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세상을 뒤흔들자, 사흘 뒤 페이스북에 태연스레 이런 문장을 적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정말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 보복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믿으십니까?"
정 의원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9월 27일 국회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완장 차고 거들먹거리면서 군림하는" 조선시대 사화에 비유하고 나섰다. 나아가 '댓글 정치'의 원조는 노무현 정부라고 주장하면서 "언론 보도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실명 댓글로 의견 개진하라"는 참여정부 시절 문건을 사례로 제시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의 경지다.
공무원도 시민사회의 구성원이니, 실명을 걸고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어찌 문제가 될 수 있으랴. 정부와 국민 간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란 측면에서 오히려 적극 권장되어야 할 사안이다(박근혜 정부 당시 그 숨 막히던 민관(民官) 불통을 떠올려보라). 이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의 조직적 불법 댓글 범죄와 동일선에 배치하는 의도 자체가 불순하다.
정 의원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누가 봐도 납득이 어려운 견강부회(牽强附會)를 내세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끈질기게 불러내는 것일까. 야당 의원의 돌발적 감정 폭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시적 착각? 그렇게 해석하는 분이 있다면, 과도하게 순진한 해석이다. 나는 그가 던지는 일련의 발언에 치밀한 암수가 숨어있다고 본다.
9월 26일 자 언론 보도를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MB에게 비판적 입장인 사람이라면 여야, 보수진보, 학계, 정치계, 언론계, 연예계를 가리지 않고 불법적 댓글로 공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국정원 게이트'가 그 어두운 실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보다 핵심적인 것은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으로 약칭되는 MB 정권의 광범위한 부정부패 의혹이 전모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수사 압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MB정권 정무수석 출신의 국회의원이 거듭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호출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사건을 엉뚱한 맥락으로 호도하고 있다. 이것은 전후좌우 맥락을 모르고 던진 발언이 아니다. 당황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채 자로 잰 듯 준비된 멘트를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밀한 목적과 의도를 지니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화인(火印)처럼 떠오르는 것은 M과 B 두 글자다. 해당 정권 아래에서 자행되었던 광범위한 '적폐'와 '불법'을 향한 오랏줄이 차근차근 조여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정 관련 기관장을 총집결시켜 범정부 차원의 '반(反)부패 정책협의회'를 개최하고, '성역 없는 부패 척결' 의지를 천명한 것도 무관하지 않은 사태 진행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숨이 막힐 법한 상황이다. 나는 이것이 정 의원의 느닷없는 발언을 시리즈로 이끌어낸 핵심이라고 판단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대중적 논란을 촉발한 후, 이를 통해 여야를 막론한 진흙탕 싸움을 확산시키려는 의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MB 정권 불법 행위에 대한 현 정부의 사법 처리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사적(私的)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라고 여론을 조작하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MB를 향한 '사법처리의 칼날'이 빗겨나가게 하기 위한 암수(暗手)인 것이다.
정 의원의 페이스북에 등장하는바 "그래서 그 한을 풀겠다고 지금 이 난장을 벌이는 것인가. 적폐청산 내걸고 정치보복의 헌 칼 휘두르는 망나니 굿판을 즉각 중단하라!!"(9월 20일 자)라는 문장이 (글쓴이 자신도 모르게) 위와 같은 의중을 정확히 노출하고 있다.
이에 나는 현재 이어지는 일련의 도발이 MB 그룹의 장기간 전략적 숙고를 거쳐 준비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전직 집권여당 원내대표라는 정치적 무게를 지닌 정진석 의원이 총대를 메고, 관련 정치 세력이 힘을 합쳐 이슈를 확산시키는 것으로…. 즉석 피자집 배달부가 배달통에서 피자를 꺼내듯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세상을 떠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조사 운운은 이런 추론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한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이 발언한 '노무현 상여' 운운도 같은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원래 이런 작업에 능한 그룹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는 발언을 접하면, 위장이 뒤틀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평균 상식인의 마음이다. 하지만 조금 냉정해지자고 주문한다. 지금 저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물타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형적이고 공격적인 '프레임 전쟁'이기 때문이다.
정교한 상황분석을 생략하고 즉자적으로 대응하다가는 자칫 상대의 북소리에 맞춰 춤추는 꼴이 될 수 있다. 특정한 이슈가 돌발했을 때 그것을 선도하는 그룹에 의해 사태가 특정 '단어'의 틀(frame)에 갇히면, 이와 관련한 모든 해석과 연상이 해당 단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를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프레이밍'이라 부른다.
미끼를 물면 안 된다. 지금 MB 그룹이 끈질기게 투척하는 '노무현'이란 단어가 일단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으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계속 그 프레임만 뇌리에 맴돌 우려가 크다. 이를 대체하는 보다 본질적이고 강력한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노무현'이란 단어가 나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현재 상황과 결코 관련이 없다'라는 식으로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인 모욕 발언에 대한 사법처리는 절차에 따라 냉정하고 엄격히 진행하면 된다. 그 밖의 일체의 마타도어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응당 제기되어야 할 본질적 프레임으로 '그들'을 직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명박에 대한 직접 수사를 즉각 시작하라!'와 같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제기되는 노무현과 참여정부 책임론 소동은 오히려 MB 사법처리를 향한 판을 역설적으로 깔아주고 있다. '도둑정치(Kleptocracy)'라 불릴 정도로 야금야금 나라 곳간을 파먹은 지난 정권의 구조적 비리가 서서히 마각(馬脚)을 드러내고 있다. 담담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그들이 시도하는 '노무현 프레임'을 '이명박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범국민적 여론을 모아 MB 정권의 적폐에 대한 철저하고 근원적인 수사를 요구하자. 저들의 '노무현 때리기' 암수를 열배 백배 더 강하게 되받아치는 유일한 카운터 펀치가, 나는 그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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