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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삼성'이 미덥지 않은 6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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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삼성'이 미덥지 않은 6가지 이유

[이재용 체제 삼성 2년 ③] 삼성에 실리콘밸리 문화 심을 수 있을까

삼성전자에서 일어난 변화다.

"출퇴근 시간을 직원 마음대로 정한다. 복장 역시 자유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본인이 예산을 편성해서 사업 계획을 짠다. 아이디어가 사업화 되면, 인센티브가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전혀 내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50세 이건희, 완전 자율 '타임머신' 팀

언제 있었던 일일까. 24년 전이다. 1992년 7월 15일, 삼성전자는 '타임머신' 팀 출범식을 했다. 사내 공모를 통해 뽑은 과장급 이하 직원들로 팀을 꾸렸다. 업무 방식은 앞서 소개한 대로다. 당시 삼성전자 사보는 '타임머신' 팀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 21세기를 대비하고 고정관념에 빠져 획일화 경직화된 조직을 살아서 꿈틀거리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다. 21세기 미래 산업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전사적 차원의 비전 제시,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조직 분위기로 기존의 조직 개념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소프트한 조직 운영으로 21세기 New Frontier 정보통신의 위상과 초일류 기업으로의 변신을 기대해보자."

'타임머신' 팀을 꾸릴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만 나이로 50세였다. 이듬해 신경영 선언을 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라고 했고, 실제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 1992년 7월 삼성전자 사보에 실린 타임머신 팀 소개 기사. ⓒ프레시안

47세 이재용, '스타트업 삼성'

지금 삼성을 이끄는 이재용 부회장은 만 나이로 47세다. 이 부회장 역시 '타임머신'과 비슷한 시도를 한다. 구호는 '스타트업 삼성'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4일 '스타트업(Start Up) 삼성 컬처 혁신 선포식'을 열고 △수평적 조직 문화 구축 △업무 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 강화의 '3대 컬처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직급 단순화 △수평적 호칭 △선발형 승격 △성과형 보상 등 4가지 방향을 골자로 하는 글로벌 인사 혁신 로드맵을 수립해 다음 달 발표할 계획이다.

요컨대 직원의 자율성을 높이고, 직급과 연차에 따른 권위주의를 깬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하는 등의 변화가 이미 있었다. 사내 창의 아이디어 육성 프로그램인 C랩도 운영 중이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창의적 발상, 창의적 시도를 끊임없이 독려하고 있다.

삼성에 실리콘밸리 문화 심을 수 있을까

24년 전의 '타임머신' 팀이 회사 전체로 확대된 듯하다. 여기서 궁금증. '타임머신' 팀은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성과도 있었다. 1994년 12월 20일자 <매일경제신문>에 따르면, '타임머신' 팀이 한 해 동안 보고한 아이디어는 450건이다. 예컨대 삼성 휴대폰의 '천지인' 자판도 이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타임머신' 팀을 기억하는 이들은 삼성 안에서도 많지 않다. 팀원을 두 차례 물갈이 한 뒤에 해체됐다. 그리고 1997년 외환 위기가 있었다. 재무 부서가 힘이 세지면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가 더 견고해졌다.

이 부회장이 주도하는 '스타트업 삼성'도 같은 운명일까. 경영 전면에 나선 초기, 분위기 쇄신용 캠페인에 그치는 걸까. 단정하기는 이르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에 비해 개방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총수 전용기를 팔았고, 불필요한 의전도 줄였다. 이런 점은 긍정적인 전망의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한국 대기업에도 미국 실리콘밸리 풍의 개방적인 문화가 자리 잡는 걸까. 그 역시 비약이라는 의견이 많다. 기자가 만난 삼성전자 직원들은 대체로 이런 입장이었다. 한계 역시 분명하다는 것. 거칠게 정리하면, 여섯 가지 이유다.

창의조차 '주입식 관리'

첫 번째는 '주입식 창의'라는 모순이다.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티거 Jang 지음, 렛츠북 펴냄) 저자가 쓴 표현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삼성전자에서 전략기획, 글로벌 세일즈 및 사내 벤처 부서를 경험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저자는 삼성전자에서 4년 동안 일한 뒤 최근 퇴직했다. 그가 한 이야기다.

"(삼성에서는) 창의조차 주입식으로 관리된다."

실무 부서에서 자율적으로 창의적인 시도를 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말이다. 물론, 이건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패 책임은 누가 지나이재용, 여전히 등기이사 회피


두 번째는 실패에 따른 책임 문제다. 창의적인 시도를, 위에서 요구했다. 그런데 실패하면 책임은 누가 지나. 창의적인 시도를 하라고 요구한 윗사람? 맨 위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있는데, 그럼 이 부회장이 책임지나? 그럴 리는 없다.

이 부회장이 아무리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다한들, 실패의 책임에 대해서까지 열려 있는 건 아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의 등기이사조차 맡고 있지 않다.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면, 권한과 책임이 함께 따른다. 그걸 계속 피하고 있다.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외면하는 구조는 여전한 셈이다.

총수가 회피한 책임, 누가 짊어지나. 그게 모호하니까, 일이 복잡해진다. 실패의 책임이 터무니없이 증폭돼서 내게 돌아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업무를 잘게 쪼개야 한다. 그래야 실패 책임이 엉뚱하게 튀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서류 작업이 대단히 중요해진다. '관리의 삼성'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초일류 사원, 삼성을 떠나다>의 한 대목이다.

