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수단의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평창) 현지 (북한 선수)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조처를 할 용의가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러브콜에 화답해, 적어도 스포츠에 관한한 해빙 무드가 열렸다. 당장 오는 9일로 예정된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 선수단의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이들이 어떻게 입경(入境)할까. 여태 북한 선수단은 한국에 들어올 때 베이징을 주로 이용했다.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입국한 후, 중국에서 한국으로 재입국하는 방법이다. 당장 지난해 4월 2일 강릉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세계선수권 참가를 위해 같은 달 1일 한국을 방문할 때도 북한 선수단은 이 루트를 이용했다. 엄격히 말해 그들은 입국(入國)했다.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광경인 이 모습은 대치가 끝나지 않은 남북의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 한국의 금강산 관광이 가능했을 때, 한국 관광객은 북한으로 입경했다. 개성공단을 오가는 한국의 기업인들도 휴전선을 넘어 북한 경계로 입경했지, 입국 절차를 밟지 않았다.
온갖 말이 많았던 평창 동계 올림픽을 잘 활용할 유일한 방법은 남북 문제와 연계하는 것이다. 북한 선수단의 방문을 계기로 남북이 지난 9년의 보수정권 집권기 새로 불거진 갈등을 끝낼 단초를 마련하고,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 해빙 기류를 가져오는 게 현재 올림픽에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북한 선수단의 평창 방문을 더 극적으로 만들 방법이 있다. 이들이 인천으로 입국케 하지 않고, 직접 휴전선을 건너 입경케 하는 것이다. 과거 한국이 그랬듯 이들도 걸어서 휴전선을 건넌다면, 그만큼 세계에 효과적으로 남북의 달라진 분위기를 선전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관련기사 : 북한 선수단이 평창행 KTX 타는 걸 상상한다)
과연 가능할까. 이미 이들의 효과적인 이동을 뒷받침할 인프라는 갖춰져 있다. 과거 경의선 복원 사업으로 문산-도라산-개성을 연결하는 철로가 놓여 있다. 개성공단과 남한을 연결하는 도로도 있다. 남북 당국이 협의만 끝내면 된다. 베이징을 경유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 북한 선수단의 한국 방문 시나리오는 크게 아래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① 남북 열차의 도라산역 상봉
가장 극적인 연출은 역시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라는 표어가 상징하듯, 도라산역은 2000년 경의선 복구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이래, 북으로 가는 남한의 마지막 역이자 남북통일의 상징이었다. 도라산역은 남한의 문산역과 북한의 개성역 사이에 위치했다. 이곳을 북한 선수단이 지나 서울역으로 들어오는 것만큼 극적인 효과를 연출할 방법은 없다.
북한 선수단이 도라산역을 거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북한 열차와 남한 열차가 북한 선수단 이동을 위해 동시에 운행하는 방안이다. 평양에서 올림픽 출정식을 거친 북한 선수단이 평양역에서 북한 열차에 탄 후, 이들이 도라산역까지 온다. 북한 선수단은 도라산역에서 입경 절차를 마친 후, 남한에서 보낸 새마을호 특별편으로 갈아탄다. 즉, 도라산역에서 남북의 열차가 교차한다. 이후 이들은 서울역까지 새마을호를 이용한다. 서울역에서 북한 선수단은 KTX로 갈아타, 목적지인 평창까지 이동한다.
이 이동이 세계 언론을 통해 방영된다면, 모든 순간이 한반도 정세 변화의 상징으로 대서특필될 것이다. 북한 선수단 운송을 위해 고려항공이나 중국 항공사가 아닌, 남북의 열차가 협업했다. 북한 선수단은 경의선을 거쳤다. 이들은 육로를 통해 휴전선을 넘었다. 하다못해 새로 개통된 KTX 강릉선을 이들이 이용했다. 이보다 더 강렬한 평창 동계 올림픽 홍보가 있을까.
하다못해 이 방법은 국내적으로도 강력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경의선은 서울과 평양을 거쳐 신의주로, 중국의 단둥과 베이징으로, 나아가 모스크바와 파리로 이어진다.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 이미 남북은 개성~신의주 선로도 점검한 바 있다. 경의선이 복원된다면, 한국의 철도는 유럽 끝까지 이어진다. 경의선은 분단 후 섬이었던 남한을 대륙과 육로로 잇는 상징점이다. 올림픽을 계기로 경의선 철도 연결 가능성까지 열린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잇는 새로운 남북 경협의 가능성까지 논의가 가능하다.
철도 기관사이자 철도 관련 전문 저자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은 8일 이 방법을 제시하며 "북한에는 새로운 외화벌이 가능성을, 남한에는 새로운 육로 관광 가능성을 열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간단히 말해, 경의선을 통한 대동강 관광 루트, 그리고 시베리아 철도 여행 프로그램 개발 가능성이 열린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체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새로운 외화벌이 수단을, 남한은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관광 상품 개발 가능성을 얻음으로써 쌍방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고, 더 크게는 새로운 차원의 남북 화해 가능성을 열 수 있다.
② 남한 열차의 개성역 방문
열차를 이용하는 다른 방법도 있다. 아예 남한 열차가 개성역까지 들어가는 방안이다. 북한의 열차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남한 버스가 개성으로 들어가듯 남한 열차를 개성까지 보내는 방안도 남북이 논의 가능하다.
