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전개된 자유주의의 승리 시대에 '혁명'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였다. 세계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평정되었다고들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로운 세상' 따위 환상에 들뜨지 않고 기존 체제에 순응하여 행복하게 살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과 10년 만에 뉴욕은 9·11 사태를 맞았다.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던 미국이 건국 이래 최악의 본토 공격을 당하고 전율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이른바 '색깔혁명'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금방 기억에 떠오르는 것들만 해도 장미혁명(조지아, 2003),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 2004), 튤립혁명(키르키스스탄, 2005) 등이다. 정치적 격동의 물결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만 해도 재스민혁명(튀니지아, 2010), 우산혁명(홍콩, 2014)을 거쳐 드디어 한국의 촛불혁명(2016-17)에 이르기까지, 혁명이라는 유령이 세계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카탈루냐 사태 또한 유럽연합을 뒤흔들고 있는 강렬한 민족주의 운동이다. 그것은 혁명적 사태에 버금가는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는 아직 '혁명'이라는 단어를 버릴 때가 아니다. 혁명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것, 그 사회는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지만 불가피하게 구성원들 사이에서 긴장과 역동성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을 불현듯, 하지만 주기적으로 증언해주는 사태이다. 우리가 더 이상 혁명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라면, 그것은 묵시록의 세계일 것이다.
물론 모든 혁명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그 이념과 주도세력, 사태가 전개되는 양상, 그리고 사회적 지향점이 다르다. 같은 사태를 두고 누구는 혁명이라 부르고 누구는 반(反)혁명이라 부른다. 혁명이라는 단어의 정의(定義)에 미치지 못하는 사건이나 현상을 매스컴에서 선정적으로 혁명이라 이름붙이기도 한다. 어제는 혁명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오늘은 그것을 비난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혁명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얼른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한때 혁명적 사태로 알았던 것이 때가 지나면 반동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하다. 격렬한 정치적 소용돌이를 수반하지 않았지만 결국 엄청난 변혁을 초래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는 일들도 있다. 혁명은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혁명은 대체로 단 며칠, 단 몇 달 사이에 화산처럼 폭발한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실재한 사건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불가피하게 가공(加功)된 집단적 기억이기도 하다. 혁명은 일회적 '사건'을 넘는 사회적 효과를 깊고도 길게 드리우는, 복합적 현상이다.
올해로 100년을 맞는 러시아혁명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1917년 2월의 사태를 가리켜 혁명이었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10월의 사건이야말로 세계를 뒤흔든 진정한 혁명이었다고 말한다. 끄레믈(러시아 대통령궁)은 붉은 광장에서 더 이상 러시아혁명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치르지 않는다. 하지만, 차가운 모스크바의 거리에서는 여전히 플래카드를 들고 당당하게 혁명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러시아 안에서 그것을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기념하는 사람들이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워낙 오랫동안 반공주의에 물든 한국 기성세대의 상당수가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로 착각하고 있는 러시아는 더 이상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러시아연방은 과거의 '소련'이 아니다. 1992년 이 새로운 체제가 출현할 때 정통성의 기반을 둔 것은 소련 체제와 그것을 낳은 10월혁명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국가'를 추구하는 현재 러시아의 최고 지도부는 냉전 시대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소련이라는 나라는 칭송하지만, 그 체제의 기원이 된 러시아혁명은 외면하고 싶어 한다. 혁명 전 제정러시아와 혁명 후 소련을 강대국이었다고 함께 칭송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모순이라고 해도 러시아의 현실정치에서는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떤 권력도, 설령 그 정권이나 체제가 혁명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해도, 일단 기성제도(establishment)가 된 이상 혁명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혁명 기념일을 달력 속 특정한 날짜 아래 박아놓고 생생한 현실로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기, 즉 혁명의 박제화! 바로 이것이 국가의 이념과 언론과 교육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된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누구도 진짜 '연속혁명'이나 '영구혁명'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최근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역사가들은 1917년의 사건을 '러시아 대혁명'이라고-프랑스 대혁명을 본 따-부르기로 했다(Petrov, 2017; Babashkin, 2017). '대혁명'이라는 명칭! 아마 이것이 현재 러시아연방이라는 국가가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한다. 러시아의 대다수 주민들로부터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주요 권력 기관과 대기업의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리버럴(반공·친미·자유주의자들)은 필경 그 명칭마저도 못마땅해 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소련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신들이 명실공히 국가재산의 주인이 된 것, 즉 현대 러시아의 부르주아로 당당하게 등극한 1991년 사태를 '혁명'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혁명이 후대에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사상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 온 역사에 비추어 볼 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혁명은 대체로 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불가피한 사태라는 것이다. 만약 혁명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기득권 세력의 위로부터 개혁-'수동혁명'이라고도 한다-이 잘 실행된다면 모르지만, 익히 알려진 정치 격언대로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한편으로 개혁은 주민 다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합법적 경로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 그런 개혁 청사진은 사회구성원들의 기대수준을 잔뜩 높여놓지만 성과는 그렇게 빨리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종 개혁 자체가 혁명 발생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러시아혁명 또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861년 농노해방과 그에 뒤이은 각종 정치사회적 개혁 조치의 미진함, 그리고 이후의 반동정치가 낳은 산물이었던 것이다.
