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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제도"

[기고] 노동자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지난 15일 철도파업 50일째를 맞아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발표했다.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담화문을 통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전적으로 철도노조에게 돌렸다. 파업 사태의 원인인 '성과연봉제'는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한국에서도 전 방위적으로 도입되어 있는데, 철도노조가 생떼를 쓰고 있는 것처럼 장관은 말했다. 그러나 강 장관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2005년 OECD는 "회원국들이 성과연봉제와 관련된 경험으로부터 얻은 한 가지 결론은 공공서비스에 이 방식이 잘 작동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밝혔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가 발행하는 계간지 <맥킨지 쿼털리>는 지난 5월호에서 "직원 성과평가라는 연례행사가 엉터리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고백했다.

"상대평가에 기초한 성과연봉제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제도"라며 GE(제너럴 일레트릭)과 MS(마이크로소프트)같은 거대 기업들도 성과연봉제의 폐해로부터 탈출한 지 오래다. 그동안 정부는 한국 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왜 안 배우는가?

▲ 전국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회원들은 지난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관 앞에서 성과퇴출제 및 전경련 규탄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강 장관의 담화문은 정부 정책이 현실과 정반대의 인식을 기초로 해서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과연봉제가 안전성과 공공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데, 안전사고 건수·운행 장애율이 반영되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추진되면, 안전사고 건수나 장애가 많은 부서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연봉을 높게 받기 위해서 안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1차원적인 생각이 성과연봉제의 진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현실에선 성과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사고가 은폐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크다. 사소한 장애라고 판단될 경우, 아예 공식 집계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거대한 사고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위험 요인을 쌓아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HERI)'이 발행하는 소식지 40호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에드먼슨(Amy C. Edmomdson) 교수의 연구가 소개됐다. 그는 하버드 대학병원 8개동의 투약 과정을 6개월 동안 관찰했다.

에드먼슨 교수는 최고의 병동일수록 투약 실수가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수간호사의 업무 지시 능력이 뛰어날수록 투약 실수 건수가 높게 나타났고, 직원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투약 실수가 많았다. 이는 상식과 어긋난 것이었다. 그의 추가 분석에 따른 결론은 상징적이다. 자신의 실수를 드러내는 일과 상급자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동일수록 기록된 투약 실수 건수가 많았다. 또한 실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통해 개선책을 모색하는 노력이 정착된 곳일수록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좋은 병동으로 꼽혔다. 실수에 대한 징계 위협이나 저평가를 통한 연봉 측정이 일상화된 곳에서 실수를 감추는 것은 당연한 자기 보호 심리라는 결과다.

강 장관이 발표한 성명서의 "명분 없는 파업을 지속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는 말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과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가치를 기본 소양으로 가졌는지조차 의심하게 한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당당함에 측은하기까지 하다. 공화국 장관들이 국민을 향해 대놓고 반(反) 헌법적 발언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은커녕 당당할 수 있다니,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피폐해졌다.

강 장관은 철도공사에 대해 향후 강력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7000여 명이 넘는 인력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데도 열차가 차질 없이 운행되는 걸 보면 철도가 얼마나 비효율적 인력 구조로 운영되어 왔는지 증명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대로 운행되고 있는 것은 KTX뿐이다. 그나마 대체 인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한 결과다. 반면, 철도공사가 운행률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미숙한 대체 인력을 투입한 곳은 정비 불량과 같은 크고 작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물론 철도공사 인력이 효율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리직이 이번 파업의 대체인력으로 동원됐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현업에 동원돼도 철도공사가 별 탈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인력의 비효율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철도공사 경영진은 관리직을 과도하게 확대해왔다. 인력 부족에 따른 현장의 고충은 무시됐다. 비대해진 관리직은 파업 대비에 좋은 구조일지 모르지만, 현장 중심 사업장인 철도공사에는 맞지 않다.

강 장관은 철도 정책 주무부처의 수장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파업 사태에 대해 노사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주무 장관이 파업의 원인을 전적으로 노조에게 돌리며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면, 홍순만 사장을 비롯한 철도공사 경영진의 입지도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야 3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파업 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서고 있는 마당 아닌가.

지난 4년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온갖 비극의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 등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국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한데, 철도 파업 사태를 마냥 방치하는 것 또한 주무부처 수장의 무능력과 무소신만 증명할 뿐이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는 빨리 빠져나오는 게 답이다. 국토부와 철도공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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