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박근혜를 파면한다" 강의실선 환호와 박수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박근혜를 파면한다" 강의실선 환호와 박수가...

[홍일표의 시민/풍/파] 개헌? '정당 연정'보다 '광장 연정'이 우선

다들 숨죽이며 TV 화면에 집중했다. 접속자 숫자가 많아서인지 화면과 소리가 가끔씩 멈추자 학생들은 "아" 하는 소리로, 긴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격동하는 한국현대사'라는 거창한 제목의 대학 1학년 교양강좌에 이보다 더 좋은 수업교재도, 수업주제도 없었다.

지난 10일 오전 9시부터의 강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을 함께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난생처음 읽는', 아니 '난생처음 보는' 것이라는 눈치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정도는 들어봤다는 표정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지만 1948년 7월에야 헌법이 제정되고, 그 한 달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과정을 설명했다. 1919년 4월 11일에 공표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가 이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되어 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헌법이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음도 얘기해 주었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이승만이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야'하기 이전, 1925년 3월 23일에 이미 '탄핵'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지금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며, 헌법재판소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하던 와중에 오전 11시가 되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헌재 사건번호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사건'의 결정문을 읽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행여 이해하기 어려워할까 걱정하며 '해설'(또는 '통역')을 마음으로 준비했다. 기우였다. 이정미 재판관이 읽어 내려간 결정문 요지와 주문은 해설이나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쾌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 순간 강의실에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흥분된 표정이 역력했다. 자기 자신의 일처럼 말이다. 당연히 그렇다.

수강생들 대부분 1998년생, 올해 만 19세다. 대선 일정이 5월로 당겨지는 바람에 투표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생겼다. 탄핵은 자기 일이라 기뻤는데, 대선이 남의 일이 되어 버렸다. 2017년 지방선거와 (혹시 있을 수도 있는) 개헌 국민투표가 인생 첫 투표가 된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아쉽단다. "개헌 국민투표는 나도 처음이다"는 말로 위로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 분위기였다.

▲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1600만 명의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을 들었다. 헌재의 탄핵 인용 다음 날인 11일 시민들은 "촛불이 승리했다"며 자축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고 보니, 1987년 10월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 개헌 쟁취'를 외치며 거리를 달렸던 수많은 대학 1학년(87학번)과 또래 청년들 중 상당수는 '만 20세'가 안 돼 국민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2007년에서야 만19세로 국민투표권 부여 연령이 낮춰졌다). 올해 쉰 살이 되는 87학번부터 올해 스무 살이 17학번까지 '개헌 국민투표'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 윗세대는 어떨까? 당연히 이들은 '87년 헌법'에 대한 찬반을 표할 기회를 가졌다. 헌정사상 최초 개헌 국민투표가 1962년 12월 6일 박정희가 의장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주도로 이뤄졌으니, 1942년생 이상이신 분들은 여섯 번이나 '개헌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87년까지는 짧게는 3년에 한번, 길어 봤자 7년에 한번 '개헌 국민투표'를 했으니 개헌 이후 30년 세월은 너무 길게 느껴질 법도 하다.

1998년생 학생들이 '헌법 수호'를 위해 대통령을 파면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환호한 바로 다음 날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회동해 '개헌'을 포함한 포스트 탄핵 정국을 논의했다. 김 전 대표는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 문병호 최고위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등을 만나 '반문(反文) 개헌연대'를 논의했다고 한다. 대선 전 개헌 약속과 후보단일화, 후보 양보 쪽에 총리, 경제·사회 부총리 배분, 2020년 20대 총선에서 국민평가 등의 구체적 로드맵도 제시되고 있다. 김 전 대표 본인의 대선출마까지 언급된다. 민주당 내 개헌파들이 내년 지방선거 개헌 국민투표 중재안을 사실상 수용함으로써 '대선 전 개헌' 동력이 사라졌다는 예측도 강하지만, '개헌 빅텐트'는 대선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정치적 변수인 건 여전하다. 87년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의 잘못된 권한 행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는 지적이나 30년 간 변화된 시대상황, 기본권 확장 요구 등을 반영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분명 일리가 있다.

