 창출과 커다란 격차, 긴 노동시간 등의 문제가 여전하다고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한국은 이미 이 적색 나라들과의 악성 교집합이 굉장히 많다. 2020년 1만 원으로 최저임금이 상향되면, 유사한 교집합이 또 늘어나는 셈인데, 과연 한국은 이들 나라가 빠져 있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빨간색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긍정적 요소는 1인당 GDP 등 경제성장의 성숙도가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다. 난국을 타개할 기초 체력이 월등하다. 문제는 최저임금의 전격 인상에 걸맞은 정책 조합이 매우 부실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최저임금이 양껏 오르더라도 세금과 복지가 미흡한 상황에선 안정된 삶의 영위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워낙에 벌어져 버린 임금격차로 인해 중상층 이상 노동자와의 현격한 차이도 그리 좁혀지지 않는다(위쪽에서 조금만 임금을 높여도 베이스의 차이로 인해 격차 완화의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과다한 자영업 비중과 과소한 여성 고용이 해소되지 않으면 지엽적인 개선만이 가능한데, 속출하는 역작용은 이러한 개선까지 퇴색시킨다.
청년 일자리도 그렇지만, 양질의 여성 일자리 증대와 자영업의 출구전략은 세금과 복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임금격차를 줄이는 강력한 방편으로서도 폭넓은 계층을 포괄하는 증세와 이를 통한 복지는 필수 불가결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일부 부유층에 대한 소소한 증세만을 천명함으로써, 꼭 필요한 수단을 제쳐놓는 우를 범하고 있다. 조세저항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조세‧복지 정책에 대한 안일함 때문이든 문재인 정부의 정책조합은 역대 정권들이 그러했듯 차와 포를 떼어내고 두는 장기와도 같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환영해 마지않는 입장임에도, 또 마냥 그것을 반길 수만은 없는 소심한 걱정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길 바란다.
각주
1) <연합뉴스> 2017년 7월 19일 자 'SG 오석태 文대통령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비현실적'
2) <뉴욕 타임스> 2014년 10월 27일 자 'Living Wages, Rarity for U.S. Fast-Food Workers, Served Up in Denmark'
3)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 2015년 10월 28일 자 'Can Fast-Food Work Ever Be A Decent Job? These Swedish McDonald's Workers Say Yes'
4) World Top Incomes Database
5) World Happiness Report. 2017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