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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환빠', 북한 흉내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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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환빠', 북한 흉내 내나?

[기자의 눈] '체제 위기' 감추는 '환빠 굿판'

또 '환빠'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3년 광복절 기념사에 <환단고기(桓檀古記)> 속 문장이 포함돼 논란이 됐었다. 역사학자들은 모두 <환단고기>가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서(僞書)(가짜 책)'라고 본다. 누가 대통령의 연설문에 '가짜 책' 내용을 넣었나. 최순실 씨 관련 수사가 답을 줄 것이다.

굿판에 참가한 장관 내정자

이번엔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다. '국중대회(國中大會) 대한민국과 환(桓)민족 구국천제 재현 문화 행사'. 박 내정자가 지난 5월 16일 참가한 행사 이름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 행사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흰옷을 입은 여성이 "거룩하신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이시여"라고 외치며 독특한 의식을 한다. 빨간 옷을 입은 남성들이 굿을 하는 장면도 있다.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을 통합했다는 최태민 씨의 교리를 떠올렸다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최 씨는 박 대통령과 함께 '대한구국선교단'을 이끌기 전에 '계룡산 큰무당 원자경'으로 활동했었다. 그러나 박 내정자가 참가한 '구국천제'를, 최 씨의 교리와 기계적으로 연결 짓기는 아직 무리다.

치우, 붉은 악마, <환단고기>

다른 대목이 눈길을 끈다. '구국천제' 행사 내용을 보면, <환단고기> 류의 역사관이 확 드러난다. 행사에 포함된 <천부경> 공연, '환민족' 이라는 표현 등이 그렇다. <천부경>은 <환단고기>에도 소개돼 있는데, 단재 신채호가 '위서'로 규정했었다. 현대의 역사가들도 <천부경>이 '위서'라고 본다. 다만 일부 종교에서 경전으로 활용할 뿐이다.

'구국천제'에 참가한 박 내정자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관련 업무를 했었다. 논란이 불거진 7일 발표한 해명에서. 그는 "당시에 붉은 악마가 치우천왕, 레드데블, 빨간 색이 일반화되지 않았음에도 한마음으로 운동장 7만 관중에게 붉은 티셔츠를 입게 했고 김덕수 사물놀이단의 소리 응원이 곁들여져서 (월드컵) 4강이라는 결과도 가져온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고대사에 나오는 '치우'를 우리 민족과 연결 짓는 주장 역시 <환단고기>를 근거로 삼는다. 역사 전문가들은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뜻이다. 이날 해명을 보면, 박 내정자는 확실히 <환단고기> 신봉자, 그러니까 '환빠'다.

기득권층에게 복무하는 '다물 민족주의'

현 정부 들어 <환단고기> 류의 목소리가 유독 높아졌다. 박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구국천제, 동북아역사지도 편찬 사업 무산 등이 그 사례다. 동북아역사재단 역시 현 정부 들어서 상고사 관련 활동을 대폭 강화했다. 정작 재단 소속 연구자들은 학문적 근거가 없다고 보는 내용이다. 고대 국가가 성립하기 전인 상고 시대에 우리 민족이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다는, 입증 불가능한 주장이 공론 장에서 활개를 친다. 정부 정책이 힘을 실어주는 탓이다.

지난달 8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고고학·역사학협의회 제1차 학술대회에 참가한 역사학자들이 드러낸 위기의식은 심각했다. '위대한 상고사'를 내세워 혹세무민 하는 세력과 정권이 유착했다고 보는 탓이다. 이들 역사학자들은 "현 정부가 상고사 연구에 거액의 연구비를 투입했으며 지난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하면서 상고사 보완 의지를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위대한 상고사'를 주장하는 이들은 민족의 영광을 강조하는 게 왜 나쁘냐고 한다. 그렇지 않다.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학교 교수는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1990년대 노동운동을 약화시킨 게 '다물 민족주의'였다고 지적했다. 전두환 정부 시절 보안사령부 정보처에서 일했던 강기준 씨가 설립한 다물민족연구소를 가리킨 내용이다. 1980~90년대, <환단고기> 류의 주장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물 민족주의' 역시 그 한 갈래다. 이런 주장은 과거의 영광을 찬양할 뿐, 현실의 모순에는 눈을 감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옛 영광의 근거를 넓은 영토에서 찾는 논리라서 '강자 숭배'와도 통한다. 현실의 강자,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논리다.

북한, '체제 위기' 감추려 단군릉 캠페인

이 대목에선 북한이 박근혜 정부의 선배다. 북한이 이른바 '단군릉'을 복원했다면서 공개한 게 1994년이다. 갑작스런 반전이었다. 원래 북한은 이른바 '유물사관'을 지지했던 탓에 '단군'의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고조선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이었다. 객관적인 사료 및 유물로 뒷받침할 수 없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단군이 실존 인물이며, 진짜 단군릉을 발견했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단군릉의 높이가 22미터에 달한다. 또 단군릉 속 유골에 대한 연대 측정의 결과, 정확히 5011년 전의 것이라는 발표도 나왔다.

한국의 학자들은 북한 발표 내용을 믿지 않는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연대 측정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5000여 년 전에 거대한 릉을 세웠다는 주장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북한 학계가 불과 얼마 전까지 하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1990년대 초, 북한은 대체 왜 그랬나. '체제 위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일제히 무너졌다. 이들 국가와 교역하던 북한은 고립됐다. 결국 북한이 체제 단속을 위해 택한 길은 더 강력한 민족주의였다.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으론 설명할 수 없는 단군릉 캠페인이 그 시작이었다.

북한 닮아가는 박근혜 정부, 자유민주주의 지지자 맞나?

상고사, 고대사를 과장해서 억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행태. 현 정부 들어 유독 목소리가 높아진 <환단고기> 진영은 북한과 닮은꼴이다.

박근혜 정부, 과연 자유민주주의 지지자가 맞나. 사상의 자유 시장을 두려워한 나머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했다. 옛 역사를 과장해서, '체제 위기'를 감추려던 북한의 행태를 따라한다. 대체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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