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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안에 통일"…'주술사' 최순실에 놀아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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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안에 통일"…'주술사' 최순실에 놀아났나?

[정욱식 칼럼] 대북 정책에 어른거리는 최순실 그림자

어지럽다. 국민 전체가 뭔가에 홀린 느낌일 게다. 비선 실세로 눈초리를 받아온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거나 소설을 이렇게 써도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욕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논픽션'이다. 그것도 현재 진행형으로 말이다.

의혹은 눈초리는 이해할 수 없었던 대북 정책으로도 향한다. 갑자기 틀기로 한 대북 확성기, 기습적으로 결정된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도 최순실의 은밀한 손이 뻗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1월 6일 북한의 4차 핵 실험 다음날 대북 확성기를 틀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 1월 7일 오전만 하더라도 주무장관인 한민구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이 나오고 난 다음에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후에 청와대는 "대통령의 결단"이라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발표했다.

청와대가 내세운 근거는 북한의 핵실험이 "8.25 남북 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는 거였다. 8.25 합의에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대북 확성기를 틀지 않기로 했는데, 북핵 실험을 "비정상적인 사태"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합의에는 맥락에 있기 마련이다.

2015년 8월에 남측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데에는 지뢰 사건이 있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의 무력 충돌 위험도 있었다. 8.25 합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핵 실험이 "비정상적인 사태"에 해당하는지는 합의의 영역이 아니라 해석의 영역이다. 국방부가 8.25 합의 직후 북한의 핵 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가 '비정상적인 사태'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결단"을 앞세워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더구나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 시 조준 타격 등을 위협했던 전례를 염두에 두었다면, 확성기 방송에 따르는 전방 장병들과 주민들 안전 대책을 먼저 강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한 사전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 대북 확성기를 다시 트는 게 분초를 다툴 만큼 시급한 일도 아니었을진대, 대통령이 주무 장관의 의견마저 무시하고 서둘러 결단을 내린 배경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조치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사흘 후에 전격 발표됐다. 그런데 그 과정이 석연치 않다. 통일부는 2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근로자에게 지불되는 임금은 핵과 미사일 개발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했었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보복 조치로 개성공단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에도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잠정적이거나 일시적인 중단' 의견을 냈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를 묵살하고 2월 10일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7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선 개성공단 관련 논의가 없었다"며, "형식적으론 2월 10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결정됐지만, 이미 8~9일 박 대통령이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고 보도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적어도 정상적인 정부라면 사전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입주 기업들에게 수일 전에 통보해 공단에 있는 각종 자재 및 설비와 생산품을 최대한 가지고 나올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하지만 기습적인 발표로 인해 입주 기업들은 거의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고, 이는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로 이어졌다.

도대체 주무 부처의 입장과 입주 기업들의 막대한 피해 가능성까지 무시하면서까지 박 대통령이 결단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순실 씨가 주도한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 가운데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이 포함돼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한겨레>는 전한다.

<한겨레> 보도에서 가장 섬뜩하게 다가온 부분은 최순실의 한 지인이 전했다는 말이다.

"개성공단이 폐쇄될 무렵 최순실 씨가 '앞으로 2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말을 자주했다."

이러한 최순실의 발언이 박 대통령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올해 들어 박 대통령의 발언에선 "북한 붕괴"와 "통일"이라는 단어의 빈도수가 부쩍 늘었다.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 미국의 정보 기관, 하다못해 최근 탈북자들조차 '김정은 정권이 빠르게 안정화되었다'고 전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곧 망할 것이다'는 식의 홍보와 대북 제재에만 열을 올렸다. '과학적 판단'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주술적 세계관'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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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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