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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한국 대선주자들에게 주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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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한국 대선주자들에게 주는 도전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트럼프 시대 아태 질서의 변화와 한국외교의 도전

향후 5년 한국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손꼽히는 변수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호 향배이다. 트럼프 정부는 기존 공화당 노선과 달리 포퓰리즘적 성격을 띠고 있고 대통령 개인 성향에 좌우되는 면도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고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이른바 트럼프 쇼크(Trump shock)를 맞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지난 대선 이후 한국 정부와 정책서클의 수많은 인사들이 줄이어 워싱턴을 방문하여 감을 잡고 줄을 대고자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팀이 꾸려지지 않았은 상황에서 썩은 동아줄을 잡기 십상이다.

한국의 차기 정부는 워싱턴 귀동냥과 트럼프의 발언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향후 4년의 중기적 시야에서 미국이 마주하는 객관적 형세와 당선 이래 이제까지 보여준 트럼프의 정세인식을 토대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정책적 방향을 파악하고 한국에게 어떤 외교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냉정히 따져 보아야 한다. (필자)

닉슨 쇼크

2017년 1월 21일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군사, 사회 3면의 곤경(困境)을 겪고 있다. 2008년 리만 쇼크로 지구 금융위기의 진앙이 된 미국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연 2%대 저성장, GDP의 7.4%에 달하는 재정적자 확대, 만성적 경상수지 역조란 조건 하에서 일자리 확보와 산업경쟁력 부활 및 중산층 재생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압도적 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재정제약이란 한계 속에서 점증하는 중국의 도전과 마주하고 있고 또 중동사태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이민문제 등 여러 이슈로 국민이 날카롭게 나뉘어 있고 반(反)기성질서 정서 속에서 거버넌스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대내외 상황은 1969년 리처드 닉슨의 공화당 집권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막대한 재정적자가 누적되는 동시에 일본, 독일(서독) 등에 대한 산업 경쟁력 약화로 경상수지 적자폭이 확대되고, 인플레가 5%를 상회하는 속에서 달러화 약세로 인해 금 유출이 속출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군사적으로는 초강대국 미국이 베트남과의 재래전을 신속히 종식하지 못하고 패권국으로서 전쟁포기에 따르는 위신의 실추를 감내하거나 아니면 확전(擴戰)으로 빠져 들어갈 선택의 기로에 있었고 정치권의 찬반 양론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반전(反戰)운동과 민권운동이 기승하면서 기성질서를 거부하는 반체제 운동이 캠퍼스와 거리를 뒤덮었다. 대외개입을 지양하고 국내모순을 개혁하는 데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일종의 고립주의가 고양되고 있었다.

경제, 군사, 사회 3면의 위기를 닉슨 대통령은 신외교로 헤쳐 나갔다. 1969년 이른바 닉슨 독트린은 1945년 이후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서 세계질서 유지비용을 전담해온 패권국 역할을 부분적으로 포기, 아시아에서 군비 축소(retrenchment)를 위해 미국의 동맹유지부담 경감과 동맹국의 자주국방능력 강화를 촉구하는 정책이었다. 베트남전의 베트남화(Vietnamization of Vietnam War), 주한미군 감군(減軍) 등 동맹국들에게 이른바 닉슨 쇼크를 가져다주었다.

그 대신, 닉슨과 키신저는 중소분쟁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중국과 데탕트 외교를 추진했다. 미국은 중소관계 악화에 따라 중국의 주적이 미국에서 소련으로 교체되면서 새로운 안보전략을 마련해야 했던 중국과 외교관계를 형성하여, 아시아에서 군사력의 축소에 따른 영향력 축소를 메우는 담대한 세력균형 외교를 추진한 것이다. 또한 미중 데탕트는 일본이 중국과 수교의 길을 나서게 유도함으로써 미국의 냉전구도 속에서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컨대, 닉슨은 아시아에서 군사적 비용을 대폭 축소한 대신 소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활용하고 일본의 개입을 유도하였고, 결과적으로 소련이 SALT 협상 등 자국과 데탕트의 장(場)으로 나오게 만드는 외교적 성과를 이루었던 것이다.

