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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개헌, 졸속 개헌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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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개헌, 졸속 개헌은 위험하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개헌 시기를 못박는 개헌은 어떤가?

장장 4개월에 걸쳐 연인원 1500만 명 이상이 추위와 싸우며 촛불시위를 진행한 결과 박근혜 탄핵이 이루어지고 조기 대선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촛불시민혁명은 개헌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재편 논의가 무르익고 있으나, 대다수 국민은 정략적 개헌 논의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정국은 급속하게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대선 전 개헌은 정략에 의한 졸속 개헌일 수밖에 없으며, 국민적 공감과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 후 개헌도 결코 쉽지 않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은 누구라도 개헌을 회피하려고 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개헌을 위한 개헌이다. 정치권이 주도하는 정략적 개헌이 아닌 시민이 주도하는 촛불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마무리하도록 차기 개헌의 절차와 일정을 헌법 부칙에 명시하는 원 포인트 개헌안을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이다. (필자)

개헌, 과연 필요한가?

박근혜-최순실 일당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와 국정농단 사태를 바라보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제도가 나빠서라기보다는 나쁜 지도자가 제도를 악용했기 때문이니 좋은 지도자를 뽑으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도가 문제라는 생각은 제도 개혁, 궁극적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사람이 문제라는 주장은 박근혜의 퇴진과 정권 교체가 시급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박근혜는 그보다 더 부적합한 사람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쁜 지도자였고, 따라서 시급하게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고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이 생각에 절대 다수의 국민이 공감했고, 그 결과 탄핵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도의 개혁, 특히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을 바꾸는 것이 답이라는 주장의 결정적 맹점은 새로 바뀌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들은 그가 좋은 지도자일 것이라고 믿었다. 곧 치러질 대선에서 우리가 믿고 뽑은 지도자가 또 다시 기대를 저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정치제도를 포함해서 사회제도의 역할은 사람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선한 행동을 보상하고 나쁜 행동을 벌함으로서 누구나 선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만약 우리가 선출한 지도자가 기대와 달리 나쁜 행동을 한다면 이를 견제하고 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은 제도에 따라 선한 행동도 악한 행동도 하는 것이지 원래부터 선하거나 악하기만 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는 것이 과학적 연구의 결론이다. 필자의 경우, 예를 들면, 과속운전을 단속하는 카메라가 없을 때와 있을 때 운전 속도가 달라진다.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은 제도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광범위한 헌법유린과 상식 이하의 국정농단이 장기간 지속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견제가 거의 없었던 것은 정부의 고위관료, 여야 정당의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 사법부의 고위법관들까지 모조리 나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 권력이 너무나 비대하고 국회와 사법부까지도 상당한 정도로 지배할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1987년 6.10민주항쟁 이후의 개헌은 대통령 직선과 단임에 초점을 둔 것이고, 과거 유신헌법부터 이어진 초강력 대통령 권력은 거의 바꾸지 않은 것이었다. 87년 헌법에 의해 대통령직을 수행한 사람이 박근혜 이전에도 다섯 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박근혜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측근실세와 문고리 권력의 발호, 정권 초기 여당의 내시화와 후기 본인의 레임덕 현상 등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노정했다.

그런데 현행 헌법의 문제는 이런 정도를 넘어선다. 현행 헌법에 기초한 소위 '87년 체제'는 원천적으로 절름발이 민주주의이며 재벌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말로만 국민이 주권자이지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원을 선출 할 때뿐이고 의원 선출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노예가 되어 버려,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이 꼭 맞는 정치체제였다.(장 자크 루소, 이재형 옮김, 사회계약론, 문예출판사, 2013.) 정치는 민의를 대변하기보다는 소수 정치엘리트에 의해 장악되었고, 이들은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카르텔에 포획되었다.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돈도 실력'이라는 '헬조선'에서 대다수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탈조선'을 꿈꾸게 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은 단순히 나쁜 대통령 하나 몰아내고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그러나 실제로 어떨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새 대통령 뽑자는 것이 아니다. 시민주권을 바로 세우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모두에게 공정하게 기회가 보장되고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를 이루고자 함이다. 이런 방향으로 정치와 경제가 개혁되어야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개혁은 좋은 사람에게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개혁을 통해 나라의 주인인 국민 모두에게 권력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제도 개혁의 정점은 당연히 헌법 개정이며, 그런 의미에서 개헌은 "혁명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 4.19혁명이나 6.10항쟁도 새로운 헌법을 탄생시켰다. 개헌이 없다면 촛불시민혁명은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개헌, 무엇을 바꿔야 하나?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87년 체제'를 통해서 우리 국민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저급한,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정치란 무릇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민주국가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대통령 권한과 미약한 국회권력 때문에 대통령 권력을 누가 쥘 것인가가 항상 정치의 핵심이었다. 일찍이 그레고리 헨더슨이 한국정치의 역사적 특징으로 지적한 '소용돌이 정치'가 지속된 것이다.

