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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은 '동상 종합 선물세트장'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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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은 '동상 종합 선물세트장' 같다?

[작은책] 손바닥만 한 남산, 찬찬히 살펴보면…

남산은 인도 이야기 정리할 짬을 벌려고 막간 역사기행으로 시작했다. 묘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몇 차례 거푸 가게 되었다. "높지도 않은 남산을 종일 돌아볼 곳이 있어요?" 하거나, "손바닥만 한 남산에 두 번이나 연재할 거리가 있어요?" 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깊게 팬 손금이나 희미한 지문이 새삼스럽다. 잔주름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손등도 뒤집어 찬찬히 살펴보았다. 많이 쭈글쭈글해졌다. 자세히 보니까 희미해진 상흔(흉터)도 보인다. 흔적 하나하나에 깃든 사연들을 떠올려 본다. 손바닥만 한 남산에도 갈피갈피에 많은 역사가 숨겨져 있다. 특히 내 관심을 끈 것은 역사 조형물이었다. 남산은 위인 동상을 집결해 놓은 종합 선물세트장 같은 곳이다.

1964년에 신축한 남산도서관 앞에는 1969년과 1970년에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에서 세운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동상이 있다. 조선 시대 유명한 학자들을 본받아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도서관 가까이 세웠을 것이다. 퇴계 이황 동상은 1956년 3월 탑골공원의 이승만 동상 제작자 문정자가 만들었다.

▲ 소월시비. ⓒ박준성

남산도서관 옆에 1968년 4월 13일 한국일보사에서 한국신시 60년을 기념해서 세운 '소월 시비'가 있다. 소월이 사립 '남산학교'를 다녀서 남산 자락에 소월 시비를 세웠다는 안내서도 있다. '남산보통학교'는 서울 남산이 아니라 소월이 어린 시절을 보낸 평안북도 곽산군에 있었다. 왜 남산에 소월 시비를 세웠는지 궁금하다.

소월 시비에 새긴 '산유화'를 낭송해 보고 포장된 길을 따라 N서울타워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중간에 오른쪽 '남산둘레길(야외식물원쉼터)'을 알려 주는 표지판이 있다. 비포장 샛길들을 연결시켜 둘레길로 이어 놓은 곳이다. 야외식물원은 둘레길을 벗어나 있다. 꼭 둘레길만 밟겠다고 작심한 것이 아니라면, 야외식물원에 들러 철 따라 다양한 식물을 관찰하고 피어나는 꽃들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야외식물원을 지나 오솔길이 끝나는 곳이 포장된 남부순환도로이다. 국립극장 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난 성곽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남산 꼭대기로 갈 수 있다. 250미터(m) 나무 계단 경사가 급하다. 내가 안내하는 남산 역사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대가로 서울 성곽의 자연스러운 돌 맛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중간 중간 판판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성벽은 숙종 연간 이후 어느 때 다시 쌓은 것이다. 커다란 바윗돌을 그대로 활용한 성벽도 있어 보기 좋다. 나무 계단이 끝나고 성벽을 넘는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올라온 길 쪽을 뒤돌아보면 옛 '장충단'의 넓은 영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내려가면서 살펴볼 역사 유적들이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 조망하기 딱 좋은 곳이다.

▲ 서울 성곽 탐방로. ⓒ박준성

전망대 위쪽으로는 더 이상 성벽을 따라갈 수 없다. 미군 AFKN 방송탑이 있기 때문이다. N서울타워 쪽으로 바로 난 길을 따라가면 남부순환도로에서 올라오는 포장도로와 만나게 된다. 관광객을 태우고 온 버스가 늘어서 있다. 복작거리는 관광객 태반은 중국인들 같다. 순환버스도 수시로 손님을 내려놓고 돌아간다.

'N서울타워'에서 N은 'New Nam San'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다. 1969년에 동양, 동아, 문화 3개 민영방송사의 종합전파탑 겸 관광전망대 건설을 허가받고 6년 동안 공사 끝에 1975년에 완성한 것이다. 준공 3개월 뒤에 체신부(現 우정사업본부)로 넘어갔다. 2000년에 YTN이 인수해 전면 개수 공사를 한 뒤, 2005년에 N서울타워로 개장하였다. 탑신이 135.7m, 철탑이 101m로 해발 265m의 남산에 높이 236.7m를 보탰다. 하늘과 연결하는 통로인 솟대나 당산나무도 산꼭대기에 두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근대를 상징하듯 높은 탑이 하늘을 찌르며 남산의 자연스러운 선을 파괴하고 있다.