한편 닉슨 정부는 국제경제적으로도 질서유지를 위해 패권국으로서 지불해온 비용을 대폭 축소하였다. 전후 국제경제체제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기여해 온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한 금환본위제를 포기하고 금태환 중지선언을 함으로써 자국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고자 하였고, 10% 수입관세를 전격 적용하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농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수출촉진정책을 펼치는 등 신중상주의적 성향의 무역정책으로 서방진영에 충격을 가했다.

트럼프 쇼크?

닉슨 정부가 소련과의 냉전 경쟁에 따른 물리적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동맹국으로부터 미군철수와 비용부담 전가를 단행하는 한편 중국을 끌어들이고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여 소련을 견제하는 절묘한 세력균형외교를 펼쳤다면, 트럼프 정부 역시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따른 물리적 비용을 동맹국에 전가하고 군사적 역할 확대를 요청하는 한편, 미국경제 부활을 위해 기존 무역협정 파기, 재협상 등 여러 충격요법(shock therapy)을 거론하고 있다. 문제는 닉슨의 상대가 쇠퇴하는 소련이었던 반면 트럼프의 상대는 상승하는 중국이고, 동맹국의 쇼크를 완충하는 닉슨의 신외교 발상력이 트럼프 외교정책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새 정부의 대외정책이 한편으로 캠프(campaign team)의 공약, 다른 한편으로는 워싱턴 싱크탱크의 분위기, 그 중간에 관료의 조정이라는 새 요소로 구성되어진다면 정부 초기는 캠프의 정책이 전면에 나서기 마련이다. 특히 아웃사이더로서 중앙무대에 진입한 트럼프는 워싱턴 엘리트 혹은 기성질서(establishment)를 배격하고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입각하여 소외된 보통(ordinary) 국민들에게 안전과 번영을 복원한다는 포퓰리즘(populism)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 정부 내 우파적인 분위기를 비교적 잘 대표하는 나바로(Navarro)와 그레이(Gray)는 아태지역에서 '미국인 고용, 미국제품 구매'를 위한 경제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적 통상정책 추진을 우선시하고, 동맹국의 비용분담을 확대하는 한편 군사력 증강을 바탕으로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성취하겠다는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포퓰리즘에 기초하여 자국 우선의 경제민족주의와 고립주의적 안보정책으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미국의 안정적 번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구화(globalization)에 대한 반기가 서구 여러 곳에서 번져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개방경제체제로 작동하고 있고, 보다 많은 국가와 비국가행위자들이 협력적 거버넌스와 다자질서를 조성하며 무력 이외 다양한 권력요소가 상대적으로 중시되고 있다. 전임 오바마 정부가 동맹 및 파트너십 강화, 지역다자제도 활용, 경제적 관여 강화, 군사력 전진배치, 가치외교 등 6차원에서의 복합전략으로 아시아 재개입 혹은 재균형을 추구한 이유는 힘(무력)에 의한 강대국외교 만으로는 미국의 지구적, 지역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한국에 주는 도전

힘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프의 아태정책이 향후 한국에게 주는 과제는 미국으로부터 일방주의적 통상압력, 한미FTA 개정, 그리고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등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도전요인은 트럼프 정부의 미국우선 통상정책과 힘에 의한 평화가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는 데 있다.

트럼프는 민주당 정부의 대중 정책 실패를 강조하며 대중강경론을 주창해왔다. 중국이 미국의 시장 접근을 거부해 왔으며 따라서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 하에, 중국의 수출보조금제도와 잘못된 노동 및 환경기준에 종지부를 찍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불공정 무역관행을 뿌리 뽑아야 하며, 나아가 중국의 종합국력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국방력을 강화하여 상대적 우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동맹국에게 방위비 분담(burden sharing)과 함께 역할분담(role sharing)요구를 이어갈 것이다. 일본과 한국에게 보다 적극적인 역할분담 압력을 가하는 차원에서 한미일 삼각협력(trilateralism)을 전면에 띠우고 미사일 방어체제 등 군사이슈를 이 맥락에서 다루어 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속에서 일본의 아베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여 지난 2월 10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미일 성장‧고용 이니셔티브'를 통한 대규모 투자약속과 함께 중국 견제를 위한 안보협력에 적극적으로 화동(和同)하고 있다.

