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에서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는 장애인 부모들의 모습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장애인 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 대다수 언론이 지역 발전의 논리보다는 장애 학생의 교육권이 우선이라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였고, 특수학교 설립을 지지하는 서명 운동이 강서구에서도 일어났다.
국무총리도 공식 회의에서 "장애아를 가지신 엄마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시며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시는 사진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부끄러움을 일깨웠다"며, "장애아를 위해 위한 특수학교를 필요한 만큼 지을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도와주시기를 호소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혐오'
2015년 서울시교육청이 동대문구에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센터를 설립할 때 일부 주민들은 공사를 물리력으로 방해하기도 했다.
이에 설립을 촉구하는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반대하는 주민들과 면담한 결과 처음에는 '①발달장애인은 위험하다, ②집값이 하락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발달장애 학생들이 위험하지도 않고 객관적 정보를 통해 집값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결국 '③발달장애인이 들어오는 게 싫다'는 본심을 드러냈다. 사실 이는 막연한 혐오에 해당한다.
필자가 사는 서울시 도봉구의 아파트에서도 인근에 학습 장애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었다. 왜 반대하는가를 물으니, 그 주민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다, 집값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근거가 희박한 추정이다. 결국 장애에 대한 '막연한 혐오'와 편견이 뿌리이다.
서울시 강남 밀알학교나 용산 시각장애학교 반대 사례처럼 물리력을 행사하던 수십년 전과는 달리 지역주민들의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직업훈련센터 설립을 반대했던 동대문구 주민들도 이제는 대부분 우호적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장애 학생을 비롯한 사회약자의 기본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국무총리의 발언을 통해 확인되듯이 장애에 대한 동정론이 여전히 우세하다.
아직도 속 깊은 혐오들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인권 선진국 처럼 혐오 범죄를 규정(영국)하거나 공공시설 건립에 관한 법적 장치(미국)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발전이나 님비(NIMBY) 등 실질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에는 주민과의 상호이익을 도모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전향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시 교육감이 장애학생의 원거리 통학 해소 등 교육권 보장을 위해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되 주민 편익시설을 함께 고려하는 모델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매우 전향적인 발상이다.
독일 특수학교를 견학하다
헤센주 마부르크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케겔베르그 특수학교(Kegelbergschule)는 독일장애인부모단체(Lebenshilfe, 레벤스 힐페)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다. 현수막에는 동반, 교육, 성장을 모토로 가르치고, 활동하고,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특수학교 관리자에 의하면 독일에도 통합 교육이 보편화되었지만, 학생의 특성에 따라 특수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들이 다수(69%)다. 특수학교가 일반학교보다 교육시설이 더 좋고 지원 예산이 더 풍부하다고 한다. 그는 물리적 통합을 했을 때, 이에 따른 충분한 준비와 예산이 부족해서 학생들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학급에 두 명의 특수 교사와 보조 인력이 상근한다. 교육 과정과 예산 계획은 재량에 의해 이뤄지며 지원 예산에 거의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나 관리자들은 장애 학생의 교육 성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이나 교육 장비를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실제 생활과 연관된 교육 활동
특히 학교 내부 시설이 넓고 다양한 교육실을 구비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학교 마당의 빈 공간을 다양한 신체 경험을 할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독일 특수학교의 기본 구조는 운동실, 수영장, 스누젤렌(심리안정실), 감각운동실, 음악실, 컴퓨터교육실, 목공 및 철공실, 조리실, 재봉실, 야외 놀이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다.
특이하게도 모든 교실에 실제 주방기구를 세팅하고 있었다. 정서적 지원(놀이, 운동, 심리안정)을 바탕으로 실제 생활과 연관된 교육 활동(조리, 재봉, 목공, 철공, 자전거 등)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루기 어려운 장비가 많은 목공실, 철공실과 컴퓨터 교육실에서도 장애 경중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철공실에는 전기톱 등 위험한 장비들도 갖추고 있는데 장애 학생의 개별적인 역량에 따라 실습 기회가 주어진다. 이를 통해 안전을 확보하는 장치나 노력을 통해 위험에 대비하는 기술을 가르칠 수 있다.
컴퓨터를 활용한 쉬운 수학, 문자 교육 등도 진행된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학생도 현대 사회에 최대한 적응하도록 지원하기 위한 교육이다. 실생활 중심의 교육은 또한 장애 학생이 학교 교육을 마치고 통합된 지역 사회나 직업 현장에 들어갈 때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교육 목표를 담고 있다.
장애인 부모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독일에서는 특수교육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에 힘입어 절반이 넘는 30만 명의 발달장애인이 장애인 공장이나 일반 고용 현장에서 일한다.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 부모들의 역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애 영역별로 세분화된 특수교육을 운영해 온 전통 속에서 부모단체인 레벤스힐페의 제안에 의해 특수학교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졌고, 이를 토대로 특수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교육 투자와 개혁이 이뤄져 왔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부모들의 헌신적인 운동에 의해 특수교육법(2007년 시행)과 발달장애인지원법(2015년 시행)이 제정되었다. 이제 모든 발달장애인이 당당한 국민으로 성장하도록 그들을 존중하고, 정부는 특수교육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1951년 미국 미네소타 주지사 루터 영달(Luther W. Youngdahl)은 미국발달장애인협회 창립대회에서 "위대한 민주주의의 척도는 우리 사회가 가장 약한 시민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있다"라며 장애인 부모 운동에 주목했다.
'당사자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는 상식을 되새겨 보고 욕구를 가진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박인용 서울장애인부모연대 전 회장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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