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설리의 155명 vs. 세월호 304명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설리의 155명 vs. 세월호 304명

[안종주의 안전 사회] 한국판 설리를 기다리며

사람은 언젠가는 죽고, 사고는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벌어져온 진리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경구다. 이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사고는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설리(Sully)'라는 애칭이 정겨운 체즐리 설런버거(Chesley Sullenberger)란 인물과 그가 맞닥트린 <허드슨 강의 기적>이란 이름의 여객기 불시착 사고가 생생한 현실처럼 영화와 책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승객 150명과 승무원 5명 등 155명이 탄 여객기가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해 모두 생존한, 사상 초유의 사건은 그 뒤 가장 성공적인 위기 또는 재난 대응 사례로 꼽히며 위기 대응을 다루는 교과서와 각종 책에 소개되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미래의창 펴냄)을 펴낸 김민주는 이 사고를 놓고 "허드슨 강의 기적은 여러 요인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엔진 고장 후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겠다는 기장의 판단력이 가장 돋보이고, 허드슨 강에 충격 없이 안착한 조종사의 조종술 또한 뛰어났다. 또 강 위에서 보인 승무원의 책임감과 승객들의 침착한 대응도 좋았다. 또 뉴욕항만청, 뉴욕소방국, 경찰, 인근 민간 페리들의 재빠르고 적극적인 구조 활동도 기적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2009년 1월 15일 차가운 한겨울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내리던 눈은 아침 일찍 그쳤다. 구름이 간간이 있는 맑고 추운 전형적인 한겨울 날씨였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쉰여덟 나이의 설런버거 기장은 1만9000시간의 비행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었다. 유에스 에어웨이스 소속인 그는 프랑스 에어버스 A320-214기종을 몰고 이날 오후 3시 30분 공항을 출발,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롯으로 향했다.

여객기는 이륙하자 2분 만에 뜻밖의 사고를 만났다. 대형 새떼가 비행기와 충돌했다. 날개를 포함해 몸집이 2미터나 되는 큰 새들이 하필이면 양 날개 엔진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른바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였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두 개의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모두 멈추었다.

기장과 승무원, 뉴욕 민관 합동 구조대가 만들어낸 기적 아닌 기적

설리는 "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외쳤다. 관제사는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하라고 지시했다. 설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관제사는 다시 인근 소규모 공항에 비상 착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설리는 이 또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비행기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조종사다. 그는 독자적으로 판단해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는 길을 택했다.

그 순간 관제사는 대형 여객기 참사를 떠올렸다. 그는 더 이상 관제사로서 설리와 대화할 수 없었다. 심리적 동요 때문에 다른 관제사로 바뀌었다. 관제사의 예상과 달리 설리의 침착하고 정확한 판단과 빼어난 비행 솜씨 덕분에 여객기는 약간의 충격은 있었지만 강물에 처박히지 않고 강 위에 무사히 착륙했다. 위기를 맞은 지 불과 208초 만에 벌어진 일이다. 비상 착륙 3분여 만에 155명 모두 비행기를 탈출해 날개 위에 올라서서 구조를 기다렸다.

불시착 4분 만에 민간 여객선이 가장 먼저 도착해 구조에 나섰다. 이어 다른 여객 페리와 해안 구조대, 보트, 잠수 구조 대원을 태운 헬리콥터 등이 속속 도착했다. 20여 분만에 모두 구조했다. 설리는 두 번이나 물에 일부 잠긴 객실을 돌며 누가 없나 소리 지르며 확인을 했다. 두 번째 확인을 하고 나올 때 강물이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당시 강물은 영상 2도로 매우 차가웠다. 이 사고는 '허드슨의 기적(Miracle on the Hudson)'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허드슨 강 불시착 사고의 대척점에 자리한 세월호 참사

허드슨 강 여객기 불시착 사고에 대해 설리는 '기적' '영웅'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은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설리는 사고 후 그 해 자신의 삶과 불시착 사건을 다룬 책을 펴냈다. 한국에 9월 1일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신혜연 옮김, 인간희극 펴냄)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 된 그 책의 원제는 [Highest Duty : My Search for What Really Matters]이었다. 이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기장으로서의 의무가 가장 중요하며 자신이 추구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제목에 이를 오롯이 담았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웅 칭호는 여전히 편치 않다. 아내의 말처럼 영웅은 화염에 휩싸인 건물 안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1549편 항공기 사고는 그런 경우와는 달랐다. 왜냐하면 승객들뿐만 아니라 나와 승무원들에게도 똑같이 닥친 위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훈련받은 대로 했으며, 현명한 결정을 내렸고, 포기하지 않았다. 비행기에 탄 모든 이들의 목숨을 중하게 여겼고, 그리고 좋은 결과를 맺은 것뿐이다."

이 대목에서 한 사건과 한 국가를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사건은 세월호 참사다. 국가는 대한민국이다. 배와 승객을 버리고 황급히 도망치다시피 한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 현장에 도착하고도 배 안에 있던 승객 구조는 외면했던 해양 경찰 등 구조대들, 인명 구조보다는 대통령에게 보고할 사고 영상부터 챙기려든 컨트롤타워 관계자 등을 새삼 떠올린다.

사고 후 미국 의회는 무엇보다도 '결과만 다 좋으면 좋다!'는 식으로 대충 덮고 넘어가지 않았다. 사고 청문회 소위원회를 열어 '영웅' 설리에 대해서도 과연 그가 택한 것이, 행동이 최선이었는지를 야멸차게 묻고 따졌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은 우리 세월호 참사의 경우 결과도 최악이었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대충 덮고 넘어가려 온갖 '꼼수'를 동원한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매뉴얼을 토대로 사건의 전반적인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나간 미 연방교통안전국의 성찰적인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

우리 사회에는 영웅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 필요

지금 대한민국은 불안 사회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위기다. 하지만 국민이 생각하는 위기와 대통령이 생각하는 위기는 서로 정반대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위기를 국민은 위기로 보지 않는다. 국민이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것을 대통령은 정상으로 여긴다. 국민은 공권력이 시민(농민)을 죽이는 것을 사회 위기로 본다. 대통령은 그 농민이 불법 시위를 벌이다 죽었음에도 그를 추모하고 공권력을 비난하는 '불순 세력이 준동하는' 것을 국가 위기로 믿고 있다. 안전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지향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더 불안하다.

국민들이 이 정부에 위기나 재난 예방을 기대하지 않은 지 오래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잇따라 터져 나온 메르스 대유행, 경주 지진, 태풍 차바, 사드 배치 등에 대한 정부의 위기 관리와 재난 대응은 늘 허둥거린다. 왜 우리 사회는 대형 재난과 위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가.

거듭된 위기와 재난 관리 실패는 실패에서 진정한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패 뒤 국가 지도자가 앞장서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기르지도, 시스템을 마련할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이 정부에서는 위기 관리자들이 설혹 얼치기 위기 대응을 했더라도 경질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불안에 떠는 일은 결코 없다.

우리 사회는 지금 당장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호를 구할 한국의 설리가 필요하다. 위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준비된 실력을 바탕으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선장과 기장이 필요하다. 비행기 동체보다는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최고 의무라고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누가 한국의 설리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한국의 설리는 영웅이 아니라 지도자로서 '최선의 의무(Highest Duty)'를 다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