더구나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등 선거제도가 승자독식 제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권력싸움 위주로 정치문화가 형성되었다. 생산적인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과거 독재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지역주의를 근거로 기득권화 한 양대 정치 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최근 양대 정당이 분열함으로써 다당제가 성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소선구제가 지속된다면 언제든 양당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과 그 전신,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수혜자로서 지역할거주의를 활용하여 정치시장을 독점했고,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 대통령 후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 중심의 패거리 정치를 해왔다. 패거리 정치는 반드시 정파의 이권집단화를 초래하고, 그 결과 유력 정치인들은 재벌에 기대거나 조종당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87년 체제' 하에서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재벌공화국은 변함이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 권력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장화 일변도의 정책은 거의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여야 간에 정책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한 사실이다.(""이제는 개헌해야" 분권형 대통령제·중임제 힘쏠려", [탄핵 후 긴급 여론조사], 서울경제신문)

새로운 헌법은 '87년 체제'라는 절름발이 민주주의를 온전한 민주주의로 바꾸는 개헌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주권이 바로 서고,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와 민생을 살리는 경제를 뒷받침하는 헌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첫째, 기본권의 강화다.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은 타인의 인권과 공동체의 안전을 현저하게 위협하는 경우 외에는 제한할 수 없도록 해야 하며, 평등권, 노동권, 안전권, 건강권, 환경권 등 사회권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국민소환, 국민발안,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도입이다. 국민은 더 이상 투표하는 노예가 아닌 진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저질 국회의원을 파면할 수 있어야 하고, 국회가 외면하는 민생법안이나 개혁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어야 하고, 사대강 사업이나 국정교과서 같은 황당한 정책을 국민투표로 부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권력의 분산으로 견제와 균형 및 협치를 이루어야 한다. 대통령 권력을 국회와 독립기관에 나누어야 하며, 중앙정부권력을 지방정부로 나누어야 한다. 득표수에 비례하는 국회의석 배분을 규정함으로써 승자독식 기득권정치를 끝장내고 비례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넷째, 경제민주화의 실효성 담보다. 현행 헌법 119조 2항은 경제민주화를 담고 있지만, 그 표현이 추상적이어서 선언적 규정에 그치고 실제 입법이나 정책에서 거의 반영이 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개헌의 필요성은 과거에도 여러 번 거론되었고, 개헌의 방향에 관해서도, 특히 권력 분산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헌재의 탄핵 결정 직후 서울경제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의 경우, 49.2%의 응답자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19.8%의 응답자가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고 답하였다.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한다고 답한 사람은 14.4%에 불과했고, 아마 이들 중에도 상당수는 현재에 비해서는 대통령 권력을 줄이기를 원할 것이다. 권력구조에 정답은 없다. 권력분산에 관한 거의 절대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여론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이다.

개헌, 언제 해야 하나?

개헌의 시기와 관련하여서는 정치권에서도 대립하고 있고, 국민여론도 양분되어 있다. 의 필요성은 과거에도 여러 번 거론되었고,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권력구조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언제 개헌을 단행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여론이 나뉘어 있다. 위에서 인용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5.1%가 대선 전 개헌 추진이 바람직하다고 답했으며, 36.9%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하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28.1%였다.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대선 전 개헌과 대선 후 개헌에 대한 지지가 실질적으로 같다고 봐야 한다.

