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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네 가지 오류 혹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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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의 네 가지 오류 혹은 착각

[4.13 단상] 20대 총선 결과가 마냥 기쁘지 않은 이유

최소 1석 4조는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영입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가진 경제 민주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파기, 포용력 부재도 드러내준다. '친노 패권' 비판을 불식하며 중도 온건 이미지를 얻을 수도 있다. 대권 다툼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안철수 의원과의 싸움도 대신해 준다. 심지어 공천을 둘러싼 당내 분란에서 한 발 물러나 불필요한 상처를 입지 않을 수도 있다.

안철수 의원 등의 탈당으로 혼란에 빠진 당을 추스르고 선제적인 통합 제안으로 국민의당을 흔들며 후보 공천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당 정치는 마케팅 사업이 아니며, 당 대표 직무도 아웃 소싱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김종인 영입의 오류

민주당이 내세울 만한 정체성은 무엇일까? 햇볕 정책이나 균형 발전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군부 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만큼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큰 자부심을 준 일은 없다. 이 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그 역사적 성취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권위주의 세력의 이데올로그로 활약했던 인사를 당의 자문위원도 국회의원도 아닌 20대 총선을 이끄는 사실상의 대표로 추대했다.

물론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실정을 논하고 안철수 의원의 인물 됨됨이를 평가 절하할 때까지만 해도 당의 정체성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친노 패권'을 희석하는 역할을 넘어 운동권 출신을 비판하고, 햇볕 정책을 부정하고, 자신은 DJ(김대중) 식으로 정치하지 않겠다며 자기 사람들을 비례대표 후보로 임명하니, 이 당은 어떤 정당인지 무엇을 위한 정당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오해

누군가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조언할지 모른다. 어쨌든 그는 경제 민주화의 아이콘 아닌가? 현실적일 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충고처럼 보이지만 여기서만큼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내가 아는 경제 민주화는 이 나라의 번영에 참여한 모든 경제 주체들이 정당한 방식으로 자기 몫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시장 경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독과점과 불평등과 고용 불안의 문제를 사회적 관여로 해결해보자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이런 목표는 경제 민주화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이 단체나 조직을 구성해 자기 요구를 밝히고 정당은 그런 요구를 모으고 조율하며 정책화해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다른 경로는 없다. 분배의 형평이나 복지 국가 실적이 우리보다 나은 모든 나라들은 이 경로를 밟았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근본 권리인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활용했기에 그런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표는 전문가 영입만으로 이 과제를 실현하거나 그에 대한 지지를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종인 위원장도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현재의 노동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 대표인 사람이 대표적인 노동 단체를 방문해 뚜렷한 대안도 없이 "너무 사회적인 문제"에만 집착한다며 나무라는 투로 말해서는 경제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

때론 날선 비판도 필요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다른 대안을 설명해야 했다.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고 대표하며 좀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정당한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하고 모색해야 했다. 민주노총뿐 아니라 다른 집단, 다른 단체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사회 경제적 약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 단체들을 모으고 조직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라야 경제 민주화도 선거를 주도하는 중심 이슈가 되고, 그런 요구가 조직화된 표로 드러날 때라야 당선된 누구도 쉽게 그 이슈를 거스르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은 전문가의 경험과 지식과 이미지만으로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을 비판하며 경제 민주화를 이슈화하해 표를 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 어떤 정책도 공약도 주목받지 못했다. 홍수 같은 여론 조사 속에 심판과 단일화와 개헌선 저지를 둘러싼 공포의 동원, 윽박지름만 난무하는 선거가 되었다.

호남 홀대론 반박의 오류

그렇게 치러지던 선거 후반에 들어 호남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지지가 기대만큼 높지 않았던 것이다. 다급해진 김종인 위원장은 광주에 삼성 미래 자동차 공장 유치를 공약했고,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 패배 시 정계 은퇴와 대선 불출마라는 강수를 뒀다. 그럼에도 호남 유권자 다수는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 후보에 지지를 보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문 전 대표는 그리 오래 머물지도 않았던 호남 유세에서 국민의당 인사들이 퍼뜨린 호남 홀대론을 반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여기서도 문재인 전 대표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호남 홀대론이 사실과 다름을 반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호남인 다수가 국민의당을 지지했다면 그들은 문 전 대표가 말하는 잘못된 프레임에 넘어가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호남의 지역 정서는 물질적 혜택의 지역 배분을 둘러싼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호남인들은 권위주의 시기 고위직 인사와 지역 개발 예산뿐 아니라 이념적으로도 '의심스러운' 사람들로 사회적 배제를 당했다. 게다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며 광주를 중심으로 민주화가 지역 정체성의 중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지역 정서를 가진 사람들 다수가 호남 홀대로 국민의당을 선택했을까? 그것 말고도 민주당을 지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많아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권위주의 시대 국보위 출신 인사가 당 대표를 맡고, 그 사람이 당내 민주화 운동 세력을 폄하하며 자신은 DJ 식으로 정치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 실제 공천은 지역 기반도, 지역 활동도 미미한 사람들을 위로부터 내려 꽂듯이 하면 호남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노릇이다.

그래도 다른 대안이 현재의 집권 여당이라면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호남인들에게는 DJ와 함께 했던 익숙한 얼굴들이 다른 어디보다 자기 지역에 물심양면으로 공을 들이며 집권 여당에 맞서겠다는 또 다른 야당이 있었다.

지역주의 이해의 오류

문재인 전 대표는 선거 다음날 "전국 정당에 감격"하면서도 "호남 패배는 아주 아프다"는 소감을 밝혔다. 호남 패배와 전국 정당이 어떻게 양립 가능한지도 궁금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전국 정당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감격스러운지는 더 더욱 궁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표가 넘어서고자 했던 지역주의는 이번 총선을 보면 사실 그렇게 대단한 난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대구든 부산이든 연륜이나 역량 있는 후보가 그 지역에서 몇 차례 패배를 경험하며 오랜 시간 동안 지역민과 호흡하고 지지 기반을 닦고, 여기에 더해 상대 정당의 대통령과 대표와 후보가 나란히 실정에 독선에 분란에 안주를 거듭하면 영남에서도 얼마든지 야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 20대 총선이다.

물론 지역 1당 체제에서 야당 후보로 나서는 것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선자들의 노고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궁금한 점은 그렇게 전국 정당이 만들어지고 나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보통 사람들의 실제 삶을 다루는 정책으로 경쟁하게 되는 것일까? 서구처럼 진보와 보수가 건강한 경쟁 관계를 이루는 정치로 들어서는 것일까? 이제 정당 정치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나로서는 그렇게 문제라는 친노 패권도 민주당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자기 대의를 뚜렷하게 밝힌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그렇게 문제라는 지역주의도 지역을 가르는 보편적인 사회 경제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만 하면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의 어떤 정당도 그렇게 쉽게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렇게 쉽게 자기 대의를 실현한 경우는 없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왜 문재인만 문제 삼느냐고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박근혜나 안철수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뜻일 테다. 동의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는 이번 총선을 통해 분명히 확인되었고, 안철수 의원이 누리는 잠시 동안의 승리는 문 전 대표의 오류에서 비롯된 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로서는 내년 대선을 위해서나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나 문재인의 오류가 더 크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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