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도약, 또는 '진실의 순간'에는 유감스럽게도 이런 저런 충돌로 인명 희생이 뒤따르게 된다. 혁명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집단과 일전을 불사하게 되는 내전은 혁명의 논리 그 자체로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하지만 스딸린 통치 하의 소련에서 일어났듯이 수백만 명의 인민이 처형되고 추방되고 기아에 허덕이다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처럼 대규모 희생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다. 세계대전도 아닌 시기에 한 국가 안에서 벌어지는 그런 참혹한 희생은 '혁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인간의 문명에서 그 어떤 사후적 성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행위이다. 스딸린과 그 추종자들은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에 걸쳐 강제적 농업집산화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소련 전역의 농민들을 향해 적군을 동원하면서까지 '내전'을 벌였다. 그리고 '승리'했다. 하지만 그 승리는 주어진 조건에서 보다 합리적인 정책 선택으로 큰 재앙을 막고 더 높은 생산성을 올릴 수도 있었던 것을 해내지 못한, 당시 최고 권력자들의 무능력과 비정상적으로 작동한 정책 집행기관들의 난폭한 자의성의 증거였다.
우리는 혁명이 다가오는 날짜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사태의 와중에 발생하게 될 인명과 문명의 희생을 최소한도로 막기도 힘들다. 하지만 지축을 뒤흔드는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희생을 치르면서 혁명이 진행되려면 평소의 '진지전'이 아주 중요하다. 아나키스트였던 크로포트킨은 러시아혁명 전에 최악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배세력마저 기존 체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혁명의 지도자였던 레닌은 1920년대 초반, 그의 말년에 혁명 전 체제, 즉 서구의 부르주아체제가 새로운 사회주의 체제의 건설을 위해 남긴 긍정적 유산이 많다는 점을 몇 번이나 지적했다. 기업과 은행의 대규모 경영과 그에 따른 회계·관리 업무의 단순 합리화, 대안적 사회경제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발전, 그리고 전반적으로 높은 시민의 문화수준에 관한 반복된 언급 등. 그것은 혁명 후 국가건설 과정에서 바로 그런 조건과 능력들이 러시아에 얼마나 절박하게 부족했던가를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레닌은 러시아 혁명가들과 공산주의자들이 그들의 혁명에 대한 열성과 헌신에 비해 실제적인 국가 운영 능력이 형편없이 저급하다는 점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기존 체제의 전복이라는 혁명적 사태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과 그 후 혁명이 애초 목표로 했던 '인민을 위한 국가경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업이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전자는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요, 후자는 전쟁의 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혁명의 구체적인 전개 양상은 그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만들어놓은 어떤 프로그램이나 전략대로 펼쳐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프로그램을 고수하는 집단은 거대한 혁명의 물결에 좌초하거나 또는 만약 승리자가 된다면 현실과 거리가 먼 목적을 위해 사회구성원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혁명적 대중은 위로부터, 또는 밖으로부터 완벽하게 통제될 수 없다. 그들이 통제된다는 것은 밑으로부터 역동적인 혁명의 물결이 잦아들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인민은 이제 국가 주도의 과업 달성을 위한 동원의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1930년대 스딸린은 과감하게 그 길로 나아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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