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절반은 여성이다. 유권자의 절반도 여성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치의 계절'이 되면 여성은? 사라진다.
여성이 대통령인 나라에서도 법으로 정해진 여성 할당제는 지켜지지 않고, 심지어 어느 당은 여성 몫의 비례대표 후보 홀수 자리에 남성을 배치하고도 '당당'하다. 어느 후보의 딸이 얼마나 예쁜지가 화제가 될 뿐이다. '앞으로 정치 하려면 예쁜 딸은 필수'라는 농담의 절반은 진실일지 모른다.
이슈에서는 더 그렇다. 누가 '여성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인지에 대한 논란은 뜨거워도, 결혼과 출산·육아라는 여성의 '몫'에 대한 논쟁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누구도 진짜 여성의 고민을 듣고 말하지 않는다.
<프레시안>이 4.13 총선을 앞두고 무서운 언니들을 한 자리에 모신 이유다. 여성 가운데서도 취업과 결혼, 출산과 육아라는 인생의 격변기에 놓여져 있는 2030 여성 8명이 삶과 정치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 과격하고, 때로 진지하고, 때로 한숨이 깊었던 '처음 만난' 이들의 대화를 통해, 이 시대 여성이 체험하고 있는 '헬조선'의 실상과 그와 괴리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일, 4시간 넘도록 진행된 방담을 총 4회에 걸쳐 싣는다.
△ 송혜교 : 29살.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다. 조카가 두 명 있다.△ 최화정 : 32살. 연구직이다. 쓸데없이 가방 끈이 길다. 올해 가을에 결혼 예정이다.△ 전지현 : 31살. 사무직이다. 결혼 안 했고, 아직 예정도 없다.△ 김연아 : 36살. 16개월 아들이 있다. 결혼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최근에 직장을 구해 '워킹맘'이 됐다.△ 김태희 : 27살. 제품 디자이너다. 직업 특성상 주변에 여성이 많다. 정규직으로 일하다, 지금 회사로 옮기면서 계약직이 됐다.△ 황정음 : 34살. 서울의 한 대학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40개월이 된 딸이 있다. 일 때문에 다소 늦게 참석했다.그 외에 프레시안 여성 기자 2명이 참여했다. 30세 싱글의 '프레시안 기자 1'와 36세로 34개월 아이를 둔 '프레시안 기자2'가 방담에 함께 했다.
"여성에게 결혼? 내전으로 여행 금지된 국가로 여행 가는 '미친 짓'"
최화정 : 가을에 결혼을 앞두고 있어요. 결혼 결정을 하고 카톡에 '찬란한 차선책'이라고 썼거든요. 제 생각에 결혼은 최선도 최상도 아니기 때문이예요. 원래 저는 비혼주의자였어요. 그런데 여성으로 살면서 자녀도 낳아보고 싶고, 자녀를 같이 키우고 싶은 사람도 만났어요. 지금 이 친구와 우정도 깊고, 남녀 간의 애정도 있고, 서로 가족도 챙겨주고 싶고 긴밀하게 지지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제도적 껍데기가 우리 나라에서는 결혼 밖에 없더라구요. 여러 대안을 생각해 봤는데, 결혼 말고는 다른 선택은 너무 많은 문제가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결혼이라는 만능열쇠를 가지기에는 불합리한 것들이 섞여 있는 패키지예요. 한국에서의 결혼 제도가 하나부터 열까지 불합리하죠. 다 아는데, 알면서도 그 '헬 게이트'를 열고 들어간다는 게 참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내전으로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된 리비아에, 그걸 알면서도 가는 건 미친 짓 아닌가요?
프레시안 : 결혼이 그런 건가요?
최화정 : 그런 거죠. 그래서 스스로 힘들었어요. 어찌 보면, 결혼 결정은 스스로 자기 기만의 과정이었죠.
송혜교 : 결혼 안 하고 둘이 살면 되잖아요.
