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기 직전이다. 그리고 유엔은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를 그해 3월 8일 통과시켰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다.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이틀 후인 2월 27일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 검토에 착수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공약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실현을 위한 조치였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월 26일 청와대에서 얀 엘리아손 당시 유엔 사무부총장을 접견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북한의 호응을 기초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어수선한 와중이었다.
당시 자유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은 단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았다. 토를 달았으면 '배신자'로 찍혔을지 모를 일이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윤상현 의원은 그해 5월 28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책 상황하고 상관없이 계속해 주겠다"고 했다.
그해 9월 27일 통일부는 WHO의 북한 영유아 대상 지원사업에 남북협력기금 63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한다.
요약하자면, 박근혜 정권은 북한의 핵실험 관련 유엔 대북 제재가 논의되고 있는 그 심각한 상황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추진했고, 자유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은 그런 정부의 조치를 오히려 장려했다.
그리고 2017년이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의 지난 14일 논평을 보자.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모자보건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안보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귀를 의심케 하는 계획이자,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계획이다.
북한에 대한 퍼주기 정책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오늘날 우리의 운명을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상황으로 만든 사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조차 아직 하지 않았다.
사드 임시 배치 등 국내의 따가운 여론에 떠밀려 대북제재 조치를 강구하는 듯 하더니 역시나 '페이크 모션'이었음이 분명해졌다. 사드 전자파 무해성, 미국·일본 등 자유 우방에 대한 신뢰는 온데간데없는 문재인 정부가 800만 달러의 돈을 김정은이 '인도적'으로 쓴다는 것은 철썩같이 신뢰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뿐이다. 세계가 등을 돌린 불량배국가에 대해 안보 위협의 최대 당사자인 우리 정부만이 무한 신뢰를 보이고 있는 형국을 국제 사회가 얼마나 비이성적인 상태라고 조롱하며 의구심을 보낼지 걱정이 앞선다.
자유한국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전날인 19일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도 "국제사회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강도 높게 비판하며 제재하고 있는데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며 퍼주기를 시작했다"고 비난했다.
희대의 명대변인(이었던), 자유한국당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 박희태의 어록을 돌려줄 때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라는 원칙은, 박근혜 정권도, 문재인 정부도 동일하게 내놓은 설명이다. 그런데 전자는 원칙이고 후자는 반칙이라는 게 자유한국당의 논리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유니세프 등 유엔 관련 기구를 통해 지원된다. 박근혜 정부도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를 통해 인도적 지원을 추진했다. 특별히 다른 게 없다. 유엔 관련 공식 기구가 집행하는 일을 두고 '김정은 정권에 퍼주기'라 비난하는 것은 유엔 기구 자체를 불신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참으로 무지한 발언이다.
자유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에게 3차 핵실험으로 대북 제재가 논의되는 속에서 추진한 박근혜 정권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엇박자'도 '억장을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많게는 수개월 걸리는 절차다.
지금 북핵 문제로 인한 긴장은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대북 인도적 지원도 그런 대비책 중 하나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 명분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나쁘지 않은 카드라는 보수의 시각도 있다. 지난해 북한 수해 당시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과거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한 정권 지원 정책으로 인식됐고 실제로 '퍼주기'이기도 했으나, 새로운 방식의 대북 수해지원은 김정은 고립화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을 자유한국당이 반박하고 있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방송 장악 국정조사'를 추진하자고 할 땐 언제고 민주당이 '좋다. 하자'고 하니 슬그머니 입을 닫는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자유한국당은 이제 '내로남불'로 일관하지 말고 지난 9년간 자신들의 집권 시기에 북한이 핵을 고도화한 '팩트'에 대해 통렬한 반성을 먼저 내놓아야 맞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권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별다른 비판도 하지 않던 보수 언론들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아니꼽게 바라본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국익'을 외쳐왔던 자칭 '애국 보수' 언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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