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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줌마', 딸 세대를 위해 '평등'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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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줌마', 딸 세대를 위해 '평등'을 외치다

[민미연 포럼] 요즘 여자들, 왜 그렇게 불만이냐고?

"엄마도 닭 다리가 먹고 싶었어."

백숙을 먹고 있던 어느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엄마는 보란 듯이 닭다리 하나를 가져가시며, 지난 스무 해 동안 시부모를 모시며 닭다리 한쪽 마음껏 먹지 못한 회한을 풀어 놓으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자식과 남편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남은 껍질이나 찌꺼기를 드셨다는 외할머니의 일화를 들을 때는 워낙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외할머니의 식량부족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닭고기를 충분히 사먹고도 남을 형편인데도 20년간 닭다리 한 번을 드시지 못했다는 엄마의 식량 부족은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엄마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닭다리에 손을 뻗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내 무감각에 더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 사회에서 엄마들의 삶은 이처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잊힌 욕구와 제 몫으로 돌아가지 못한 많은 것의 목록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목록은 각종 사회적 관계 및 관습과 제약 때문에 상실된 한 인간의 자유의 정도와 폭을 보여준다. 필자의 외할머니로부터 지금은 60세가 되어 가는 엄마 세대, 그리고 워킹맘이니 전업맘이니 구분을 강요당하며 어쨌든 '맘(mom)'이라는 칭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필자와 같은 2030세대의 '젊줌마(젊은 아줌마)'들까지. 삼대에 걸친 '엄마'들의 삶을 지나오면서 여성의 삶은 얼마나 더 희생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을까?

▲ 드라마 <미생> 속 워킹맘. 화면 갈무리.

아직 엄마가 손대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

필자의 엄마 세대에 대한민국의 중산층 가정에서는 이미 닭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을 수 있을 정도의 생활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엄마는 왜 닭 다리를 마음껏 드시지 못한 것일까? 이는 가정 내 자원분배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다른 이유는 없다. 엄마는 단지 '엄마이기 때문에' 혹은 '며느리이기 때문에' 닭다리를 집어 들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가정 내 자원분배는 개인의 능력이나 의사와는 무관하게 관습적 역할과 민감한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다.

요즘 먹을거리가 이런 방식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가정은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가 손대지 못한 그 주요 자원은 쉽게 개선할 수 없는 가정 내 불평등 구조를 따라 비슷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도 인간의 기본 여건을 이루는 주요한 자원이라고 볼 때,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 내 시간 분배는 특히 여성에게 불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일자리와 생애사 실태조사'(2014년)에 따르면, 10세 미만의 자녀를 둔 정규직 여성의 경우 주당 근로 38.8시간, 가사 및 육아 38.3시간을 합해 주당 약 77.1시간, 그 배우자는 근로 46.6시간과 가사 및 육아 17.2시간을 합하여 주당 총 63.8시간 동안 일하는 것으로 드러나 워킹맘의 노동 시간이 그 배우자에 비해 주당 약 13시간 정도 긴 것으로 밝혀졌다. 가사노동 시간을 비교해보면, 10세 미만의 자녀를 둔 워킹맘의 평균 가사 및 육아 시간은 주당 43.1시간, 배우자의 경우 18.5시간으로 가정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같은 자료에 따르면 워킹맘뿐만 아니라 '전업맘' 역시 상대적으로 남성배우자보다 더 장시간 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워킹맘과 전업맘으로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 그 사이의 다양한 형태의 '맘'들 모두 근로 시간에 가사와 돌봄노동 시간을 더하면 배우자보다 노동 시간이 길다.

개인 돌봄 시간(수면, 식사, 세면, 휴식)이 주당 97시간 미만일 경우 '시간 빈곤자'로 분류되는데, 한국 워킹맘 대부분은 극심한 시간 빈곤자다. 육아정책연구소의 2015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워킹맘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은 9.4시간이며, 통계청 '일·가정 양립지표'(2014)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3.2시간(남성의 경우 0.6시간)이다.

이를 볼 때 워킹맘은 대체적으로 하루 평균 근로시간(9.4시간), 가사 및 육아시간(3.2시간), 출퇴근시간(2시간)을 뺀 9.4시간의 개인 돌봄 시간을 확보하게 되는데 주말에는 근로시간을 거의 보육에 할애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워킹맘의 주당 개인 돌봄 시간은 66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시간 빈곤층 구분 선인 97시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하루 평균 9.4시간의 개인 돌봄 시간도 수면과 식사 등으로 쓰고 나면 휴식 시간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현재 우리나라의 워킹맘들은 휴식시간 자체를 쓸 수 없는 '24시간 풀타임 근로자'다. 얼마 전 과로사로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한 워킹맘 공무원은 이와 같이 극도로 열악한 여성 근로실태의 희생양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자격이 있다는 헌법상 기본권 중 상당수는 여성들의 실생활과는 무관하다. 여성들은 이제 식량 빈곤에서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인간다운 생활 유지의 기본 여건인 시간 자원분배에 있어서 관습적 불평등으로 인해 극심한 자유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영아를 돌볼 경우 마음 놓고 배변을 하거나 충분히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일차적 신체의 자유뿐만 아니라 이동의 자유, 적절한 휴식을 취할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을 누릴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집어 들지 못하는 닭 다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 '요즘 엄마'는 힘든가?

