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바꿀 수 있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이같은 질문을 던진 박승옥 기적의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주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첫 걸음이라고 답한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대한 세뇌와 여론 조작의 늪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촛불 혁명을 통해 주권자 연대와 연합의 힘을 자각한 국민이 직접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민주주의야말로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주인을 누구로 정할 것인지에 앞서서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만민공동회, 3.1운동, 4.19 혁명, 6.10항쟁 등에 이어 주권자가 국가 권력을 한 발 뒤로 물러나게 한 다섯 번째의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정치의 근본을 고민하는 박승옥 상임이사의 글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리스어 인민(demos)의 통치(kratia에서 유래한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번역한 말이다. 도시국가 데모크라시를 최초로 선보였던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아테나이 시민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제를 자랑스럽게 인민의 통치 체제라고 이름지었다. 여기서 금방 드러나듯 사실 민주주의란 번역어는 데모크라시를 제대로 옮긴 말이 아니다. 데모크라시는 직역하면 인민정(人民政), 민주정이다. 소수의 귀족이나 엘리트가 국가를 통치하는 귀족정(aristocracy), 과두정(oligarchy), 1인의 군주나 독재자, 참주가 국가를 통치하는 왕정(monarchy), 독재정(autocracy), 참주정(tyranocracy)과 구분되는 국가의 정치 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데모크라시는 서구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같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서구와 달리 한국, 북한,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5개국은 19세기 말부터 데모크라시를 굳이 민주주의로 번역해서, 인민의 일상 생활과 사회 생활, 국가와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핵심 이데올로기 또는 사상으로 격상시켜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1인의 독재건 소수의 독재건 그 본질은 독재다. 민주주의는 이와는 백팔십도 다르다. 한 사람의 권력자와 정치가, 소수의 권력자와 정치가가 아니라, 인민 모두가 스스로 정치가가 되어 국가를 통치하는 인민 자치 국가,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다. 인민이 10만 명이면 10만 명, 5천만 명이면 5천만 명이 모두 똑같이 1/n의 권력자이자 정치가로서 나라와 공동체를 책임지는 정치, 인민이 통치자인 동시에 피통치자가 되는 체제, 그것이 민주주의다. 한 사람이건 소수건 권력자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아예 없애버린 정치 체제, 그게 민주주의다.
민주정과 대의정, 공화정은 명백히 서로 다른 정치 체제 개념이다. 거칠게 말해 민주정은 '모든 인민'이 주권자가 되어 국가를 통치하는 체제인 반면, 대의정은 주권을 위임받은 소수의 대표가 국가를 통치하는 체제다. 공화정은 1인 군주나 독재자의 '뜻'에 따라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선(res publica)을 목적으로 '법'에 따라 복수의 인민이 통치하는 체제로서, 왕정, 군주정이 아닌 귀족정, 대의정, 민주정 등이 모두 공화정이다.
다양한 계급 계층으로 나뉘어 있는 국가에서 계급 평등을 추구하고, 개인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실천하고자 하는 조화의 정치 체제가 공화정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조항은 대한민국은 왕정, 참주정, 독재정, 과두정이 아닐 뿐만 아니라 동시에 대의정도 아니라는 명료한 선언이자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다.
간접 민주주의란 없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 앞에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인 ‘형용사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간접 민주주의, 위임 민주주의, 대의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심의 민주주의, 인민 민주주의, 자유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 등등 형용사 민주주의는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 모든 형용사 민주주의는 엄밀하게 말하면 가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엘리트 지배층들의 인민 세뇌와 여론조작 조어들이다.
그러나 이는 잘나고 똑똑한 엘리트 기득권자들의 교묘한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기득권자들의 하수인으로 민주주의의 실현을 지체시키는 고등 사기꾼들인 이른바 대학교수, 정치학자들이 벌이는 교언영색, 성형술 언어일 뿐이다.
선거 민주주의, 위임 민주주의는 사실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의정은 오히려 민주정과 선명히 대비되는 엘리트 통치 체제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스위스와 간접 민주주의로 잘 포장된 대의정 체제의 미국, 영국 정치 현실을 주권자의 관점에서 조금만 비교해 보아도 이는 금방 드러난다.
간접 민주주의란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가짜 개념어다. 위임하는 민주주의, 대의되는 민주주의, 대표자 민주주의란 없다. 그 실체는 위임 독재, 대의 독재, 대표자 독재다. 독재를 거꾸로 민주주의로 포장한 것과 같다. 간접 민주주의란 구소련과 북한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민주집중제와 똑같이 엘리트 관료 독재 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교활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형용 모순 용어이다. 인민으로 하여금 엘리트 소수 독재 정치를 민주주의 체제로 믿게 만드는 체제 홍보 용어이다.
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 하나만 존재한다. 물론 민주주의의 각종 실질 제도와 그 실행 방식은 각 나라의 전통과 문화, 정치 현실에 따라 다양하고도 수많은 변형과 변종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몇 가지 뚜렷한 원칙과 지표를 기준으로 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일 뿐이다.
주권은 인권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위임이 불가능한 성질의 권력이다. 인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한다면 그 개인은 즉시 자유로운 인간에서 노예로 추락한다. 주권 또한 인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면 그 즉시 그는 노예 신세로 전락한다.
주권은 행사하는 것이다. 결코 수집하거나 집적하거나 분산시키는 힘이 아니다. 주권이란 인민이 국가의 주요 정책과 제도, 국가의 방향에 대해 심의하고 토론하고 의결하는 통치자로서의 권리이지 결코 권력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주권을 찬탈해 가 수집하고 집적하고 집중시켜 권력자를 만들어 내는 게 독재와 대의제 정치다.
민주주의에는 권력자가 필요없다. 권력자가 생겨날 수 있는 소지를 아예 원천 봉쇄해 놓는 것이 민주주의의 제도화이다. 인민이 국가를 직접 통치하고 운영한다는 말은 인민이 국가를 운영하는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다는 말이 아니라, 인민이 스스로 국가의 주요 정책과 제도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고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결정하는 선거와 주민소환 제도는 민주주의의 지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지표는 명백히 국민(주민) 발의, 국민(주민) 투표, 국민(주민) 소환, 국민(주민) 재판 등이다.
청와대가 필요 없는 정치, 박근혜같은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이 아예 나올 수 없는 정치, 대통령이건 수상이건 그 이름이 뭐든 상관없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란 권력자가 아니라 그냥 인민의 머슴에 지나지 않는 정치, 그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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