최화정 : 할 수는 있겠지만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고, 동거 선택 이후에도 하나하나 헤쳐 나가야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전지현 : 결혼의 가장 큰 불합리함이 뭐예요?
최화정 : 결혼 전까지는 제 인생이 '오지 선다형'이었다면, 결혼 후에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 줄어 버리는 거죠. 결혼하면 '양자택일'이 되요.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가서 4~5개월 동안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있어도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죠.
전지현 : 그건 꼭 결혼과 관계없이 아이 있으면 못 가는 거 아닌가요?
최화정 : 아이가 없어도, 결혼을 일단 하면 제 거취를 혼자 결정할 수가 없죠.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제 자발성의 범위를 스스로 좁히게 되는 거죠. 아이가 생기면 물론 더 줄어들겠죠. 여자 선배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하고 싶은 연구 주제가 엄청 많았는데, 결혼하면 반으로 줄고, 아이가 태어나면 또 반으로 줄어 든다"고 그래요. 결혼이라는 것 안에 너무 많은 전제들이 따라 붙는 거예요.
전지현 : 결혼 자체의 불합리함이라기보다는,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새로운 선택 아닌가요? 아이도 낳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건 불가능하니까요.
프레시안 : 꼭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가면 신경 써야할 일은 좀 많죠. 동거하면 안 챙겨도 되는 시댁도 챙겨야하고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그게 의무가 되면 싫을 수 있죠.
김연아 : 제 지인 중에 둘 다 공부를 하는 커플이 있어요. 같이 공부하는 건 남편과는 합의가 다 됐어요. 그런데 시댁에서 반대하더라구요. 두 사람이 합의를 하고 결혼을 했고, 사실 독립된 가정인데, 왜 부인이 공부하는 걸 시댁에서 허락을 받아야 할까요? 아직 한국사회가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특수성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것과 싸우려면 엄청난 가정의 불화가 생기죠. 그런 점에서 여성은 결혼 이후의 삶이 협소해지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결혼이 좋은 점도 분명히 있죠. 그래도 저는 갈등이 되는 지점이 좋은 게 있다고 내가 싫은 건 다 양보해야 하나? 그건 싫거든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아직 제도적으로 여성들한테 무조건 받아들이라고만 하죠.
송혜교 : 싸우든 어쩌든 그 상황을 넘어서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맞추게 되는 것 같아요, 여자가.
김연아 :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렇게 되는 경향이 아무래도 있죠.
프레시안 : 여성에게 좀 더 불리한 제도인 건 맞죠. 한 가지 장면만 놓고 보면, 사위가 장모에게 매일 전화 안 한다고 뭐라 하는 장모는 거의 없죠. 그런데 며느리가 연락 자주 안 하면 서운해하는 시어머니는 있죠.
송혜교 : 서운해 하시게 그냥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전지현 :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지겠죠. (일동 웃음)
송혜교 : 비슷한 문제로 제가 화가 났던 적이 있어요. 제가 한동안 '롱디'를 했거든요. 근데 저는 원래 남친 생기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 가족들을 부담 없이 만나요. 큰 의미를 두지 않고요. 그 친구도 그랬어요. 그 친구가 외국에 있는 동안 개인적으로 그쪽 부모님에게 연락도 했고요. 외로우실까봐, 가끔 만나 같이 밥도 먹었어요. 그런 관계가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의무처럼 되더라고요. 남친 어머니 생신 날 어머니가 그러셨대요. "왜 혜교는 내 생일인데 연락도 안 하니"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왜 연락을 해야 돼?" 화가 좀 나더라고요.
모두 : 이미 며느리네!
송혜교 : 그 이후에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던 연락을 끊었어요.
김태희 : 그건 반대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게 여성에게만 일반화 돼 있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거 아닌가 싶어서요.
송혜교 : 그럴 수도 있죠. 제가 '이거 시월드 아냐?'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확 부담감을 더 느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남친은 우리 엄마한테 연락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는데,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일지도 몰라요. 한국 사회에서 자라서 그런 거겠지만요.
