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공사 홍순만 사장이 21일 더는 '복귀 명령'은 없다며 '최후 통첩'을 선언했다. 파업에 참여한 7300여 명의 조합원 없이도 "6개월 이내에 모든 열차를 정상화하겠다"고도 했다. 또 현재 파업 참여율이 99%에 이르는 기관사들을 대체하겠다며 "3년 내에 군 인력과 일반 직원들의 면허 취득을 통해 3000명의 기관사를 육성하겠다"는 충격적인 말도 꺼내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6개월 만에 열차 정상화가 가능한가는 둘째치고라도, 이 같은 '단기·대량' 기관사 육성 계획 발표는 홍 사장이 철도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누가 낙하산 사장 아니랄까 봐 이런 위험천만한 소리를 하는 것인가.
앞서 지난 2009년, 경찰청장 출신인 당시 허준영 코레일 사장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내놓은 적이 있다. 허 전 사장은 2009년 철도노조의 파업 당시 대체 인력을 확보하겠다며 사무직 직원들을 상대로 부실·단기 교육을 진행한 후 기관사 면허를 발급했다. 이때 교육을 받은 이만 2036명이고, 투입된 비용만 81억 원이다. 허준영 전 사장과 임원들도 열차 운전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중 단 한 명도 기관사로 전환되지 못한 채 '장롱 면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파업 대응 명분으로 되지도 않을 일에 수십억의 혈세만 낭비한 꼴이다. 현재 파업 중 철도공사도 이 '장롱 면허' 소지자들에게 운전을 맡기지 못하고 부기관사로 투입하고 있다.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어서다.
홍 사장은 파업 참여율이 가장 높은 기관사와 승무원들을 다른 직렬로 보내는 이른바 '순환 전보'를 하겠다고도 밝혔다. 우선 이는 노동조합과의 단체 협상 위반이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으로는 조직 생산성은커녕 안정적인 열차 운행은 담보되지 않는다. 수십 년 같은 선로를 반복해서 운행하는 기관사들조차 매일 다른 기후 조건과 선로 상태, 차량의 습성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전한 운행을 할 수 없다. 끊임없이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실수를 줄여, 한 치의 오차라도 줄이는 것이 운전 업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밉다고 해서 숙련노동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그 노동자의 긍지를 이렇게 깡그리 무시하는 수 있는가. 홍 사장의 발언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홍 사장은 이날 파업에 따른 인력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철도 안전의 핵심 업무 중 하나인 고속철도(KTX) 정비마저 외주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KTX 정비를 담당하는 소속에서는 정비 주기를 넘긴 부품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대체 인력이 정비한 차량의 주요 부품이 절손되는 등 심각한 사고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홍 사장은 며칠 전 서울 김포공항역 스크린도어 사고 직후 도시 철도 노조가 파업을 중단한 것을 환영하듯 언급하면서도 정작 사고의 원인인 안전·위험 업무의 외주화에 대해선 침묵했다.
홍 사장이 이날 밝힌 기관사 단기 양성 대책과 직렬 간 순환 전보 계획은 '위험한 도박'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6개월 만에 열차를 정상화하겠다는 사장의 발언은 단시간 내에 정부에 파업 대응 '성과'를 보고해야만 하는 초조함의 반영으로 보인다. 정비가 외주화된 열차, 날림 면허 소지자들이 운전하는 열차를 운행하겠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성과를 위해 승객 안전을 '제물'로 삼겠다는 이야기다. 오직 자신의 '노조 탄압 성과'를 위해 국민이 당할 고통과 위험을 외면하는 사람이 철도공사의 사장이란 현실이 절망스럽다. 오늘 홍 사장의 발언은 자신의 성과를 위해 시민을 위험 속으로 내모는 '성과주의'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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