그런데 현행 87년 헌법은 전체 유권자의 78.2%가 참여하고, 총 득표자의 94.5%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개정된 것이다. 궁금하다. 그 때 국민들은 헌법개정안에 대해 얼마나 충분한 정보와 논의를 거쳐 투표에 참여했을까? '6.29 선언' 이후 9월 18일 여야 공동 헌법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고, 10월 12일에 의결, 그리고 10월 27일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잦은 '개헌 국민투표'에 익숙했기 때문에 몇 달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직선제 개헌' 쟁취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1987년 거리는 '직선제 개헌'에 대한 목소리가 가득했다. 나머지 조항들도 중요했지만 최우선은 역시 '직선제'였다. 결국 그것에 대해 투표했던 것이다.

2017년의 광장은 어떠했던가? 장장 6개월여, 20회에 걸친 주말 촛불집회에서 '헌법을 개정하자',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쟁취하자'라는 구호를 들어본 적 없다. 반대로 '헌법을 지켜라'는 요구로 가득했다. 한번도 '헌법에 대한 찬반'을 직접 투표하지 못했던 이들도 너무 많았지만 "내 손으로 헌법을 고치겠다"는 주장은 없었다. 이제야, 아니 난생 처음으로 '헌법'을 읽었고, 그것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들이 다수다. 1998년생도, 1968년생도 마찬가지다. 광장에서는 나이도, 개헌도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개헌해 봐서 아는데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애쓰면 된다"라며 '잘못된 헌법', '낡은 헌법'을 대선 전에 고치자고 한다(그 헌법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4당 체제, 5당 체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미리 '연합정부'를 만들어 180석 넘게 확보하자고 한다. 정말 그렇게 어려울까 의문이다. 총리와 부총리, 장관 몇 자리를 나눠 주면 정당들이 합심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게 쉬울까 궁금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임을 내세우며 국회 가는 것조차 꺼리던 황교안 국무총리가 탄핵 이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치권에게 "이제는 '광장'이 아니라 '국회'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 것만큼이나 해괴하고 망측하다. 겨우 대통령 탄핵된 것이 다인데, 어느새 '통합'과 '화해'로 상황을 몰아가려 한다. 다른 누구도 아직 처벌받지 않았고, 다른 무엇도 아직 바뀐 게 없는데도 말이다.

4당 체제, 5당 체제를 어려워 할 것이 아니라 1600만 촛불을 훨씬 어려워해야 한다. 정당 간에 자리 나눔이 아니라 국민과 광장에게 무엇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더욱 고민되어야 한다. '연정'을 고민한다면 '정당 간 연정' 이전에 '광장과의 연정'부터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협치(governance)'다. 청와대와 행정부 차원, 국회와 정당 차원, 시민사회 차원에서 구체적 방안이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 대선 후보들도 그에 대한 입장과 계획을 밝혀야 한다. 지금까지는 다들 엉뚱한 얘길 하거나 아예 얘길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인데 함부로 끝이라 말고, 겨우 열렸는데 서둘러 닫으라 말길 바란다. 헌법도, 광장도. 1998년생이나 1968년생이나, 그 이하나 그 이상도 '처음'이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홍일표

시민의 바람과 물결이 만드는 '새로운 정치'를 꿈꿉니다. 시민적 기풍과 세력이 만드는 '다른 정치'를 기대합니다. 홍일표 박사는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한겨레경제연구소, 국회 등에서 일했고, <기로에 선 시민입법>, <세계를 이끄는 생각 : '사람'과 '조직'을 키워라-미국 싱크탱크의 전략> 등의 저서와 시민운동과 싱크탱크, 정치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