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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닭 초토화 두달 전, 朴 정부는 AI청정국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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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닭 초토화 두달 전, 朴 정부는 AI청정국 선언했다

[안종주의 안전 사회] 탄핵과 조류독감, 과연 '머피의 법칙'일까?

우연히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머피의 법칙'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법칙이다. 김재수 농축산식품부 장관은 장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AI(조류인플루엔자)라는 불청객에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며 '재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조류인플루엔자 재앙에 '(김)재수 (장관은) 없었다'. 물론 대통령 박근혜도 희대의 헌법 유린, 국정 농단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주연과 조연을 번갈아 연기하며 국민을 우롱하느라 바빠 AI 위기 대응 때 유체가 이탈해 존재가 없었다. 김재수 장관, 박근혜 대통령 모두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에 '머피의 법칙'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할지 모른다.

'머피의 법칙'의 머피는 미국의 항공 엔지니어인 에드워드 머피(Edward A. Murphy)에서 비롯했다. 그는 1949년 충격 완화 장치 실험이 계속 실패로 끝나자,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항상 잘못된다(Anything that can go wrong will go wrong)"는 말을 남겼다. 그 뒤부터 머피의 법칙이란 말은 좋지 않은 일들이 자꾸 반복되며 일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경우에 주로 쓴다. 정치를 오래 하는 사람,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 그리고 긴 인생살이를 하는 우리 모두 적어도 한번쯤은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는 일을 겪었을 것이다.

머피의 법칙은 한국인들에게도 오래 전부터 매우 친숙한 단어다. 21년 전인 1995년 DJ DOC가 부른 노래 '머피의 법칙'이 인기몰이를 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미팅을 갔었지/(중략)/우와 쟤만 빼고 다른 얘는 다 괜찮아/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내가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꼭 내 친구 여자 친구이거나/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나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 없는지/(중략)."

'재수 없는' 머피의 법칙이란 바이러스에 감염된 김재수 장관

머피의 법칙은 일어날 확률이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즉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나쁜 사건이 계속 벌어질 때 갖다 붙이는 말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최근 벌어지고 있는 탄핵 정국과 관련해 머피의 법칙을 떠올린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머피의 법칙이란 말을 알고 있고, 그 뜻도 알고 있을 정도의 지적 소유자일 것이란 나의 생각은 기우일 수도 있다.

탄핵은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나쁜 사건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민의 처지가 아닌 대통령 자신의 처지에서만 그러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탄핵으로 이어진 언론 보도, 최순실 측근들의 폭로, 정호성·안종범의 휴대전화 녹음, 업무일지 등이 머피의 법칙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도 머피의 법칙을 겪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 경험한 머피의 법칙은 30~40년 전에 겪었던 악몽을 되살리는 고통스런 것이었다. 국민은 박근혜·최순실과 그 부역자 일당, 그리고 친박 정치인이 생각하는 머피의 법칙과는 또 다른 머피의 법칙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 좋지 않은 일들이 자꾸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일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장을 지져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다. 가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세금과 준조세는 슬금슬금 늘어났다.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메르스, 지진 등 각종 재해와 재난으로 불안하고 목숨조차 위태로워졌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오리와 닭들의 살처분, 대학살로 이어진 조류인플루엔자 창궐이 장식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란?-살릴 수 있는 사람 죽게 만드는 정권

'머피의 법칙'이 완벽하게 작동한 박근혜 정권의 특징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식탁에 올릴 수 있는 닭과 오리를 땅 속에 파묻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독'으로 가득 찬 정신으로, 사악한 우주의 기운이 가득 찬 언어로 명령을 내리더라도 국록을 먹는 공직자들은 그것에 오염되지 않아야 하는데도 하나같이 '정신 융복합'을 거쳐 일심동체가 됐다. 총리, 비서실장, 비서관, 장관 등이 모두 '박 패밀리'가 됐다.

박근혜·최순실과 그 부역자 친박들은 탄핵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수독과이론(fruit of the poisonous tree theory)을 생각했다. 청문회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판도라 상자를 연 태블릿 피시가 제이티비시에 도둑맞은 것이란 주장을 '골박'(골수친박) 이완영 의원이 하려 했다. 도둑질은 독수이며 그 열매인 태블릿피시를 독과로 몰아가려 한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추악한 게이트의 문을 다시 닫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독수독과이론은 독이 있는 나무의 열매도 독이 있다는 뜻으로 1920년 미국의 실버톤 사건의 판결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부정한 방법, 즉 범죄로 얻은 증거물은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한 판결이다.