"내 부모님도 귀찮은데 왜 남의 부모님까지…둘 다 불효자여야 결혼하고 잘 살더라"
최화정 : 결혼 앞두고 양쪽 집에 인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건데요. 며느리는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이고, 사위는 잘할수록 그게 쌓이더라고요. 그래서 "사위가 잘 한다"며 칭찬을 받죠.
김태희 : 다 개별적으로 차이가 있는 거 아닌가요? 각각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프레시안 : 남성과 여성이 느끼는 부담감 차이는 있을 수 있죠. 결혼한 후에나, 결혼 전에도요.
김태희 : 그건 아들이 자기 부모님한테 하는 거랑, 딸이 자기 부모님한테 하는 거랑 원래도 다르잖아요.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감성적이니까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도 다르죠.
송혜교 : 우리는 모두 이 땅에 발붙이고 살잖아요.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고, 이 환경 속에 사는 사람이구요. 그런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체화돼 있는 상태에서, (며느리는 더 잘해야지) 같은 공격이 들어오면, 확 (시월드구나!) 인식하게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김태희 : 그러니까 딸이 아들보다 더 애교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시어머니도 그런 건 아닐까요?
김연아 : 그렇지만 내가 그 시어머니 딸은 아니잖아요. 내 부모님은 아니죠.
김태희 : 가족이 되기로 약속한 거잖아요.
최화정 : 가족이 되기로 하면, 그쪽 집에서 딸이 하던 역할을 나에게도 기대하는데, 재밌는 건 있어요. 내 부모님은 자기 아들이 하던 역할을 사위한테 기대하지 않거든요. 며느리에게는 더 많은 책임을 부과하지만, 사위한테는 감히 그렇지 않죠.
전지현 : 사실 다양한 케이스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는 사위에게 장모가 너무 기대하고 의지해서 부부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는 것도 본 적 있어요.
프레시안 : 처가가 경제적으로 엄청 도움을 많이 준 건 아닌데도?
전지현 : 그것도 아니었어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케이스죠. 사실 주변을 보면, 대체로 둘 다 불효자식이면 잘 살아요. '나는 결혼으로 독립했어, 이건 내 가정이야, 엄마 아빠는 알아서 잘 사세요, 우리는 우리끼리 잘 살게요' 이러면 잘 살아. 혹은 아예 두 사람 모두 '부모님의 아바타'가 되는 걸 동의 하거나요. 그래도 '트러블'이 없죠. 문제는 한 쪽이 그렇고, 한 쪽이 아닐 때죠. 거기서 문제가 생겨요. 그런 가정을 보면, 저렇게 사느니 안 살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결혼을…. 내 부모도 불편하고 귀찮은데, 왜 남의 부모님까지…. (일동 웃음)
프레시안 : 그래서 전지현 님은 결혼 안 하실 거예요?
전지현 : 진짜 그 사람이 좋으면 할 수도 있죠.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엇, 효자 같네' 그러면 그 사람 자체가 좋아지질 않아. (일동 폭소)
프레시안 : 연애할 때 효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불효자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효자가 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전지현 : 그래서 불효가 신념인 사람을 만나야죠. 신념이냐 아니냐가 중요해요. 귀찮아서 신경 안 쓰던 사람은 결혼하면 꼭 효자가 되더라고.(웃음) 주변에 그런 커플 있거든요. 결혼할 때 인사 시키러 데려가면서도 "부모님께 소개 시키는 것이지,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다"라고 딱 자르고, 결혼하고 나서도 "내 부인이지 당신들의 며느리가 아니다"라며 알아서 자르고….
송혜교 : 그런 남자 멋있다!
최화정 : 그런데 그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 같은데? 보통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도움도 받고, 결혼을 한다해도 완전히 독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쉽지 않죠.
