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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정말 박정희·박근혜를 무너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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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정말 박정희·박근혜를 무너뜨렸나?

[서리풀 논평] '시민'과 더불어, 2016년을 마무리하며

오늘 논평으로 2016년을 마무리한다. 올해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으나 이런 시간 구분은 어차피 사람이 정한 것. 다음 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전에 2016년을 정리하는 것은 그 한 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붙이는 일이다.

먼저, 어느 때보다 고단한 일상을 살아낸 우리 모두의 지난 한 해를 스스로 위로하고 축하한다. 특별하게 기꺼운 것은 어느새 '시민혁명'이라 부르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을 바로 올해 이뤄냈기 때문이다. 지금 만들어지는 역사이니 참여자와 기록자 노릇도 평범한 것은 아니다.


어찌 되더라도 2016년은 박근혜 정권이 붕괴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남았으나, 그 결과와 무관하게 박근혜 정권은 이미 무너졌고 멈추었다. 하나의 역사적 '종결'. 만에 하나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더라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2016년은 우리 모두 그 일을 해낸 해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권이 붕괴한 의미를 다시 새기는 것이 한해 마무리의 중심이다. 단지 회고가 아니라 새해를 제대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 운동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확하고 꼼꼼해야 새해가 실패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첫째, 박근혜 정권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사실. 물론, 균열을 내고 계속 압박한 '시민권력'의 힘은 절대 가볍지 않다. 결집한 시민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역량이 꾸준히 커진 덕분이라 믿는다. 스스로 자부하고 자신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이 있으니, 박근혜 정권은 '대항' 권력과 싸워서 진 것이 아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시스템과 온갖 무능, 부정부패, 사리사욕으로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닌가. 일의 연원은 더 멀리 더 구조적으로 따질 수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 어떤 힘도 정권을 직접 무너뜨렸다고 자처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경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니, 솔직하게 말해 지금은 권력의 '공백' 상태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권이 '구체제'를 상징한다면, 누구도 새로운 체제에 대한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하다못해 다음 대통령 선거와 개헌 논의도 자유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구심력은 약하다.

둘째, 박근혜 정권은 무너졌으나 구체제를 지탱한(또는 현재도 그러한) 구조는 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통령 권한 대행이 무엇을 주장하고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어떤 힘과 누구를 상징하고 대변하는가?

행정부와 정책은 그 증거다. 그 누군가는 또한 어떤 집단은 국정 역사교과서와 사드 배치를 강행하겠다는 발언에 거리낌이 없다. 원격의료와 의료 영리화도 전혀 흔들리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누구를 또는 무슨 힘을 믿고 이러는 것인가?

정부와 여당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세력도 구체제의 일부이다. 막 달아오르는 개헌 논의만 봐도 그렇다. 내용이 아니라 시기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모양을 보면, 정치적 이해관계 말고 그 무슨 새로움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치제도와 달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회경제적 모순에 이르면 구체제는 더 완벽하게 작동한다. 박근혜 정권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특징인 정경유착과 재벌 살찌우기, 1%를 위한 경제는 어떤 타격도 없을 모양이다.

경제부처가 하는 노릇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내년 경제운용 계획과 예산 편성에 새로운 체제의 실마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987년 체제, 나아가 박정희 체제에 머물러 있는 것이 확연하다. 빈곤과 불평등, 비정규 노동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

구체제와 그 구조를 압도하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그리하여 그 권력이 구체제를 대신하지 못했으니, 체제의 내구성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시민을 포함하여 여기에 대항하는 권력은 이제 막 힘을 모으고 키워가는 상태, 걸음마를 뗀 단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도, 내년 3월이든 5월이든, 새롭게 만들어질 권력 관계를 낙관할 수 없다. 현실정치와 제도를 통해 실질을 얻지 못하면 시민권력은 여전히 광장에만 머물러야 한다. 국가권력이나 경제권력, 또는 그 무엇이라 부르든, 시민권력은 배신당하기 쉽다.

낌새와 조짐은 충분하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어떤 궁리가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12월 19일 정책위원회가 발표한 '12월 촛불시민혁명 입법·정책 과제'는 벌써 대선 승리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진 분위기가 역력하다.

법인세 인상은 언급조차 없고, 경제 민주화는 과감하게(?) 축소되었으며,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방안과 국민연금 공공투자 방안도 사라졌다. 새로운 정치 지형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언론과 검찰개혁, 정치개혁 등에는 무심하다.

이상의 세 가지 해석만 해도 2016년 한 해가 갖는 의미는 다시 도전적이다. 전국에서 촛불을 든 수백만 시민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오늘 현재 성과는 미완이고 부분적이며 낙관하기 어렵다. 구조에 이르기는 턱도 없는데, 그나마 진전된 것에도 '역진'의 기운이 호시탐탐 만만치 않다.

결국, 2016년은 '절반의 가능성'만 확인한 해라고 해야 할까. 가능성이라 했지만 이는 또한 '불능'이기도 하다는 것이 한계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었으나, 쌓아 놓은 자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7년을 생각하면 남은 갈 길이 더욱 험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절반의 가능성만으로는 필시 비관으로 기울어질 터, 하지만 우리는 그리되지 않는다. 그동안 잠재된 시민권력의 힘을 확인했고, 그 권력은 지금 이 시각에도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 힘이 적지 않다는 것과 그 힘의 '옳음'을 믿는다.

게다가 지금 시민권력이라 부르는 힘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으로, 누가 감히 낙관하거나 비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본래 있었던 힘을 발견하는 것일 뿐, 그런 뜻에서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지 '관(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요행을 바라지는 않는다. 공짜도 없을 것이다. 새롭게 발견하고 이해하며 키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하여 2016년 마무리는 '시민 됨' 또는 '시민성'을 성찰하고 새로운 시민을 구상하는 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좋은 2017년을 맞기 위해 '몸'을 만드는 한 가지 방도라고 생각한다.

2016년 한 해 <서리풀 논평>을 성원해 주신 모든 회원과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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