대선 전 개헌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졸속 개헌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조기개헌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국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오래 전부터 논의한 개헌안도 있고, 최근 국민의 당, 바른 정당, 자유한국당 등이 대동소이한 개헌안을 내놓았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때도 짧은 시간 내에 개헌을 마쳤다는 점 등을 들어 대선 전 개헌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1월부터 가동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의 논의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각 당에서 마련한 개헌안은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심사숙고한 안이라기보다는 시간에 쫓겨 대충 만든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87년 헌법이 문제가 많은 것은 당시에도 시간에 쫓겨 개헌안을 대충 만든 것이 한 원인이다.

둘째는 대선 전 개헌 추진이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한 정략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정신과 요구를 담아내는 근본적 개혁을 위해 나라의 기본 틀인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는 달리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정치적 위기에 처한 전 새누리당 세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로 개헌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개헌이 오히려 정권교체와 개혁을 막기 위한 정략적 방편으로 활용될 여지가 생겼다. 야권에서도 정치적 입지가 취약한 정치인들이 조기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 구축 등 정략의 방편으로 대선 전 개헌을 추진하는 흐름들이 나타났다. 가장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개헌추진파와 국민의 당, 그리고 바른 정당이 중심이 되어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를 확보해서 개헌안을 발의하고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식의 개헌은 촛불시민혁명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권력 구조에 관한 정파 간의 타협을 매개로한 그야말로 정략적 개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자칫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세력의 연명과 온존을 돕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선 전 개헌을 지지하는 여론도 반대 여론만큼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개헌을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이 많고, 반대로 문 전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대선 전 개헌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다. 문 전 대표는 당선가능성이 매우 높은 후보이기에 대선 이전에 개헌이라는 변수를 끌어들이지 않고 싶어 하며, 그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개헌을 고리로 반문연대를 구축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높은 지지율로 대세론을 구가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 지지자 못지않게 비토 세력도 많다. 조기 개헌에 대한 양분된 여론도 이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나아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선호와 무관하게 대선 전 개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정파적 이해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를 걱정하는 진정성에 입각해서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은 일단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개헌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고 염려한다. 과거에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고 여러 번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한 번도 본격적인 추진이 되지 않았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권력을 쥔 자가 스스로 자기 권력을 내려놓거나 줄이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배우는 사실이다.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공약한 정치인, 심지어 내각제 합의까지 한 경우에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개헌을 반대했다. 임기 전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이 반대하는 일이 정치권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임기 후반에는 차기 대권이 유력시 되는 이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들이 또 개헌을 반대하는 패턴이 일관되게 반복되었다. 그러니 대선 후에 개헌을 추진하자는 것은 대선 전 개헌 추진 못지않게 정략적인 접근이고 사실상 개헌 회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개헌, 누가 해야 하나?

지금 개헌이 본격 논의되는 것은 촛불시민혁명에 기인한다. 박근혜의 탄핵을 이끌어낸 동력은 국회와 정치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서 나왔다. 개헌의 원동력도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이게 나라냐'고 항의하며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국가 개혁을 요구한 촛불시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주권자로 재탄생한 촛불시민들은 대의 민주주의의 처참한 실패를 목도하면서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외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이 개헌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30년 만에 국회에 개헌특위가 설치되어 개헌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이와는 별도로 국민의 당 등 몇몇 정당은 자신들이 준비한 개헌안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개헌시기에 관한 논란도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 반면, 촛불시민은 탄핵의 완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탄핵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 개헌은 국정문란에 책임이 있는 세력의 정치적 연명을 위한 정략이라는 의구심, 시위를 주도한 퇴진행동 집행부의 정치적 균열 등으로 개헌논의를 도외시 해왔다. 이제 탄핵이 완결되었으므로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로서 개헌을 본격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으나, 개헌 시기와 관련한 정파 간 다툼의 와중에서 개헌은 또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야권연정'이나 '공동정부론'등을 앞세워 목전의 대선정국에 대처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현행 헌법에 의하면 개헌안 발의는 국회나 대통령만이 할 수 있고, 대통령이 유고 상태인 지금 국회가 개헌안 마련을 주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우리는 촛불시민혁명을 완성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개헌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신헌법의 잔재인 현행 헌법의 개헌절차 조항을 따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신헌법 이전에는 개헌안 발의를 국민과 국회가 할 수 있었는데, 유신헌법에서 국민발의를 빼고 대신 대통령 발의를 집어넣었던 것이 현행헌법에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시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개헌 논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최소한 헌법 개정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토론, 공청, 의견 개진의 과정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개헌 논의 방식은 추첨으로 선발한 '시민의회'를 중심으로 한 방식일 것이다.

