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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프레시안 books]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완전판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 <스페이스 오디세이>(김승욱·이지연·송경아 옮김, 황금가지 펴냄)가 전 4권의 완전판으로 출간됐다.

그간 국내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출간되었으나, 시리즈의 완결작인 <3001 최후의 오디세이>는 출간되지 않았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흔히 ‘3대 SF 작가’로 손꼽히는 아서 C. 클라크의 대표작이자, 모든 SF 문학을 통틀어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인류 진화에 관한 믿음과 우주를 향한 상상력, 인공지능에 관한 예견을 담은 이 작품은 그간 다른 형태의 문화 매체로 숱하게 변주되었다.

대표적 사례가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 대우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일 것이다. 이 작품의 영향력은 단순히 문화적 상상력에 그치지 않았다. 탁월한 미래학자이기도 했던 아서 C. 클라크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 정거장, 통신 위성, 인터넷, 핵발전 우주선, 인공지능 등의 개념을 선보였다. 이들 개념은 실제 현실화했거나, 앞으로 개발되리라 여겨진다. 특히 ‘섭동 기동’ 개념은 이 책이 나온 10여년 후 보이저 1호가 동일한 조건에서 실행해 과학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레시안>은 <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 출간을 기념해 저자의 허락을 얻어 이 책의 세트 구매자에 한해 배포되는 특별 책자 <우주의 먼 별에서 –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완간을 기념하며>에 실린 헌정문 중 SF 칼럼니스트 심완선의 글을 싣는다. 이 책자는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기념하는 12명 저자의 글을 담았다.

심완선 SF 칼럼니스트는 웹진 <판타스틱>, 환상문학웹진 <거울>, SF무크지 <미래경> 등에 글을 썼다.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주로 책 이야기와 책 쓰는 사람 이야기를 기획·진행했다. 책에 대한 책을 모은 책장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는 인공지능, 우주 비행, 그리고 인류의 진화에 관해 확고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애플 기기에 추가된 인공지능인 시리에게 HAL 9000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그/그녀는 '누구나 그에게 일어난 일을 안다'는 답을 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에서는 빨간색 모노렌즈와 억양 없는 목소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HAL은 작중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의 제반사항을 통제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이다.

MIT출판부는 HAL의 소설판 생일인 1997년을 기념하며, 2001년의 인공지능이 어떠할지를 다루는 <HAL의 유산(HAL's Legacy)>을 출간했다. 마찬가지로 기념비적인 2001년에는 같은 주제를 다룬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BBC에서 제작되었다. 픽션 속 우주여행이 실제로 가능할지, 그리고 어떻게 가능해졌는지 점검하는 다큐멘터리들이 심심찮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이름을 빌렸으며, 전설적인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를 리부트한 2014년 판의 정확한 제목은 <코스모스: 우주 오디세이(Cosmos: A Spacetime Odyssey)>다. 이외에도 원숭이 우두머리가 집어던진 뼈다귀가 허공에서 최첨단 우주선으로 변모하는 장면이라든가, 달의 뒷면에 우뚝 선 '모노리스'의 모습을 차용한다면 아무런 설명이 없더라도 그것은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오마주하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라는 측면에서도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언제든 다음 단계를 찾는 인간상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는 여러모로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흡사한데, 특히 영화의 캐치프레이즈 "우리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는 바로 소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반복되는 주제다.

어떤 사람들에게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직도 현실로 체현되는 과정에 있는 이야기이며, 따라서 이 4부작 소설을 지금 다시 읽는 것이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시리즈로서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거의 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이야기다. 1964년 아서 C. 클라크와 스탠리 큐브릭은 각각 소설과 영화를 맡아 4년 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출간 및 제작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시는 인류가 우주를 향해 전례 없는 열광과 예산을 쏟아붓던 시기였다. 미국의 우주 개발 예산은 1966년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스에서는 자부심과 낙관주의의 세례가 쏟아졌을 것이다. 우주 탐사를 손에 잡힐 듯 그려 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시기상 그런 열망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1968년 최초로 달의 뒷면을 목격한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은 모두 이 작품을 본 상태였고, 달에 커다란 검은 모노리스가 있다고 보고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영화 <아폴로 13>으로도 만들어진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은 텔레비전 보도용 영상을 송출하기 위해 배경음악으로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상징이 되어버린 웅장한 오프닝 곡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골랐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우연찮게도 소설과 똑같이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가속도를 얻는 섭동 기동을 실현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출판사는 클라크에게 후속작 원고료로 800만 달러(약 70억 원)를 제시했다고 한다.

클라크는 목성에 간 보이저 호와 파이어니어 호가 수집한 최신 정보를 반영해 1982년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발표했다. 이처럼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는 인류의 우주 진출 역사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확장된 이야기이고, SF소설의 그랜드마스터 아서 C. 클라크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작가로서 아서 C. 클라크는 SF 소설이 자아내는 경이감을 느리게, 그리고 강렬하게 선사하는 단편을 다수 남겼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에서는 비록 3부작을 넘기는 과욕을 부리고 말았지만, 그가 독자들을 매혹하고 우주를 갈망하도록 만드는 솜씨는 변함없이 탁월하다.

