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회화 지도(E-2) 비자의 원어민 교사 A씨가 강제 HIV 검진을 거부하자 계약이 해지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E2, E6, E9, H2 비자 소지자에게 외국인 등록 시 한 번의 테스트를 하도록 하였으나, 대부분의 지역 교육청에서 재계약 조건으로 이와 같은 테스트를 요구했다. 그런데 외국 국적이라도 한국계 원어민 교사(F-4 비자)에게는 이러한 테스트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인종차별철폐협약위원회에 개인 통보 제도 진정을 했고 결과가 나왔으나 한국 정부가 이행을 하지 않아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서 권고를 받았다.
HIV/AIDS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함께 얽혀 배제를 강화시킨다. 오래된 소수자에 대한 낙인은 이렇게 연결돼있다. 위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 차별이 작동하는 연결 고리와 그것을 풀기에는 의무 주체인 국가의 무책임으로 개인 통보 제도와 국내 인권 보장 체계가 무력한 현실을 살펴본다.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보조 교사로 근무하던 외국인이 HIV 검사가 포함된 채용 신체 검사서 제출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회화 지도 비자 소지 외국인은 현행법상으로 범죄 경력 증명서와 건강 진단서(마약, 에이즈 검사 포함)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E-6(예술 흥행), E-10(선원 취업), D-3(산업 연수), E-7(특정 활동) 중 외국 교육 기관 교사, E-9(비전문 취업) 체류 자격자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 진단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HIV 검사는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반드시 받아야 하고, 혹시라도 이상 소견이 발생할 경우 재계약을 취소당할 수 있다.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감염병 환자, 그 밖에 공중 위생상 위해를 끼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입국이 금지되거나 강제 퇴거 대상자에 속한다. 검진을 거부한 이 사건의 당사자도 더 이상 한국에서 거주하며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이 문제를 '인종 차별'로 규정하고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와 2012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2015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외국인 회화 지도 교사에 한정해 의무적으로 HIV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은 공중 보건이나 그 밖의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한국 정부에 인종 차별을 야기하거나 지속시키는 법과 관행을 폐지하라고 권고하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9월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정부에 다시 권고를 했다.
강제 검진은 공중 보건 목표에 전혀 도움되지 않아
누군가는 회화 지도 외국인 교사가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건강과 범죄 이력을 철저히 확인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불법 외국인 강사 퇴출을 위한 국민 운동'의 경우 외국인 강사들이 아동 성범죄를 일으키거나, 불법 강의를 하거나, 마약 사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더 철저한 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이들 주장을 받아들여 2007년 관련 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한국인 교사나 한국계 외국인 교사는 대상에서 제외하고 외국인에게만 적용하고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 에이즈 전파 위험을 높게 만든다는 고질적인 편견이 작동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 검사도 아니었고 외국인이라면 강제 검사하겠다는 발상은 감염인 색출이라는 인권침해 소지를 추가로 남길 뿐이다. 각 국가들의 에이즈 관리 및 예방 사업을 돕기 위해 1996년 1월 창설된 유엔(UN) 산하의 에이즈 전담 기구 유엔에이즈(UNAIDS)는, 고지된 동의와 비밀 보장이 없는 검사는 그 자체가 인권 침해이고 강제 검사가 공중 보건 목표를 달성한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11년 10월,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중목욕탕 출입을 저지당한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사례를 언론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해당 업주는 외국인이 사우나의 물을 더럽힐 수 있고 에이즈 문제도 있기 때문에 한국 손님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했다고 했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나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이고, 국경을 넘어 잘 못 들어온 질병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화 지도 외국인에게 건강 진단서에 에이즈 검사 결과를 포함시켜야 하는 것도 역시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에이즈, '수입 전염병'이라는 혐오
1985년 12월 중동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가 HIV 의심 판정을 받고 긴급 송환되었다는 기사가 게시되면서 에이즈라는 질병이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1987년 케냐에서 거주한 한국인 남성이 HIV 양성으로 확인되어 14일 만에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며, 이후 외국 관광객이 늘어 확산 위험이 커졌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1988년에는 주한 미군 중에 HIV 확진을 받은 이들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기사와 해외 장기 체류 내국인 감염인이 확인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에이즈가 수입 전염병이라는 인식을 고정시켰다.
그 사이 격리 수용 정책이 포함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이즈예방법)이 제정되었고, 유흥업 등에 종사하는 특정 직업군에 대해 강제 검사가 실시되었다. 당시 시민 사회 운동, 특히 여성 운동과 보건의료 운동 내부에서는 주한 미군 항체 반응 검사와 외국인 입국자에 대해 항체 음성 확인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1989년 12월, 91일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에이즈 검진을 의무화하는 에이즈예방법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외국인 강제 검사 제도의 뼈대가 만들어진 시기다. 에이즈가 수입된 나쁜 질병이라는 인식 속에 외국인 대상으로 에이즈 강제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차별적인 정책은 에이즈 예방에 방해만 될 뿐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200만 명을 넘었다. 에이즈라는 질병이 한국에 알려진 지 30년이 넘었다. 그 사이 HIV 감염 경로(혈액, 정액, 질액, 수직 감염)도 확인되었고, 치료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기대 수명 역시 질병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에이즈는 여전히 죽음과 공포를 연상케 한다. 소나무 에이즈(소나무재선충병)와 같은 표현을 언론에서는 여과 없이 사용하고 있고, 성 소수자 혐오 선동 세력은 에이즈 공포감을 조장하며 성 소수자 인권이 질병 확산의 원인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동성애가 불결하고, 문란하고, 비자연적인 성행동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종 혐오와 맞물려 외국인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도 여전하다. 에이즈 혐오 사이에서 감염인 당사자들은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진료 거부, 차별 진료가 대학 병원에서조차 버젓이 벌어지고 있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HIV가 일상생활에서 감염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하면서도 질병 예방을 위해서는 인권 침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감염인 인권이 대립하는 것처럼 말하고, 내국인 건강을 위해서는 외국인 검사 정책을 강화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유엔에이즈도 공중 보건적으로 채용, 입국, 체류 및 거주의 목적으로 외국인에 대해 의무적인 HIV 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 유엔에이즈 보고서(Global Commission on HIV and the law : Risk, Rights & Health)에서는 이것을 '가짜 안전'이라고 표현한다. 국경이 안전할수록 자국민의 건강이 보호될 것이라는 위험하고 잘못된 함의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회화 지도 비자 소지 외국인에게 에이즈 검사 항목이 포함된 건강 진단서를 요구함으로써 질병 감염의 위험을 외국인에게 떠넘기고 자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인종에 대한 혐오와 질병에 대한 공포의 경계선에서 차별과 배제가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 에이즈 예방과 인권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질병에 대한 터부, 질병 감염의 문제를 타자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차별적인 정책이야말로 공중 보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HIV 감염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 교육 지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에이즈 예방과 인권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고, 에이즈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행위들을 규제하는 것이며, 모든 외국인과 이주 노동자들이 HIV 관련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외국인 감염인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차별 없이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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