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 '유전자 가위(CRISPR/CAS-9)' 등 지금 가장 뜨거운 첨단 생명과학의 이모저모와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살펴보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송기원 연세대학교 교수(생화학)가 사회, 경제, 윤리 등 우리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의 최전선을 친절하게 안내합니다. (☞관련 기사 :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크리스퍼 가위 기술의 가장 큰 기여는 생명과학 연구에 아주 유용한 방법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유전체의 DNA정보를 쉽게 다 읽어낼 수 있었지만 대부분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크리스퍼 기술은 인간 세포 유전체에서 유전자를 쉽게 하나씩 모두 없애버려 그 표현형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서 전체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 기반을 마련하였다.
또한 크리스퍼 기술로 유전체 내 원하는 단백질 유전자 뒤에 형광단백질 유전자를 붙여줌으로써 세포 내에서 각 유전자에 의해 발현되는 단백질의 위치를 손쉽게 추적하고 그 발현 정도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생명과학 연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동물 모델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전체 내 특정 유전자를 없애거나 집어넣는 것이 용이했던 마우스가 중심으로 이용되어 왔으나 크리스퍼 기술의 발견으로 초파리, 물고기, 토끼, 염소, 양, 돼지, 개, 원숭이, 유인원 등 거의 모든 생물에서 유전체 변형이 가능해졌고 이들을 모두 모델 생물체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 개발된 약의 효과나 병의 발병 원인 등을 연구할 때 인체와 더 유사한 동물 모델에서 연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다양한 모델 생물체를 이용하면 신약의 효과와 새로운 치료법 등의 개발이 훨씬 더 정확하고 용이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듯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세포학 등 거의 모든 생명과학 연구 분야에서 크리스퍼 기술은 기존 연구 방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 방법을 제공해 주고 있다.
크리스퍼 기술은 생명과학 연구 분야에서만 제한되지 않고 이미 세균부터 곤충, 동식물, 사람에 이르기까지 적용되지 않은 생물체가 없을 정도로 많은 생물체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중 성공적이라고 알려진 몇몇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가장 넓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경우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을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라고 부르는 기술에 적용하는 것이다. 유성 생식을 하는 생명체에서 일반적으로 어떤 유전 요소가 번식 과정을 통해 부모에서 자손으로 전해지는 확률은 50%인데 '유전자 드라이브'는 그 확률이 50% 보다 증강되어 편향적으로 특정 유전요소가 많이 전달되는 유전시스템을 말한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2003년 영국의 진화 유전학자인 오스틴 버트(Austin Burt)에 의해 제안된 시스템으로 그 결과는 그 종 전체 개체 집단에서 특정 표현형(phenotype)을 결정하는 유기체의 유전적 구성인 특정 유전형(genotype)이 선택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또한 유전자 드라이브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지며 잠재적으로는 전체 집단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이렇게 유전자 드라이브가 되려면 유전체에서 드라이브 시키려는 유전자 가까이의 DNA를 잘라주어야 하는데, 이 자르는 도구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는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드라이브가 현재 가장 성공적으로 도입된 경우는 말라리아 모기이다. 말라리아는 매년 2억에서 3억 명의 사람이 감염되고 수백만 명이 사망하는 위험한 질병으로 말라리아 모기에 기생하는 말라리아 기생충에 감염된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말라리아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의 개체 수를 감소시키는 방법이다. 토니 놀란(Tony Nolan)과 안드레아 크리스티(Andrea Cristi) 연구팀은 모기의 임신에 관여하는 3개의 유전자를 변형시킬 경우, 암컷 모기를 불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유도해 불임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자연선택에 의해 종(種) 전체의 유전자 풀에서 제거되어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3개의 모기 불임 유전자에 크리스퍼 유전자 드라이브를 적용시켜 불임 유전자가 모기 집단에 널리 퍼지도록 유도했을 때 실험을 통해 4세대가 지난 후 75%의 모기들이 불임유전자를 갖게 되는 것을 보고하였다.
또 다른 접근은 말라리아 병원충 전달자인 모기가 말라리아 병원충에 내성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2012년 앤서니 제임스(Anthony James)는 말라리아 병원충에 대항하는 항체를 생성하는 유전자를 발견해 모기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 유전자를 이식 받은 모기는 말라리아 병원충의 활성을 성공적으로 억제시켰다.
하지만 이 유전자를 많은 수의 모기들에게 전파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2015년 말라리아 항체 유전자를 전달하고 복제시켜 줄 CRISPR-Cas9을 이용한 유전자 드라이브 시스템을 모기에 적용시켰다. 즉, 크리스퍼를 이용한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로 말라리라 항체 생성 유전자와 그것을 복제할 수 있는 유전자를 함께 후손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이들은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눈 색깔도 함께 변화하도록 설계하여 유전자 드라이브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결과 항체 유전자를 가진 수컷 모기의 자손 중 99%에서 정상적으로 항체유전자가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유전자 드라이브로 응용된 크리스퍼 가위 기술을 활용하여 후손들에게 말라리아 전달 차단 유전자를 신속하게 확산시키는 모기 품종을 개발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들 유전자변형 모기들은 말라리아에 대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 질병을 사라지게 만들고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곤충의 능력도 제거할 수 있다.
이 연구를 이끈 캘리포니아 대학의 앤서니 제임스(Anthony James) 교수는 유전자 드라이브를 이용하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이 말라리아 뿐 아니라 댕기열,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지카 등 모기 매개의 질병을 박멸하는데 매우 유망하다고 밝히고 있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과학자들이 개조한 유전자 변형 형질이 빠르게 후속 세대의 개체 군(群)으로 성공적으로 전달되는 것을 보장하는 기술이다. 이들의 빠른 전달 속도는 변형된 형질이 종의 전체 개체군에 확산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유전자 드라이브의 강력한 파급효과는 질병 억제라는 목적에서는 큰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생태계에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위의 모기 연구에서는 유전자 드라이브가 적용된 모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실험실을 5중 구조로 밀폐하고, 만약 빠져 나가더라도 야생에서 생존할 수 없는 모기 종을 고르는 등 치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현재 과학자들은 유전자 드라이브를 제어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이 기술을 자연계에 적용시키는 것을 보류하고 적용된 개체가 생태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합의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세계적으로 이 기술에 대한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인 바, 미국 과학아카데미 산하 전문위원회는 지난 6월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을 자연에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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