'미일 vs 중국' 구도에서 한국이 일본처럼 조공외교로 나서기는 어렵다. 일본만큼 공물을 바칠 경제적 여력도 없거니와 전략적으로 한미일 협력이 대북 억지(抑止)를 넘어서 대중 견제 기제로 작용하도록 용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국익의 괴리가 엄존한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의 국제제재 국면을 유지하면서 중국에 압력을 가해 북한에 보다 강경한 제제 조치를 요구하고 군사적 공격 옵션 가능성을 띠우면서, 북한과 협상 테이블에 앉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에 대해 무역과 군사 양면에서 압력을 가하면서 북한 압박의 도움을 요청할 때 시진핑의 중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무역과 통화 분야에서 미국이 추진하는 국경조정세 도입, 대중 보복관세 및 쿼타 부과 등에 대해 중국이 이를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미국의 보호주의적 조치에 대한 명분상 우위를 바탕으로 WTO 제소나 반덤핑 조치, 중국내 미국기업 제재 등으로 맞대응할 공산이 높다. 국내정치적으로 자신의 권력체제를 강화하려는 올 가을 제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주석이 대외 유화적 태도로 나오기는 어렵다.

이렇듯 트럼프 정부의 대중강경책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고 2년 후 중간선거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상기해 보면 양국은 향후 2년 '강(强) 대 강(强)' 충돌 이후 정치적으로 조정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차기 정부의 선택

그러나 조정 국면으로 가기까지 한국이 처한 현실은 엄중하다. 미중 간 긴장과 갈등, 부분적 충돌 속에서 한국의 입지는 대단히 협소하고 따라서 위치잡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국이 트럼프의 강공 드라이브에 흔들려 선뜻 한미일 공조에 나선다면 이는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선택이 아니며, 반대로 시진핑의 주장에 동조한다면 안보정책의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사드(THAAD) 문제의 경우, 미국의 압력에 밀려 성급하게 배치를 완료하여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국내여론의 분열을 초래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덥석 중국의 입장으로 선회하게 될 때 치를 엄청난 외교적, 안보적 대가를 초래해서도 안 된다. 탄핵이 인용되어 대선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이를 차기 정부 과제로 넘기되, 차기 정부는 사드 배치에 따르는 남북한 안보효과, 한미관계 및 한중관계에 미칠 영향, 배치지 주민문제 등 네 가지 고려사항에 대한 우선순위를 설정한 후, 이에 따라 공개적이고 본격적인 논의로 국민적 합의를 찾는 민주적 수순을 밟을 필요가 있다.

향후 4년을 내다보는 한국의 선택은 친미 혹은 친중의 이분법을 넘고, 또한 막연한 친미-친중 균형외교를 넘어서, 미국이 퇴각, 조정에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서서 기회를 노리는 제3의 전략이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현재의 정책(경제민족주의와 힘에 의존한 양자주의)으로 가는 한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축소될 것이고, 그런 만큼 역내 국가 간 대화와 협력의 기대와 기회는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첫째, 차기정부 외교는 한미동맹 관리를 기본으로 하되 역내 국가들과의 양자협력과 다자협력을 중시하는 아시아 외교의 비중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여기서 아시아 외교의 핵심 국가인 중국, 일본, 호주와의 긴밀한 협력은 필수적이며 따라서 한일관계의 회복이 대단히 중요하다. 정서적으로 양국 간 역사문제 합의는 당분간 불가능함을 인정하되 이익의 측면에서 양국이 협력하는 투-트랙외교를 실질적으로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국제관계가 트럼프가 강조하는 힘에 기초한 거래가 아닌 공통의 가치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제규범의 수호, 확산을 위한 다자주의 외교 강화와 네트워크 외교 노력이 중시되어야 한다. 중국과 사드 배치에 따른 경제보복 문제를 국제 규범과 가치의 차원에서 풀어가고 양자 관계의 협력면을 넓혀가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요컨대,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한국의 차기 정부에 외교적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마련하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동맹은 영원하지 않고 동맹 유지의 조건이 크게 변화할 것임을 전제하면서 아시아외교와 다자주의 외교, 규범외교 등 외교저변 확대에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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