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사회에서 정치 과정을 통해 다원적 가치와 이익이 조정되고 있음을 이해하고,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정치 주체의 역할을 파악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의미를 이해하고, 선거의 기본 원칙과 공정한 선거를 위한 제도 및 기관을 탐색하며, 지방자치 제도를 이해하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수행하는 정치 활동을 파악한다."
교육부가 고시한 고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에 나오는 교육과제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때 이미 정치와 선거,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청소년들에게 직접 선거권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해볼 때가 되었다.
머나먼 18세 참정권 보장의 길
지난 1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일부 정당의 반대로 '만 18세 선거권 부여 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무산되었고, 18세 선거권 문제가 현재 실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다행히 최근 바른정당에서 18세 선거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선거권 제한 연령의 인하가 성사될 가능성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만 18세 선거권 부여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반적 추세이고, 가까운 일본도 만 18세부터 선거권이 주어지고 있으며, OECD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 모두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이 18세를 기준으로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은 '유엔 아동 헌장'이 아동을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세부터는 아동이 아니라 성인이므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교육과 삶의 통합
나는 18세 선거권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교육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행 교육부 고시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할 때, 만 18세 선거권 부여는 교육과 삶을 통합하는 교육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 교육부에서 고시한 고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에도 '정치 과정과 시민 참여'를 주요한 교육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 교육과정에서 고시한 내용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만 18세 선거권 부여는 교육적으로도 정당하며 학교 교육 과정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18세 선거권 부여에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을 책에서만 배우고 실제는 대학에 가서 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대 교육의 전반적인 흐름은 현장성 강화다. 고3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참여를 통해 삶과 지식을 일체화시키는 것은 권장해야 할 일이지 우려해야 할 일이 아니다.
'2016세대'의 높은 정치 의식
다음으로 반대론자들은 18세 고3 학생들을 피교육자이기 때문에, 선거권을 부여받기에는 너무 어리므로, 선거권 부여에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광화문 촛불 집회와 탄핵 과정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보여준 높은 민주 시민 의식과 올바른 정치적 판단력, 성숙한 질서 의식은 이미 시민의 자격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 청소년들의 민주 시민 의식과 높아진 정치적 판단력으로 볼 때, 청소년들에게 충분히 선거권을 부여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동안 학생들이 자기결정력과 책임 의식을 지닌 시민으로서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교복 입은 시민' 정책을 통해 서울 학생의 시민 의식 고양에 노력해 왔다. '교복 입은 시민'은 학생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며, 나아가 시민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지니고 '실천하는 주체'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참여하고 주체로서 판단할 때에라야 진정한 교육이 성립하다. 초중등 교육에서 요즘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자기주도적인 학습'이다. 기존에는 학생을 많은 지식을 가진 교사가 지식을 전수하고 가능한 많은 지식을 머리에 넣어주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상정하고 접근해왔다. 그러나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것은 학생 스스로를 배움의 주체로 상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움, 학습, 교육의 과정이 학생 스스로가 앎을 주도적으로 추구할 때에라야 학습 효과가 가장 크다는 것은 교육학의 상식이다.
이런 점에서도 학생을 '교복 입은 시민'(교복을 입었지만 일반인과 동일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나아가 '교복 입은 유권자'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은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주역
더 나아가 우리 역사는 이미 학생들이 단순히 기성세대의 피교육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학생들, 특히 고교생들은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 과정과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등의 정치적 격변기에 당당한 역사적 주체로서 참여하여 왔다. 또한, 2016년 11월 이후 민주주의 광장의 일원으로도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은 이미 만 18세 선거권이 가능한 방향으로 우리 사회의 수준이 향상되었으며, 우리 고교생이 민주시민으로서 충분하게 성숙하였음을 증명한다.
사실 이번 촛불 시민 혁명의 과정에서 이들은 주체로서 참여하였다. 많은 중고생들이 주체로서 이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이미 '촛불 시민 혁명 세대' 혹은 '2016년 세대'로 살아갈 것이다. 4.19세대가 평생 4.19세대의 자부심을 갖고 살고, 87년 세대가 평생 87세대로서의 역사를 만든 자부심으로 살아가듯이, 이들도 평생 2016년 새로운 역사를 만든 '2016년 세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이들은 이미 선거권이 아니라 더 큰 시민권을 부여받아야 할 존재로 성장해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교 사회교육의 현장화 촉진 계기
마지막으로, 일각에서는 만 18세 선거권 부여가 고등학교 학생을 '정치화'시킨다고 하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하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고등학생 수준에서 투표권이 부여되더라도 그것을 계기로 학생들의 주체적인 사회 참여에 대한 교육 기회를 삼아야 하는 것이지, 투표 연령 인하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편향을 발생시킨다고 섣불리 판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교과서에서 배우는 선거, 민주주의, 정치, 정치 교육, 민주 시민 교육 등을 편향되지 않고 현장성 있게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부 반대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등학교에 정치적 바람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고교 민주주의 교육, 사회 교육의 현장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정치권은 18세 선거권 부여의 정치적 유․불리를 생각해서 이를 반대하기도 한다. 물론 정치적 제도 개혁에서, 결과적으로 일방적으로 하나의 집단에 유리하면 반대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 대선에서 유, 불리가 명확치 않다면, 다음 지자체 선거나 총선에서부터 도입하는 것을 합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국민적 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정치권이 이에 대해 부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모든 정당은 정치적 유, 불리에 대한 눈앞의 계산을 떠나 세계적인 흐름에서 이미 거부할 수 없게 된 만 18세 투표권 부여에 대해서 전향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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