여성들의 근로 실태는 이처럼 열악한데도 소위 '젊줌마'로 불리는 2030세대의 엄마들은 흔히 그 전 세대의 엄마들과 자주 비교된다. 필자도 '요즘에는 애를 그렇게 많이 낳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뭐가 힘들다고 불만이냐?'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확실히 요즘 엄마들은 전 시대에 비해 가사노동의 전문성과 강도의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또한 육아를 돕는 각종 장비나 사회적 시스템도 전 시대보다는 발달해 마치 전보다는 '쉽게' 아이를 기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왜 '요즘 엄마'들은 산후 우울증도 더 많이 걸리는 듯하고 아이도 더 힘들게 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사람은 인식과 현실의 괴리가 클 때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오늘날 여성들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고 있다. 첫째, 오늘날 젊은 엄마들은 전 시대에 비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동시에 '평등'과 관련한 더 높은 권리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런 의식과는 무관하게 결혼 및 출산·육아를 동시에 납득할 수 없는 불평등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

송(宋)의 유학자 육상산은 "백성은 배고픔보다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不患貧 患不均)"고 했다. 할머니, 엄마 세대에도 고통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적으로 덜 표면화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와 '불평등'의 정도에 더욱 민감해졌고, 이전 시대에 비해서는 이를 표출할 통로도 늘었다. 따라서 '요즘 여자들'이 특히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공정함에 대한 불만은 사실 불만이 아닌 당연한 '권리'에 관한 것이다. 불만과 권리의 경계는 불만을 내는 목소리의 정도에 따라 진화한다.

또 한 가지 괴리감은 경제적 생활 수준에 대한 기대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의 청년 부부 대부분은 주거환경이나 자녀교육의 기준을 경제 호황기의 중산층 수준에 맞춰 기대하는데, 일자리 현실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기대 수준은 전문직,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 교사 등 특정 계층에게만 현실적이다.

2016년 1분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39세 이하 가구주 또는 2인 이상 가구의 월 가계 지출 평균은 약 340만 원 정도다. 이중 주거대출비용, 자녀교육비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그런데 서울연구원이 2014년 고용노동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서울 청년 취업자 중 남성의 월 평균 임금은 261만 원으로 집계됐다. 결국 '어느 정도의' 기대 수준에 맞는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 활동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경제 현황 및 생활 여건에 대한 기대수준을 조정할 수 없다면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도 여성의 필수적 경제활동을 전제로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는데, 가사와 육아, 가족관계 노동의 주(主) 책임자를 여성에 한정하는 뿌리 깊은 정서와 관행은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 청년 취업 및 일자리의 열악한 현실과 현재 청년층의 물질적 생활여건에 대한 기대의 괴리를 워킹맘의 살인적인 노동과 조부모의 헌신으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저출산 위기는 이처럼 왜곡된 경제 구조, 경제 수준에 대한 기대와 현실의 괴리감 및 가정 내 부조리한 폐습을 끌어안고 고통을 감내할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의사 표현이다. 역할에 따른 책임과 희생, 자아를 잃는 노동의 관계적 정당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늘의 청년 여성들은 과거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현재 가정 내 여성의 지위와 관련된 관습은 여전히 이러한 짐을 요구한다. 따라서 많은 여성들은 이 제도에 아예 편입되지 않거나 혹은 결혼은 하더라도 출산을 포기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말,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라며 '출산 지도'를 만들어 홍보했다. 행자부 트위터 갈무리.

오늘날의 저출산 문제는 소위 이와 같은 '가임기 여성'의 민감한 사회문화적 요구와 자아관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해결하기 힘들다. 이는 단순히 여성의 근로시간을 단축한다거나 탄력근무제를 도입하는 방식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 여전히 젊은 여성들의 실상은 잊혀있다. 얼마 전 정부에서 만든 '가임기 여성 수 분포도'는 오늘의 여성에 대한 피상적 인식을 잘 보여준다. 여성들은 "암소 통계 내냐?" "나는 국가가 소유한 자궁이 아니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여성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제약 조건은 그대로 두고 생물학적으로 임신 가능한 여성 인구의 분포도를 만드는 것을 국가적 과업으로 여긴 정부의 '무식한' 사태 파악에 대응했다.

여성문제와 관련해 수많은 사회문화적 관계 및 감정의 깊이를 모른 채 이야기하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폭압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여성 문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의무, 책임의 양상과 정도가 어떻게 정립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는 여성만이 아닌,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또한 인간과 노동에 대한 성찰과 배려가 부족했던 기존 관습과 문화에 저항하면서 서로에게 공평한 역할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더 어렵다. 그렇더라도 현실적인 각종 제도적 지원과 함께 인식 개선 노력을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여성도 잃어버린 자유의 목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출산율 및 경제활동참여인구수의 증가 등 실질적인 사회 경제적 여건 개선으로 드러날 것이다.

필자도 먼 훗날 "엄마도 좀 쉬고 싶었어"라며, 차마 손대지 못했던 '나만의 시간'을 회상하며 현재를 추억할 수 있을까? 다음 딸들의 세대에는 희생의 목록이 좀 더 줄어들 수 있도록 이처럼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우리 '젊줌마'들의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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