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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올바름' 아닌 '사악함'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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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올바름' 아닌 '사악함' 품다

[작은책] 촛불과 인문정신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습니다. 50여 일 만에 2만 촛불은 230만 횃불이 됐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100m 앞까지 진출했습니다.

<함께자리>는 이번 주 이슈로, △ 촛불과 국제경제 △ 촛불과 생태환경 △ 촛불과 인문정신을 준비했습니다. 각각의 글은 박 대통령의 2차 대국민담화와 3차 촛불집회 전후에 작성됐지만, 당시로 돌아가 촛불의 의미를 여러모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국민의 명령이 국회를 움직였다면, 이제는 우리의 꿈이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편집자.

계강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춘추시대 어지러웠던 그 시절 이러한 물음이 있었다는 게 놀랍지만, 역설적으로 혼란은 안정된 정치에 대한 갈망을 추구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물음에 공자가 대답했다. "정치란 올바름입니다. 공께서 올바르게 이끌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습니까?"(<논어> 중 '안연편') 공자는 정치의 기본 정의를 '올바름(正)'이라 했다. 정치의 기본적인 뜻인 모든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각자의 자리에 정확하고 알맞게 두는 것이고, 모든 일이 제 궤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며, 사회 전체가 정상적으로 운행하게 하는 것이니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고 그것을 제대로 움직이게 할 사람이 필요하다.

2500여 년 전의 말이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은 그 '올바름'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한 '비정상적인' 국가가 되었다. '혼이 비정상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편견과 고집과 독선으로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계강자는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정치가 무엇인지 대학자에게 물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바른말을 하면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끝까지 복수의 칼을 거두지 않았고 지근의 인물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올바름'을 버리고, 사사로움과 어리석음을 테로 두른 셈이다. 모자라면 얻고 모르면 물어야 하거늘, 탐욕과 올가미로 무장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시민의 삶을 제대로 살아 본 적 없고, 늘 누군가 챙겨 주고 정해 주는 일만 살아온 사람은 천체와 우주마저도 자기를 중심으로 도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니 제힘으로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 공자는 제자 자로가 물었을 때 "자신의 몸을 바로잡았다면 정치를 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자신의 몸도 바로잡을 수 없으면서 어떻게 남을 바로잡겠느냐?"고 반문했다. 뒤늦게 쏟아지는 증언들은 그녀가 예전부터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심지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는 내용들이다. 국회의원이 될 정치적 역량도 사회적 기여도 한 게 없었다. 그런 사람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그런데도 '향수'와 '안쓰러움'으로 그녀를 선택한 유권자들이 절반쯤 된다. 그런 점에서 '올바름'을 버린 유권자들이 지금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 시작부터 '올바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선거에서는 박빙으로 이겼는지 모르지만 국정원의 개입과 조작이 없었다면, 그나마도 집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발목을 잡히니, 이전 정부의 해악에 대해서 단 한 차례도 단죄하지 못했다. '올바름'을 걷어차고 사악함을 품었으니, 제대로 정치가 될 까닭이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자유당 독재나 유신독재 당시에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그저 막걸리 한 사발 대접에 넘어가 찍었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이 아니다. 60대 노인(?)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고등학교까지 보편적 교육을 받은 첫 세대들이다. 그런데도 감성에 이끌려서, 조작된 언론에 길들어서 표를 던졌다. 교육이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은 교육이라는 게 20세기 사회가 요구한 노동력인 '속도와 효율'의 틀 안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민주주의 교육이라는 것도 고작 선언과 개념으로 암기되었을 뿐 삶으로 체화되는 일에는 무심했기 때문이다. 어설프나마 공자를 들먹인 건 바로 그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교육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일생을 바쳐 학문을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실천을 중시한다. 망하려는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천하가 잘 다스려질 때는 나아가고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무시당한다. 정의가 행해지는 나라에 살면서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불의가 통하는 나라에서 부자라든지 지위가 높다든지 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논어> 중 '태백편')