단편에서든 장편에서든 그 매혹의 성공 비결은 바로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그는 뱃사람들이 상상한 깊은 바다 괴물처럼 압도적인 이야기를 마치 하드보일드 탐정의 관찰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우주선 후미로 수많은 냉각관이 섬세하게 얽혀 지느러미 혹은 잠자리 날개처럼 연결된 모습, 극단적인 온도 때문에 지옥같이 끓어오르는 이오의 풍경과 더없이 장엄한 질량을 뽐내는 목성, 갖가지 색깔이 미세하게 변화하며 장대하게 움직이는 토성의 고리가 글자로 그려진다. 총천연색 우주 사진이 야기하는 종류의 엄청나게 거대하고 믿을 수 없게 낯선 이미지를 찬찬히 소설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학적 엄밀성과 사실적인 서술 때문에 작품 전반에 진하게 깔린 신비주의적 요소가 사풋 설득력을 갖는다. 클라크는 토성의 환경을 성실하게 서술하던 태도 그대로 외계의 정신체를 묘사하며 과학과 신비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작중 '스타차일드'가 나타나는 순간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적이다. 여기에는 우주 어딘가 인간을 한없이 뛰어넘은 지성체가 존재하리라는 믿음, 그리고 인간이 언젠가 그런 영역에 도달하리라는 믿음이 보인다. 인간원숭이가 인류로 진화하는 도입부부터 등장하는 인류 운명에 대한 암시는 너무 노골적이라 이들 앞에 나타나는 모노리스를 십계의 석판으로 비유해도 좋을 정도다.

사실 "'신'일 수밖에 없"을 만큼 인류보다 훌쩍 앞선 모노리스의 제작자들은 강력하고 불가해하다는 점에서 H. P.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코스믹 호러의 신들, 그레이트 올드 원과도 닮았다. 그러나 클라크가 그리는 '신'은 인류에 깊은 관심을 표하며, 지금은 불가해하지만 언젠가는 인간에게 해석되리라고 기대를 주는 존재다. 결국 어떤 초월자든 인류에서 한없이 아득하게 이어지는 연장선인 것이다. 이는 클라크의 다른 대표작인 장편 <유년기의 끝>(정영목 옮김, 시공사 펴냄)이나 단편 <별>에서도 되풀이되는 주제로, 결국 인류와 초월자는 아득하게 떨어져 있으면서도 확실하게 연결된다. 과연 철저한 이신론자로 유명했던 사람다운 신앙 고백이다. 이성을 초월한 영역을 인정하되, 어떤 초월자라도 언젠가는 모두 이성의 영역으로 포섭되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이런 미래가 너무 공상적이라는 비판을 미리 차단하며 닐스 보어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 이론은 터무니없지만, 진실이 될 만큼 터무니없지는 않다." 소설은 터무니없지만, 터무니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과학이란 지식일 뿐만 아니라 태도이기도 하다. SF 소설의 장기는 현재의 과학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SF 소설이 터무니없으면서도 과학적인 이유는, 아직 모르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언젠가 이해하게 되리라는 믿음, 아직 넘어 본 적 없는 장벽 너머로 도전하는 정신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는 이야기 내내 열린 결말로 끝을 맺으며 독자에게 항상 다음 단계를 열어 놓는다. 그리고 괴물을 물리치고 보화와 미녀를 얻는다는 식의 모험담과는 다른 범주의 두근거림을 선사한다. 새로운 세계를 알고 싶다는 설렘, 상상으로나마 그곳에 도달한다는 짜릿함이다.

큐브릭은 이런 면에서 일찍이 클라크와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찬사를 바친 바 있다. "요람 같은 지구에서 우주 속의 미래를 향해 손을 뻗은 인류의 모습"을 그만큼 잘 다룬 사람이 없다고. 지금 책을 읽는 독자라면 처음 이 시리즈가 출간됐을 때와는 다르게 이미 2001년과 2010년을 잘 알고 있다. 21세기 사람들은 태블릿 PC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종이 신문을 그리워하지 않으며, 목성과 토성을 넘어 명왕성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달 개척도시는 없고, HAL처럼 두루 뛰어난 강인공지능은 개발되지 않았고, 우주는 여전히 세상의 끝이며 뛰어난 소수만이 개척하는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우주에 우리 말고 다른 문명이 기다리는지 아닌지 모르기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다음 단계는 언제나 열려 있고, 이것이 우주 시대를 열광시켰던 동력이자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가 아직 현재진행형인 이유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도 인간은 언제나 그랬듯이 다음 방법을 찾아낼 것이며, 그렇게 누구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곳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갈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여는 독자든 다시 방문하는 독자든, 부디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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