시민의회는 이미 선례가 많다. 바로 이 시간에도 아일랜드에서는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개헌을 논의 중이다. 2013년에도 시민의회에서 개헌안을 논의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2012년 시민의회에서 새 헌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 소집으로 영역을 넓히면 그 사례는 크게 늘어난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온타리오 주,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호주 등이 그렇다. (김상준, “개헌 논의는 시민의회로 넘겨라", [다른백년 칼럼], 프레시안, 2016.12.1.)

시민의회에만 맡기는 방안이 불안하거나 너무 생소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국회의 개헌특위와 시민의회가 동수로 참여하여 최종합의안을 만드는 것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개헌특위에 구성되어 있는 자문위원회가 시민의회에 대해서도 자문기능을 수행하면 양자 간의 의견조율이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 딜레마와 묘수

대선 전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의 결정적인 약점은 그들이 실제로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물리적 제약, 그렇기 때문에 졸속으로 마련된 개헌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이 참여하지 못하고 공론화가 부족한 가운데 개헌안이 마련됨으로써 새 헌법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개헌이 아니라 정파의 이익을 위한 정략적 개헌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기에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끌어낼 가능성이 희박하다.

개헌의 정당성은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에서 나온다. 시민참여, 시민주도의 개헌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시민참여를 제도화할 입법과 시민주도의 논의 과정, 최종 개헌안 마련과 국민투표 절차가 필요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국민투표 시점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과연 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그가 개헌을 하려고 할까?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는데, 스스로 내려놓으려 할까? 지난 말의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강력한 권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필자가 그 자리에 있다면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그랬다. 남북관계 긴장, 외교적 위기, 경제 위기 등 개헌 논의를 연기할 핑계를 만들기는 여반장이다.

딜레마다. 대선 전 개헌은 시민참여를 배제한 정략적 개헌으로 인식되어 성공하기 어렵고, 대선 후 개헌도 신기루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제안한 '개헌을 위한 개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김형오, "'개헌 위한 개헌'이라도 먼저 하자", [시론], 중앙일보, 2017.01.26.) 정치권이 주도하는 정략적 개헌이 아닌 시민이 주도하는 촛불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마무리하도록 차기 개헌의 절차와 일정을 헌법 부칙에 명시하는 원 포인트 개헌안을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이다. 김 전 의장은 차기 대통령 취임 1년 내 개헌과 임기단축을 부칙에 규정하는 '개헌을 위한 개헌'을 제안했으나, 필자는 시민주도의 개헌 절차를 함께 명기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로써 반드시 개헌이 이루어지도록 못을 박는 동시에 개헌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안은 대선 전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개헌이 이루어진다는 확실성을 제공해준다. 자신들의 특권과 기득권을 지키는 개헌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내려놓는 개헌에 동의함으로써, 그들의 개헌 추진이 단순한 정략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한 진정성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할 기회를 또한 제공한다. 대선 후 개헌을 말하는 이들에게는 대선 국면에서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재편이라는 교란요인을 제거해주니 환영할 만한 방안이다. 무엇보다 촛불시민의 입장에서는 시민혁명의 제도화로서 개헌을 이룩함으로써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 되는 길이 보장되는 것이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탄핵의 완결로 이제 촛불시민혁명의 제2단계에 접어들었다. 혁명의 완성에 이를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4월 혁명은 결국 박정희 쿠데타를 낳았고, 서울의 봄은 전두환 쿠데타로 막을 내렸으며, 6월 항쟁은 노태우의 집권으로 귀결되지 않았던가? 설사 정권교체를 이룬다한들 이로써 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주권자의 뜻이 온전하게 반영되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실현해서 '헬조선'을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탈바꿈시킬 때 혁명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탈바꿈의 기초가 개헌이며, 그래서 개헌은 곧 혁명의 제도화인 것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당장 개헌의 절차와 시기를 부칙에 명기하는 '개헌을 위한 개헌'에 관하여 논의와 협상을 개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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