'올바름'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실천이 결여되어 있으니, 아무리 배운 게 많고 경험이 많으며 세상 사람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봐도 곡학아세(曲學阿世)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하기 딱 좋을 뿐이다. 대학교수를 지내다 권력의 중심을 기웃대며 높은 자리 얻어 악의 하수인이 되는 자가 부지기수며,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해 판검사가 됐어도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 보며 자기 잇속만 챙기는 자들은 또 얼마나 많이 우리 사회를 망가뜨려 왔던가. 재주는 뛰어난지 모르지만 덕은 모자란 자들에게 권력은 망나니 춤추며 휘두르는 칼이기 십상일 뿐이다. 수많은 동양철학자들이 되풀이하듯 언급하는 정의니 지혜니 따위는 휴지처럼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은 채 당장의 권력에 취해 안하무인으로 설치고 심지어 제가 몸담고 있던 조직마저 송두리째 만신창이로 만드는 자 또한 얼마인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많지만, 재능이 뛰어나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사리사욕에 휘둘리지 않고 공적 가치와 시민들의 바람을 따르는 건 예사롭지 않다. 분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고 배웠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최종적 책임과 의미는 최고 권력자의 몫이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공부가 많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백온 유기 등을 통해 사리와 분별의 힘을 배웠다. 그는 맹자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임금이 신하를 자신의 손과 발처럼 간주하면, 신하는 임금을 자신의 배와 심장처럼 간주한다. 임금이 신하를 개와 말처럼 간주하면, 신하는 임금을 일반 백성처럼 간주한다. 임금이 신하를 흙과 지푸라기처럼 간주하면, 신하는 임금을 도적과 원수처럼 간주한다"는 대목이었다. 전제 군주의 입장에서 제 입맛에 맞을 리 없다. 주원장은 즉시 맹자의 문묘 배향 자격을 박탈하고 위패를 철거하도록 명령했다. 더불어 한림학사 유삼오에게 '황제의 뜻에 거스르는' 말을 <맹자>에서 전부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백성이 고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라는 구절도 삭제되었다.
백성에게 마음을 얻어야 천자(天子)가 된다. 천자의 마음을 얻으면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마음을 얻으면 대부가 된다. 그러나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제후를 바꾼다. 유일하게 바꿀 수 없는 요소는 오직 백성이다. 그게 맹자의 기본 사상이다. 주원장은 맹자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행히 나중에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다음 해 바로 문묘에 맹자의 위패를 복원했고 황제의 뜻을 거스르는 말을 모두 삭제한 <맹자절문>도 당시 도성인 남경 부근에서만 잠시 유통되었을 뿐이다. 그게 '올바름'의 길이다.

문장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판단력이 있으며 사고의 능력이 있을까마는, 어설픈 '향수와 안쓰러움'으로 표를 던진 사람들과 부정선거(국정원의 선거 개입 등)로 가까스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온 나라를 결딴내고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못하는 자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 그를 뽑은 시민들도 '비선'의 강남 여인에게 휘둘린 대통령도 모든 '올바름'을 잃었다. 그리고 그 값을 지금 호되게 치르고 있다. 학교에서 아무리 민주주의와 정의를 배워도 그 사회가 그 덕목으로 굴러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훼손한 자들의 폭력에 순응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제대로 배우되 선언과 이론이 아니라 삶의 실천적 덕목을 훈련하며 올바르지 않음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포기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올바름'은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이며, 그것이 올바른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이란, '내가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해서 '질문하는 나'로 돌아오는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시대정신을 성찰하고 미래 의제를 이끌어 내는 힘을 마련하는 것이다. '올바름'의 인문정신과 실천이 없으면, 그것은 이미 죽은 인문학이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짜 인문학에 불과하다. 위정자는 일반 시민을 가장 고귀한 재산으로 삼아야 하며,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상식부터 회복해야 할 때다. 지금은 못 배운 사람들의 무지(無知)도 문제지만, '배운 놈들의 부역'이 더 큰 문제다. 나를 올바로 세우고, 사회를 올바로 재건하며, 정치와 경제를 올바른 상식에 맞춰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게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사람을 잃으면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 야만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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