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럼! 추워도 나와야지. 나라가 종북 세력에 넘어가게 생겼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말이야, 결혼도 안 했고, 아니 아니 이 대한민국하고 결혼한 여자란 말이지. 박 대통령 앞에서 딸랑딸랑 거리다가 배신 때린 그 골빈 금수저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평생을 애국한 사람이다.
어휴. 보수가 그동안 너무 점잖았던 게야…. 우리도 투쟁심을 길러서 싸워야지. 전부 바로 잡아야지! 배신자들과 빨갱이 놈들한테 이 나라를 갖다 바칠 수 없지!"
서울 중랑구에서 몇 주째 매주 태극기 집회에 참여 중이라는 이 모 씨는 11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한 손으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매주 늘어가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와 조원진·윤상현 등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참석에 한껏 고무된 듯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65일째가 되는 이날, 서울 시청 광장 일대는 태극기와 성조기로 채워졌다. 덕수궁 앞 무대 주변을 제외하면 집회 참여자 간 거리가 듬성듬성 비어있긴 했지만, 한 눈으로 보기에도 처음 태극기 집회가 열렸을 때에서 몇 배 그 몸집이 불어나 있었다.
참석자들은 태극기 집회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태극기, 성조기, 선글라스, 박근혜 대통령 사진, 새마을 운동기, 군복 등으로 몸을 감싸고 "탄핵 무효"를 부르짖었다. 군데군데 젊은 참여자들이 눈에 띄긴 했으나, 여전히 주요 연령대는 60대 이상 장년·노년 층이었다.
행진에 앞서 진행된 1부 행사에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대변인인 정광용 박사모 회장, 새누리당 조원진·윤상현 의원, 육·해·공군 사관학교 출신 예비5역 대령들 등이 연단에 올라 발언을 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나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김진태 의원, 서석구 박근혜 대통령 측 변호사 등도 집회에 참석했다.
정 대변인은 "대한민국이 생기고 최초로 가장 많은 인구가 하나의 집회에 모였다"며 "승리가 눈앞에 있다"고 말했다. 태극기 지회 주최 측은 이날 집회 참여자가 210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210만 명이라는 숫자는 국회에서의 탄핵안 가결을 앞두고 있었던 지난해 12월 3일 촛불집회 주최 측이 '전국'에서 타올랐다고 밝힌 숫자다. 당시 170만 명가량이 모여들었다는 서울 도심은 법원의 허가로 청와대 주변까지 도보 통행이 가능했음에도 촛불이 곳곳을 수놓아 장관을 이루었었다.
정 대변인은 그런 촛불 집회를 "정치 집회고 민주당 당원 집회"라며 "우리가 국민이다. 우리는 당이 안 나오고 고작 의원 몇 명이 나왔다. 우리가 민심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호스트바 남창 고영태가 저지른 사기 사건이다"라며 이번 사건을 '남창 게이트'라고 불러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최순실 씨 소유로 알려진 태블릿 컴퓨터를 최초 보도한 종합편성채널 JTBC 사장 "손석희 배후는 중앙일보 홍석현"이라며 홍 회장의 "대가리를 칩시다. 그놈 집 앞에 집회 신고도 마쳤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탄기국은 다음 주 손 사장과 홍 회장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번 태극기 집회에 주목도를 높인 주인공 새누리당 현직 의원들도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총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을 '존영'이라고 불러 논란을 산 조원진 의원은 이날 "태극기의 함성이 거짓을 물리치고 진실의 문을 열었다"면서 "존경하는 애국 시민 여러분. 탄핵 무효를 무서워하는 야당의 문재인과 추미애는 촛불 동원령을 내렸다. 우리는 애국 국민 총동원력을 내려야 한다"고 외쳤다.
이어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 사심이 없고 부정부패하지 않았고 오로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하여 일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안보가 무너지고 노동 현장은 민(주)노총이 장악하고 교육 현장은 전교조가 장악할 것이다. 여러분 아들 딸과 손자 손녀가 이런 대한민국에서 살아서 되겠나"라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당시 대표를 상대로 '죽여버린다'는 막말을 한 전화 통화 내용이 유출됐던 윤상현 의원도 무대에 섰다.
그는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안을 졸속 의결하고 적법한 절차 또한 거치지 않아 탄핵 심판은 애초부터 원천 무효"라는 주장을 하며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이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범죄로 단죄할 수 없다. 이게 양심 있는 법조인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또 "여러분들의 자랑스러운 태극기 물결을 보면 너무나도 감개무량하다"며 "태극기 아래 똘똘 뭉쳐 탄핵 기각과 대한민국의 역사 지키기에 끝까지 함께 하자"고 외쳤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자로 나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죄 없는 사람을 탄핵한 국회를 탄핵하고 철거해야 한다"는 놀라운 주장을 꺼내놨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며 "야당 후보도, 안희정도 노무현 대통령 정치자금 때문에 감옥에 갔다. 박지원도 돈을 얼마나 받아먹고 북한에 돈을 얼마나 갖다 줬나.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하고, 도지사하고, 대통령 후보 한다는데 돈 한 푼도 안 받은 대통령은 탄핵해서야 되겠나"라고도 했다.
태극기 집회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군 간부 출신들도 릴레이 발언을 이어갔다.
해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대령이라는 참가자는 "충무공의 후손인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국가를 위한 참 전사라는 것을 알린다. 싸워서 이기는 훈련만 한 프로들이다"라며 현재의 상황을 '전시'에 빗댔다.
이런 발언자들을 향해 박수를 치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시에 흔드는 참석자들 일부는 목에 '계엄령만이 답' '떡검을 탄핵하라'와 같은 피켓을 들고 있기도 했다.
발언 중간중간에는 '최후의 5분' '전선을 간다'와 같은 군가도 울려 퍼졌다. 한 남성 참석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들고 서 있었다.
청계 광장에 '블랙리스트' 피해자이기도 한 문화·예술인들이 차린 텐트촌에 맞서 조성된 '태극기 텐트촌'은 이날에도 시청 광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태극기 집회 측 참여자들은 이 텐트들을 '애국 텐트'라고 부른다.
텐트마다 '주인'을 바깥에 피켓이나 매직으로 쓴 글자 등으로 표시해 놓았는데, 그중에는 '서북 청년단'도 있었다. 서북청년단은 1948년 제주 4.3 당시 제주도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백색 테러'를 자행한 극우 단체다.
해방 직후 월남한 우익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미 군정 당시 조직되었으며, 지난 2014년 일부 보수 진영 인사들이 재건 소식을 알려 논란이 됐다.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은 서울 도심 행진을 진행한 후 이날 오후 5시부터 2부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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