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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앞에 선 국가의 품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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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앞에 선 국가의 품격은?

[기고]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불산 누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지켜보며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삼성반도체 화성공장에서 불산이 누출되어 여러 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노동부는 그 공장에 대한 특별 감독을 실시했다. 그 결과 2000여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되었고, 노동부는 모든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 보건 관리 실태를 진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직업병을 앓고 있는 삼성반도체 퇴직자,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안전 보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청구인단은 그 '특별 감독'과 '진단 명령'의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노동부가 이를 거부하자 행정 소송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소송의 피고는 고용노동부다. 삼성전자는 소송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재판 때마다 삼성전자 소속 변호사가 방청석에 앉아 있기는 하다. 직접 참가는 하지 않으면서 관여는 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이 소송에서 "아무것도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내세우는 근거들이 정말 가관이다. 크게 두 가진데, 첫째는 "대상 정보 전체가 회사의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이고, 둘째는 "대상 정보를 공개하면 향후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데 상당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이다.

첫째 이유부터 보면, 대상 정보는 전반적으로 회사의 안전 보건 관리 실태를 정부 기관이 '평가'한 결과이다. 가령 공장 안에서 화학 물질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안전 보건 교육은 제대로 실시하는지 등을 정부 측 전문가들이 들여다보고 평가한 내용들이다. 우리는 이미 그 내용을 일부 알고 있기도 한데, 매우 심각한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특히 "화학 물질 관리 전반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한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 JTBC 뉴스에 보도된 적도 있다.

그런데 노동부는 그 내용 전부가 회사의 영업 비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말인즉슨 노동부의 진단 명령에 따라 드러난 회사의 문제점들이 모두 회사의 영업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이유에 관하여, 노동부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의 법 위반 사항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감독의 결과와 기업의 내부 정보가 담긴 종합 진단 보고서가 그대로 외부에 공개된다면, 사업주는 향후 감독 및 안전 및 보건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자료 제출이나 협조를 하지 않을 수 있고 정확한 자료의 제출을 꺼리게 될 우려도 있습니다."

회사에는 노동부의 진단 업무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게을리할 경우 노동부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회사의 불법 행위를 예단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회사의 불법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나같이 실소를 자아내는 주장들이다. 며칠 전에도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노동부 소송 수행자가 준비서면을 들고 와서 판사에게 직접 제출했는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또 한 번 실소를 불렀다. "서면의 내용 중에 회사 측에 민감한 정보가 있으니 원고 측은 그 내용을 볼 수 없도록 해 달라"는 거였다. 사건에 관한 주장을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상대방에게는 그 내용을 알려주지 말라니. 당연히 원고 측은 문제제기를 했고, 재판부도 피고 측의 그런 황당한 요구를 받아주지 않으며 서면을 돌려보냈다.

그 날도 법정 방청석에는 삼성전자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법정을 빠져나가더니, 법원 밖에서 노동부 소송 수행자와 만났다. 그들이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지만, 나는 그 내용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노동부가 다음에 제출할 서면에 그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길 테니까.

나는 이 소송에서 노동부 측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노동부는 아무런 판단을 하고 있지 않다. 대상 정보를 보관하고 있고 기업을 관리 및 감독할 책임이 있는 공공 기관으로서 주체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삼성의 입만 바라보며 수십 수백 건의 비슷한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들과 비슷하다.

나는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사건을 대리하며 이런 일을 숱하게 겪었다. 재해 노동자의 산재 신청에 따라 근로복지공단 측이 현장 조사를 할 때, 재해자의 대리인은 사업장에 들어갈 수 없다. 관련 규정이 재해자 측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지만 공장의 문은 매번 굳게 닫혔다. 공단 담당자에게 따져 보아도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회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 어쩝니까."

재해 조사나 소송 과정에서 노동부가 보관하고 있는 회사의 자료를 요청할 때에도,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담당자의 답변은 비슷하다.

"회사가 영업 비밀이라고 하는데 어쩝니까."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행태를 보며 '국가의 품격'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국격"이라는 말은 그 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갖는 위상을 말할 때 자주 쓰이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바라보는 국가의 위상과 품격일 것이다.

개별 사건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말과 행동은 그 사건에서 소속 기관 전체를 대표한다. 국민들의 눈에는 일부 공무원들의 모습이 정부 전체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러한 고용노동부 공무원의 모습을 보며,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느냐'는 탄식을 한다. 지금의 고용노동부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 앞에서는 본연의 위상과 품격을 완전히 잃었다. 나는 정말 자신 있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토록 형편없이 떨어져 버린 품격이 이 나라 전체의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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