친박들이 재판과 관련한 독수독과이론에 관심을 쏟을 때 나는 다른 측면에서 독수독과에 꽂혔다. 박근혜 정권은 독수(毒樹)였다. 물론 국민행복, 경제민주화 등의 사탕발림으로 소중한 표에 독수(毒手)를 뻗친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거짓 잔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이들이 국민 가운데 많았다.

'독수독과'의 박근혜 정권이 낳은 인재(人災)의 연속

그 독수에는 독과(毒果)만 열렸다. 독과는 재벌만을 위한 정책, 부자를 위한 정책, 최순실 패밀리를 위한 정책으로 박근혜란 독수에 주렁주렁 달렸다. 박근혜·최순실·김기춘·우병우는 독수의 굵은 가지(요직)에 권력의 독에 취한 인사들만 매달았다.

독과 인사들이 백성의 아픈 마음을 속속들이 알 리 없다. 그동안 백성이 박근혜 정부 들어 지켜보아온 위기와 재난을 묻고 따져보면 이런 지적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될 것이다.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메르스 등 지난 대형 재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는 두고두고 계속 파헤쳐야 할 중대 사안이다. 여기서는 조류인플루엔자 재앙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자.

나는 조류인플루엔자 대응 자문위원도 아니고 농축산식품부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최근 석 달 간 농식품부가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자료를 분석해보았다. 날짜 별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겨울 철새 차단방역 철저, AI 청정국 지위 유지"(10.04) △금년 겨울, 구제역·AI 재발방지에 총력 대응(11.07) △전남 해남·충북 음성 AI 의심축, 고병원성 AI 확진(11.18) △AI 위기 '주의'에서 '경계' 단계로 격상(11.23) △김재수 장관, 현장소통 광폭 행보 두 번째 자리 마련농업인의 애로사항 등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듣고 해결방안을 찾는 '제2회 금요 농정신문고'를 운영(11.25.) △천안·음성·진천·세종 신고건 고병원성 AI 확진(11.29)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 AI 방역 점검회의 주요 내용(12.12) △가축방역심의회 개최, 위기경보 상향조정 심의, 의결(12.15)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 'AI 관계부처 차관 및 시도 부단체장 회의' 개최(12.15) △AI 총력 대응을 위한 범정부 통합 체계 강화(12.16) △농식품부, 'AI 기동방역 타격대'(가칭) 투입 등 총력전(12.20)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최초로 고병원성 AI가 확진된 뒤 한 달도 채 못돼 전국이 초토화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국이 초토화되고 나서야 총력전을 벌인다고 했다. 또 황교안 총리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닭과 오리들이 대량으로 살처분 되고 난 뒤인 12월12일에서야 점검회의를 처음 열었고, 김재수 장관도 12월15일에서야 관계부처와 시도 책임자 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은 늑장 대처의 표본으로 꼽히기에 충분하다. 엉터리 방역소독제를 사용해온 것도 그 어떤 핑계를 댈 수 없는 무능이라 할 수 있다.

닭오리들 대량 살처분 재앙 속 농식품부는 장관 자화자찬

눈여겨볼 대목은 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해 11월 23일 위기경보 단계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됐음에도 농식품부는 11월 25일 김재수 장관이 농업인의 애로사항 등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듣고 해결방안을 찾는 '제2회 금요 농정신문고' 운영 자리를 마련해 현장 소통 광폭 행보를 보였다고 보도자료까지 내어 자화자찬한 사실이다.

위기 상황인데도 김 장관은 농정신문고를 연기하거나 차관 등 다른 고위간부를 보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참석했을까? 농식품부가 "농정 신문고는 김재수 장관이 취임 시 밝힌 대로 '실행·신뢰·배려의 ABC(ActionBelieveCare) 농정'을 실천하고, '농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장관이 직접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수요자 입장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지난 11월 4일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되었다"고 밝힌 것에서 그 까닭을 엿볼 수 있다. 장관 관심 사항은 이보다는 AI이어야 했다.

AI가 대유행을 한다고 해서 모든 농축산식품 행정이 마비될 수는 없다. 장관의 행보도 다른 부문에까지 벌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AI 확산 방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점을 농축산인들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부문은 차관이나 국실장 등 담당 고위간부가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김재수 장관의 AI 대응 자세는 위기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은 아닌지.

그 대통령에, 그 총리·장관이다. 그러니 재난이나 위기가 우리 사회에서 발생했다 하면 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김 장관이 AI 창궐을 철새 탓으로 돌리며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은 재수 없는 대통령에 이어 재수 없는 장관을 만난 것이 된다. 내년에는 국민이 재수 있는 대통령을 만나 '머피의 법칙'이 아니라 그 반대인 '샐리의 법칙'이 작동하는 세상이 오기를 닭과 오리들과 함께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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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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