N서울타워 둘레와 봉수대 뒤쪽 철책에는 사랑의 언약을 담은 색색의 자물쇠들이 매달려 탑을 이루고 있다. 언제부터 만들어진 풍습인지 모르겠다. 내 눈에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가 사라진 시대의 풍속도로 보였다. 자물쇠에 써 놓은 수많은 사랑의 약속들을 읽으면서도 가슴이 아렸다. 약속을 지키기도, 혼인을 하기도, 아이를 낳기도 힘든 세상인데 자물쇠가 무슨 힘이 되랴 싶다. 옆에서 누군지 엄마와 같이 온 딸이 "엄마도 하나 써서 걸어 봐" 한다. "인생 어찌 될지 모르는데 왜 일부러 족쇄를 더 만드니, 난 싫다야…" 하는 말이 귓가를 스쳤다.

▲ 남산 자물쇠 사랑탑. ⓒ박준성

남산 꼭대기에는 조선 태조가 목멱대왕신을 모시고 나라의 평안을 빌려고 세운 국사당이 있었다. 뒤에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도 함께 모셨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 세력이 남산 자락에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머리 꼭대기에 조선의 신을 모시는 사당을 둘 수 없다고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옮겼다. 1959년 11월 18일, 국사당 자리에 이승만의 호를 따서 만든 '우남정'이라는 팔각정이 세워졌다. 하늘을 뜻하는 '천'은 둥글고 땅을 뜻하는 '방'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정사각형의 네 귀퉁이를 같은 길이로 잘라내면 팔각형이 된다. 팔각은 원과 네모의 중간에 속한다. 그래서 팔각정은 땅의 인간들이 하늘의 신에게 소원을 빌고, 하늘의 뜻을 땅에서 받아들이는 통로이자 성스러운 공간이다. 기둥을 장식한 구름 문양 날개도 하늘을 상징한다. '우남정'은 살아 있는 이승만을 신격화하려고 만든 건물이었다. '4월혁명' 이후 우남정은 헐렸고, 지금 팔각정은 1968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팔각정 옆 한 귀퉁이에 국사당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건너편에는 전국의 봉수를 집결하던 목멱산 봉수대가 있다. 남산에는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5개가 있었다. 지금 있는 봉수대는 1993년에 5개 가운데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 목멱산 봉수대. ⓒ박준성

케이블카 승강장 옆을 지나 '잠두봉포토아일랜드'를 거쳐 옛 조선신궁-식물원 터를 지나면 다시 안중근 동상과 만나게 된다.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 건물 옆 '삼순이 계단'을 내려가 남산 북부순환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깔끔한 비빔밥이나 국밥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목멱산방', 조지훈 시비, 제갈량을 주신으로 모신 와룡묘, 조선 인조 때 세운 활터 석호정을 만나게 된다. 남산 북부순환도로는 큰 오르막 내리막이 없고 차가 다니지 않아 걷기에 편하다.

▲ 유관순 동상. ⓒ박준성
국립극장에서부터 장충단공원 입구 쪽으로 내려가면서 큰길 왼편에는 3·1운동기념탑, 유관순 동상, 순국열사이한응선생기념비, 이준 동상, 파리장서비, 사명대사 동상, 장충단비가 있다. 길 건너편에는 옛 남산타워호텔의 이름을 바꾼 반얀트리호텔, 자유센터와 이승만 동상,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한다고 지었던 박문사 자리의 신라호텔, 장충체육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유관순 동상과 이승만 동상은 '반일 민족주의'와 '반공 국가주의'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역사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유관순 동상은 1970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에서 남대문 쪽에 세웠다가 1971년 지금 자리로 옮긴 것이다. 1968년 세종로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든 김세중이 유관순 동상도 만들었다. 한국자유총연맹에서 2011년에 8월에 자유센터에 세운 이승만 동상 제작자는 홍익대 미대 학장을 지낸 김영원이다. 2009년에는 광화문 앞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만들었고, 2011년 11월에는 구미 상모리에 박정희 동상도 만들었다. 최근 2016년 3월 11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세운 박정희 동상도 그가 만들었다. 1955년에 남한산성의 이승만 송수탑과 1956년 남산에 이승만 동상을 만들어 1950년대 미술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윤효중, 맥아더 동상과 4월학생혁명기념탑을 만들고 박정희 정권 때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에서 중심 역할을 했던 김경승의 계보를 잇는 2000년대의 동상 제작자를 꼽으라면 단연 김영원이다. 하지만 동상의 시대가 끝난 때 만들어진 동상들은 보기에 민망하다.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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