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동안 환경호르몬 연구들
20년 동안 내 연구는 주의력결핍장애(ADHD) 같은 뇌신경발달장애의 원인 규명과 치료제 개발에 집중됐다. 연구 과정에서 환경독성물질이 추가로 신경발달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된 뒤 환경독성물질과 뇌 발달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환경독성물질 연구 역사에서 일본의 납과 수은중독 사건은 무척 중요하다. 미나마타병과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알려진 이 중독사건은 환경독성물질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쓰레기 소각장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이 암을 일으키고 기형아 출생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심각한 사회 화두로 떠오르면서 환경호르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
최근 10년 환경호르몬은 암 발생, 기형아 출산뿐만 아니라 남성 생식기능 이상, 성인 대사증후군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꾸준히 주목받았다. 하지만 어른과 비교했을 때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영향, 아동기 뇌 발달에 대한 영향과 그 기전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환경호르몬이 뇌의 신경전달 물질계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 일부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되기는 했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다. 인간은 뇌–혈류장벽이 동물과 비교해 취약하기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이 대뇌에 침투하는 것이 성인보다 쉬운 소아에 대한 연구가 매우 적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상대 연구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정치 쟁점이 되지 않은 것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프탈레이트가 어린이 뇌에 미치는 영향
내 연구는 주로 프탈레이트와 아이들의 신경, 뇌 발달에 대한 것이다. 나는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일찍부터 주의력결핍장애에 관심이 많았다. 주의력결핍장애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의 약자로, 영어로는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로 불리는 소아기 발병 뇌발달장애이다. 주의력 결손과 과잉행동, 충동성을 보이며 전전두엽 발달을 늦게 만들고, 뇌의 구조와 기능적 연결망도 손상할 수 있는 질환이다.
아동기 때는 학습장애, 교사, 또래와 갈등을 보이고 부모님의 양육을 매우 힘들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된다. 청소년기에도 병의 양상은 이어져 학교폭력, 우울증, 불안증, 자존감 손상, 사회적 위축, 게임중독, 알코올과 담배 접촉 증가 같은 중독 장애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 비행청소년의 많은 수가 주의력결핍장애를 같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증명됐다.
주의력결핍장애는 성인기까지 거의 절반 넘게 그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성인기 우울 장애나 불안 장애, 약물남용 같은 중독 장애, 자살시도, 분노조절 장애, 인격 장애의 위험성을 4배에서 12배나 늘어나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장기추적연구를 통해 주의력결핍장애의 평생지속성 문제가 확인되고 있다. 주의력결핍장애는 소아기에 발병하지만 평생 걸쳐 삶의 질과 사회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정신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질병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았다.
역학연구를 통해 초등학생 8~10퍼센트, 중고등학생 5~8퍼센트, 대학생과 성인 2~4퍼센트가 이 장애를 가진 것이 확인됐다. 세계에서도 같은 상황이다. 진단 기준 적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이 질환이 흔하고 심각하며, 뇌의 발달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나고 성인기까지 계속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세계 연구 흐름이 같다. 내가 병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많은 수도 이 질환을 갖고 있으며, 학교자문이나 청소년비행 관련 자문을 해줄 때도 이 문제가 핵심문제로 늘 등장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원인– 진단–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의력결핍장애 아이와 건강한 아이들의 뇌
지난 10여 년 주의력결핍장애 중개연구센터(보건복지부)와 뇌신경발달원천연구(미래창조과학부) 같은 국가과제로 이 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요인과 환경요인을 밝히는 연구들을 진행해 왔다. 뇌 영상을 연구하며 뇌 구조와 기능 변화를 밝혀내기 위해 유전요인과 환경요인들이 이 질환의 뇌 발달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뇌 영상은 우리 뇌의 복잡한 구조나 기능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다.
과거 약 5년 동안 주의력결핍장애 아이들의 뇌가 건강한 아이들의 뇌와 어떻게 다른지, 치료를 받아 여러 증상과 증후가 개선된 뒤에는 뇌의 기능과 구조가 어떻게 바뀌는지 연구했다. 약물치료의 효과도 뇌 영상 변화로 확인했다. 연구팀은 2006년 70여 명의 환자군과 건강군을 비교해 치료 전 뇌의 구조와 기능에 이상이 뚜렷하다는 것을 확인했고, 10주 동안 약물 치료했을 때, 건강군과 매우 유사한 수준까지 회복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는 약물치료 효과를 객관적 뇌 영상 방법을 통해 증명한 첫 연구로 인정받았다.
이 아이들의 뇌 영상을 보면 건강한 아이들의 뇌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대체로 요약하면 본래 나이보다 최소 2년 정도 늦은 뇌 발달 양상을 보인다. 특히 전두엽 피질의 두께가 줄었고, 전두엽과 다른 부위 연결성이 위축돼 있는 점이 일관되게 확인된다. 전두엽 기능이 주로 집중력 유지, 자기조절, 감정과 사고의 통합, 공감능력 발달과 연관되는 것을 볼 때 이 질환 아이들이 보이는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지난 수년 동안 연구와 추적관찰을 통해 300명 환자군과 100여 명 정상아동군을 비교하고 뇌 구조와 기능의 차이를 밝히는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 주의력결핍장애 아이 뇌의 구조와 기능 이상은 약물치료를 적극 시행하면 교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략 6개월 넘게 치료를 유지하면 전두엽 기능성이 회복되고, 연결성이 좋아지는 양상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약물을 중단하면 본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 현재 문제이다. 수년 동안 치료약물을 안정되게 유지할 경우 뇌의 구조와 기능 이상이 영구 호전되거나 회복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 과제가 남아 있다.