"실제로 내가 하는 일들을 보면 '전략 기획'이라는 명칭이 참으로 민망해졌다. 하루 종일 보고서 줄 간격 조절하고, 사람들 자료 취합하고, 파일 바인더 정리하고, 회의실 컨퍼런스콜 전화기 고치고…. 어쩌면 업무명이라도 근사하게 지어서 위안이나 삼으라는 것 같기도 했다."

현장 경영의 양면성

세 번째는 현장 중시 경영이 지닌 양면성이다. 이재용 체제 삼성의 한 특징이 현장 중시다. 삼성전자 DMC(Digital Media&Communication)연구소는 지난해 파격적으로 규모를 줄였다. 연구원 대부분을 현업 부서로 보냈다. 또 삼성종합기술원도 역할이 축소됐다. 삼성전자 DMC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긴 호흡의 연구를 하던 곳이다. 삼성종합기술원은 그보다도 더 장기적인 연구를 했다. '삼성 안의 대학' 비슷한 위상이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던 이들이 대거 자리를 옮겼다.

현장 중시 경영은 양면이 있다. 소비자의 요구에 바짝 다가서는 면이 있다. 기업 입장에선 인력 투자의 효율이 높아진다. 주주들도 이런 방식을 좋아한다. 반면, 당장의 필요와는 거리가 있는 연구개발은 소홀해질 수 있다. 기업의 기초 체력이 떨어진다. 이재용 체제 삼성은 전자(前者)에 치우쳤다. 기자가 만난 삼성 직원들은 이 대목에선 대개 의견이 겹쳤다. 공과대학 교수들 역시 삼성종합기술원 축소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눈앞의 요구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부응하는지에만 골몰하는 구조에선 창의적인 시도가 불가능하다. 창의적인 발상이 있다한들, 그걸 시도할 여유가 없다. 현장의 관성에서 벗어나, 긴 시야로 연구개발을 할 공간이 필요하다. 이재용 체제 삼성에선 이런 공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타임머신' 팀은 왜 해체됐나

네 번째는 경제 위기 가능성이다. 1992년 발족한 삼성전자 '타임머신' 팀의 시도가 이어지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1997년 외환 위기였다. 기업 환경이 나빠지면, 재무 논리가 득세한다.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비용은 모두 삭감 대상이다. 이런 구조에선 창의적인 시도가 아예 불가능하다. 장기적인 연구개발 과제가 축소된 것과 비슷한 측면이다.

한국 경제가 다시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주력 산업 대부분이 성장 동력을 잃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게 삼성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 상태에 가까워졌다. 중국 등 후발 국가 기업의 추격도 맹렬하다. 관련 기술 역시 상당 부분 평준화됐다. 삼성 스마트폰마저 주저앉으면, 창의적인 발상이 한가한 소리 취급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에게 주어진 시간

다섯 번째는 이 부회장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만 47세인 이 부회장은 아직 삼성 경영권을 온전히 물려받지 않았다. 재산 상속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승계가 최종 마무리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설령 아주 빠르게 이뤄진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이 부회장의 아들이 벌써 고등학생 나이다. 곧 대학생이 될 게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입사한 게 1991년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대학교 4학년이었다. 이 때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1995년, 아버지 이건희 회장에게서 61억 원을 증여받으면서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 그 이후 과정을, 우린 잘 안다. 온갖 불법, 편법 논란이 있었다.

이 부회장의 아들 역시 몇 년 안에 경영 후계자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또 경영권 승계 작업도 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경우를 적용하면, 앞으로 6~10년이 남았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격렬한 비난을 받았던 이 부회장이므로, 더 신중한 준비를 할 게다. 이 부회장의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일은 더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 승계 작업을 더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이 부회장이 오로지 신규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요구한 창의적인 시도가 결실을 맺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삼성의 미래' 역시 야근에 시달린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이유, 여전한 야근 관행이다. '스타트업 삼성' 캠페인의 핵심 요소가 불필요한 야근 줄이기다. 하지만 현장에선 아직 통하지 않는다.

야근과 창의가 양립하기 힘들다는 건 분명하다. 창의적인 시도란, 결국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이다. 야근을 한다는 건, 이미 벌여놓은 일도 감당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을 새로 만들다니. 누구나 야근하는 조직에선 창의적인 사람이 따돌림 당한다.

삼성의 새로운 먹을거리로 흔히 바이오시밀러 산업이 꼽힌다. 생물체에서 유래한 혈액 성분·단백질·세포·유전자 등을 이용해 만든 바이오 의약품을, 복제해서 만든 약이 바이오시밀러다. 삼성에서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하는 계열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다.

삼성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51%를 지닌 최대 주주다. 나머지 지분 전부는 삼성전자가 갖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91.20%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 구성만 봐도, 삼성그룹 수뇌부가 바이오시밀러 산업에 거는 기대를 알 수 있다. 삼성의 미래는 바이오시밀러 계열사가 만들고 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들은 지금 어떻게 일하고 있나.

전, 현직 직원들이 평가 글을 올리는 앱 '잡플래닛'에서 이들 두 회사를 검색했다. 장점과 단점을 쓰게 돼 있는데, 단점은 한결같다. 두 회사 모두 야근이 너무 많다고 한다. 삼성의 미래를 만드는 회사에서 야근이 일상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를 심자는 '스타트업 삼성' 구호에 썩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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