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영령들을 기리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9년 만에 제창되었지만 자유한국당 기념식 참석자들만큼은 입을 앙다문 채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 대표 권한 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제창에 대해 정치권에 협조를 구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기념식 후 기자들을 만나 설명했다.
정 원내대표는 "5.18 민주영령에 대해 진심으로 추념의 말씀 올리고 삼가 명복을 비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매해 5.18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합창 공방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곤 했다. 시작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둘째해였으며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제창 반대 목소리 한가운데에 박승춘 보훈처장과 구 새누리당 친박계 인사들이 있었다.
제창 반대론자들은 '국민 여론'을 이유로 들었다. 이 노래가 북한의 김일성 찬양 노래로 비춰지는 데다 진보 진영 각종 단체의 집회 등 행사에서 꼬박꼬박 불리는 만큼 정부가 주최하는 기념식에서 제창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단 논리였다.
그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유가족들과 광주 시민들의 간절한 요구에도 정부 기념식에서는 불릴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박심(朴心)' 때문이었다는 구 여권 인사의 증언도 있다.
현재는 바른정당에 있는 하태경 의원은 CBS와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에 5.18 행사를 앞두고 논란이 있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불러도 되는 노래다 보수가 반대하지 말자고 했더니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하 의원은 전화를 건 사람은 당시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였다고 설명하며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하 의원 좀 자제하라'고 해서 왜 그러냐고 하니까 '대통령이 불편해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던 정진석 의원도 5.18 기념식을 앞두고 (제창을 하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따라불러야 하잖나. 그게 문제라는 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박 전 대통령과 박승춘 전 보훈처장, 그리고 새누리당 친박계 인사들과 이날 정우택 원내대표의 '제창 반대' 일성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치권 안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곤 했다.
하 의원은 올해에도 "박근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 것은 지극히 옹졸한 것이었다"며 "박 전 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중 '임'은 김일성이고 '새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의미한다고 청와대에 보고해 제창을 막았지만 이것은 허위사실이다. 탈북자 주성하 기자, 태영호 공사 증언에 의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에서 금지곡이다"라고 비판했다.
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태 공사와 한 인터뷰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태 공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북한에서도 대학생들이 1990년대 초까지는 많이 불렀으나 노래에 깔린 것이 저항 정신인 까닭에 지금은 북한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자신이 과거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른 노래라고 수차례 설명하며 재작년에는 기념식에 참석해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옆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노래를 함께 부른 일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 그리고 이에 따라 치러진 올해 민주화 운동 37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제창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공식 기념곡으로 선정될 가능성도 커진 모습이다. 공식 기념곡 지정을 위해서는 법제화가 필요하다.
현재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기념곡으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의원, 국민의당 박지원·김동철 의원 등 다수가 발의해 놓았다.
바른정당의 대선 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은 전날인 17일 광주 민주화 묘지를 홀로 찾아 "광주·전남 시·도민들이 공식 기념곡으로 그 곡이 선정되길 원하면 가능한 일"이라며 "주호영 원내대표와 의원들과 상의해 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있더라도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 법제화에 뜻을 모으면 기념곡 지정이 충분히 가능해진 셈이다.
다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 왔던 김진태 의원인 만큼, 최종 법안 통과까지에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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