주의력결핍장애의 원인들
이 병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지가 점점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유전자 연구를 많이 했다. 우리는 이 병의 치유에 도파민계열 약물이 도움이 된다는 것에 착안해 도파민 유전자와 단백질의 기능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론했다. 약 200여 명의 환자군과 부모군 그리고 건강대조군을 모집하여 유전형 차이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정상 아동과 환자군의 도파민 전달체,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가 차이가 난다는 것을 규명했다. 덧붙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경향이 뚜렷한 것을 확인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뇌신경의 성장과 발육을 돕는 물질유전자 이상과 신경막 단백질 유전자 이상도 확인했다. 주의력결핍장애는 한 가지 유전자의 이상으로 생기는 단일 유전장애가 아니라 여러 개 취약성이 늘어나게 하는 유전자들의 결함으로 나타나는 병이라는 것을 규명했다. 이는 나라밖 다른 민족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과 비슷하다.
주의력결핍장애는 세계 모든 인종에서 나타날 수 있는 유전적 경향을 갖는 질환이다. 매우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유전적 특성과 연관된 타고난 기질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주의력결핍장애 아이들에게서도 유전적 특성과 연관되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도파민이나 신경성장물질, 뇌신경막 단백질 유전자의 결함은 뇌 구조 발달과 연결성, 기능적 특성과 발달지연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유전적 특성은 주의력결핍장애에 더 쉽게 걸리게 만든다.
그런데 유전특성이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모든 아이들에게서 발견된 건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그런 유전특성보다는 부모 결손으로 인한 양육의 혼란, 경제 취약성으로 인한 영양부족, 환경호르몬이나 납과 수은 같은 중금속 노출로 인한 환경요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환경호르몬 특성을 가진 '프탈레이트'라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연구팀은 세 군데 지역을 골라 초등학생들의 소변을 모았다. 프탈레이트 대사물은 소변 함량으로 정량 측정을 한다. 그 아이들의 주의력, 과잉행동성, 충동성을 측정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신경심리학 검사도구와 컴퓨터 베이스 측정평가도구를 통해 전국 아이들의 연령별 표준화가 완료되어 있다. 이를 통해 같은 연령대 아이들 남녀도 구분보다 얼마나 더 충동성, 주의력 결함, 과잉행동성을 보이는지 치우침 없이 측정할 수 있다. 놀랍게도 소변 속 프탈레이트 농도와 '주의력– 과잉행동– 충동성'이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전에는 이런 상관성이 사람을 통해 제대로 증명된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약간 방향을 바꿔서, 병원을 찾는 주의력결핍장애 환자 아이들과 건강한 아이들의 프탈레이트 소변 함량을 비교해 조사했다. 역시 주의력결핍장애 아이들이 높았다.
프탈레이트가 산모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
산모 몸속 프탈레이트 농도와 태어난 아이의 발달을 추적 관찰하는 연구도 진행했다. 산모 몸속 농도를 임신초기, 중기, 후기, 출산 단계로 나눠 네 번에 걸쳐 측정했다. 평균값 농도가 높았던 산모에게 태어난 아이들은 다른 요인들 산모 나이, 산모 지능, 부모학력, 경제력을 모두 통제하고 나서도 여전히 발달 지연을 보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6개월이 지나자 아이의 발달속도, 특히 운동 발달속도가 낮게 나타났다. 이는 충동성이나 과잉행동성 증가와 관련된다. 베일리 검사도구로 생후 6개월 300여 명 영아를 전문가가 일대일 조사했다. 이때 남자 영아들이 산모의 프탈레이트 농도가 높을수록 뚜렷한 운동 발달지연을 보였다.
연구팀은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사람에 대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뇌 영상을 확인했더니, 놀랍게도 프탈레이트가 아이들의 뇌 피질 두께를 일부분 얇게 할 수 있고, 유전자발현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의력결핍장애군 150명에게서 프탈레이트 소변 농도가 높을수록 특정 뇌 부위 피질 두께가 자기공명영상(MRI)에서 줄어든 것을 확인해 국제 정신과 학술지에 보고했다. 그 피질 두께의 감소가 충동성 증가, 공격성 증가부모 평가와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유전자 가운데 세로토닌(serotonin)을 전달하는 물질이 나타나는 것을 측정하는 메틸레이션(methylation) 유전자 발현 조절 과정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알려진 내분비교란으로 인한 남성 생식기 발달이상이나 내분비 질환 증가뿐만 아니라, 뇌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주의력결핍장애를 유발하고 악화시키며, 뇌의 피질 발달을 저해하고, 공격성과 충동성, 주의력 결핍을 가져온다.
프탈레이트는 엄격히 관리돼야 하고 그런 물질이 많이 들어간 학용품, 장난감은 가게에서 팔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비자보호원과 공정거래위원회 표본 검사 결과를 잘 봐두고 해당 회사의 제품을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밖에 환경호르몬과 중금속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위해 물질에 대해 지속해 추적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평가해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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