이 경우, 남북 열차가 북한 선수단의 평창 방문을 위해 협력한다는 상징성은 떨어지지만 그에 못잖은 장면 연출이 가능하다. 남한이 올림픽 손님인 북한 선수단을 직접 북한까지 가서 데려온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북한 열차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 어쩌면 더 현실화하기 쉬울 수 있다.
여기서 철도 개발 역사를 아는 이라면 의문을 가질 법하다. 동해북부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동해북부선은 2007년 남북 열차 시험 운행 합의 당시 남북으로 갈라진 강원을 잇기 위해 논의됐다. 당시 양측은 강원도 고성군의 제진역(남한)과 감호역(북한)을 연결, 철도 금강산 관광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두 선로 연결은 아직 요원하다. 현실적으로 양측 간 철도 운행이 쉽지 않은 상태다. 북한 선수단이 곧바로 평창으로 넘어온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지만, 선수단이 서울을 거치지 않아 상징성 역시 조금 떨어진다.
③ 버스로 이동
가장 쉬운 방법은 북한 선수단이 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들어오고, 서울역에서 기차로 갈아타 평창으로 가는 것이다. 이미 남한과 개성을 연결하는 도로는 완벽히 놓여 있다. 아무 문제가 없다. 도라산역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북한 선수단이 개성에서 도라산역까지만 버스로 이동하는 대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한 입경 절차를 거친 후, 선수단이 도라산역에서 남한 열차를 타고 서울로 들어올 수 있다.
북한 측 선로 점검이 여의치 않다면, 버스만 운행하거나 북한 버스와 남한 열차를 동시 이용해 북한 선수단의 이동을 강구하는 방법도 상상 가능하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도 버스와 열차를 동시에 이용하는 게 더 낫다. 대규모 선수단이 버스로 이동하는 것보다, 열차로 한 번에 이동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버스로 남한 내를 이동할 경우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마땅치 않다. 즉, 북한 선수단이 버스로 도라산역까지 이동한 후, 이곳에서 열차로 갈아타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앞서 두 방안에 비해 남북 화해 선전의 효과는 조금 떨어진다. 현실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이 되겠지만, 도라산역과 경의선이 지니는 남북 화해의 상징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현실화 가능할까
평창 동계 올림픽까지 8일 현재 남은 시간은 32일이다. 그사이 북한 선수단의 육로 방문을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현실화 가능하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철도 전문가들은, 남북 당국이 협의만 한다면 현실화 가능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남북 당국의 협의를 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잠시 생각해 보자. 크게 대표단 협의-실무자 협의-남북 공동협의체 구성-선로 점검 및 보안 점검-수송 수단 준비의 다섯 절차로 나눠볼 수 있다.
대표단 협의는 당장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부터 논의 가능하다. 큰 틀에서 양측이 빠른 시간 안에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의 평창 육로 방문'에 합의한다면, 양측의 실무단이 구체적인 방법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남한의 경우 통일부와 행정부, 문화체육관광부, 국방부, 외교부,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등이 태스크포스를 꾸려야 할 것이다. 이들이 북측 실무자단과 함께 공동협의체를 빠른 시간 안에 구성, 필요한 세부 논의를 완료해야 한다. 여기서 보안 문제, 입경 문제 등을 해결하고 확정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가정에는 북측 선로 상태가 괜찮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경의선 휴전선 구간을 마지막으로 열차가 달린 때가 2008년 12월 1일이다. 이미 9년가량이 지났다. 그 사이 북측 선로 상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으로서 예측이 결코 쉽지는 않다.
2014~2016년 3년간 남북 철도관련 업무를 담당한 철도공사 관계자는 "남북 열차 시험 운행이 중단된 후에도 남쪽 구간은 일 년에 한두 차례 점검을 하지만, 북측 선로 상태는 전혀 모른다"며 "그 사이 침수가 있었는지, 전기 상태는 어떤지 등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 지금으로서는 철도 운행 여부 예측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사견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얘기하자면, 남북이 선수단 철로 이동을 합의하고 로드맵만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낼 경우 선로 점검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일주일이면 선로 점검과 철도 시험운행까지 포함해 운송 준비를 끝낼 수 있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양측 실무단 협의를 2주가량에 끝낸다면 북한 선수단의 육로 입경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박흥수 연구위원은 "남한 철로의 긴급 점검 및 보수 경험을 적용해 보자면, 인력을 집중 투입할 경우 일주일가량이면 준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며 "점검과 보수만 잘 이뤄지면, 시속 30~50킬로미터 정도로 운행하는 건 가능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산~개성 구간 선로 거리는 26.8킬로미터다. 시속 30킬로미터로 개성에서 도라산까지 서행하더라도 북한 선수단의 이동에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선로 보수 작업과 별개로 이행될 남측의 열차 특별편 준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비차량을 이용해 철로 보안 문제만 해결한다면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남북의 합의만 된다면, 이 모든 절차를 준비하는 데 한 달이면 충분하리라는 전망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실제 북한 선수단의 남한 입경까지 넘어야 할 산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뤄내기만 한다면 긴 시간 긴장으로 점철된 동북아 정세에 어쩌면 큰 전환의 가능성을 마련할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남북 대표단이 이 기회에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극적으로 뒤바꿀 용단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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