전지현 : 부모님한테 경제적 도움을 받았으면, "우린 아바타다" 모드로 가야지. (일동 웃음)
김태희 : 궁금한 거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엄마가 저한테 개입하는 걸 막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결혼하면 엄마가 우리 남편한테도 그럴 것 같은데, 그걸 내가 막을 수가 없는 거죠.
모두 : 왜 못 막아! 막아야지! (일동 웃음)
김태희 : 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면도 있잖아요. 엄마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으니까.
김연아 : 꼭 정색하지 않고도 막을 수 있어요. 내가 말을 다 안 전해주면 되고, 엄마가 세게 나올 때 분위기 살짝 바꿔서 딴 얘기로 돌려주고.
최화정 : 둘이 모드 전환이 같이 돼야 한다는 아까 얘기에 완전 공감했어요. 남자친구는 고등학교 이후로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했어요. 저는 아직도 부모님이랑 같이 살고, 경제적으로도 의지하고 그러니까 부모님 말 한 마디에 너무 휘둘리는 거예요. 제가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는데, 시댁에서도 그럴까봐 남친은 되게 걱정해요. 근데 저는 한편으로 이 사람이 저 땜에 욕 먹는 건 싫거든요. "쟤, 결혼하더니 집에 잘 한다"는 얘기 듣게 해야 하나?
모두 : 그런 생각을 버려요!
최화정 : 우리 부모님조차 아들 결혼 전후 아들에 대한 모드가 바뀌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부모님한테 완전 무심했던 오빠들인데 "이제 결혼했으니 잘 할 거야" 기대하더라고요.
"아이 낳은 여성은 피폐해지는데, 아이 생긴 남자의 일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더라"
프레시안 : 20대 두 분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 좀 어떠세요?
송혜교 : 어릴 때는 26세 정도 되면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사실 남자친구를 새로 사귀면 3일만 되도 아무렇지도 않게 "너 나랑 결혼할래?" 물어보고 집에도 데려가고 그랬어요. 점점 사귀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이가 깊어지면 오히려 좀 약간 떨어트려 놓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남친도 4년 정도 사귀었거든요. 얘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결혼하자!"고 제가 먼저 막 그랬어요. 그 다음에는 정식 혼인관계로 가지 말고, 생활동반자법이 생길 때까지 동거를 해보자고 그랬어요. 근데 결혼을 안 하면, 여러 제도를 이용할 수가 없더라고요. 대출도 그렇고요.
사실 친언니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환경이나 모습을 보면,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까 싶어요.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굉장히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과거에는 마을 공동체도 살아있고, 대가족 체제고 그러니 가능했지만, 지금은 핵가족인데 사회적으로 갖춰진 건 하나도 없죠. 어린이집을 보내려고 해도 대기번호가 길고, 보통 일이 아니던데요?
김태희 : 저는 너무 생각이 없나 봐요. 저는 결혼이 너무 하고 싶거든요.
모두 : 아직 어려서 그럴 수도 있어요. (일동 웃음)
김태희 : 그런데 저는 오히려 결혼한 사람들 보면서 더 하고 싶었어요. 직장 동료 대부분이 여성인데, 결혼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안정적으로 보여요. 일도 더 잘 하는 것 같고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성적이지 않은 관계'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게 너무 좋아요. 부모-자식이 그렇잖아요. 계산하고 따지지 않는 관계요. 남편이 생기면, 그런 관계가 하나 더 생기는 거잖아요. 저도 남친을 5년 사귀었는데, 그쪽 부모님을 한 번 만난 적 있는데 너무 예뻐해 주니까. 물론, 결혼 전이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요.
모두 : 아냐, 진짜 좋은 분일 수도 있죠.
김태희 : 사실 출산이나 육아는 걱정이 많이 되긴 해요. 등하원 도우미가 얼마다, 그런 얘기 들으면 걱정이 되죠. 그런데 아이 키우는 언니들 보면, 다 떠나서 행복해 보이거든요. 제 주변에서 '아이 낳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전지현 : 저도 결혼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다양하게 사는 케이스들을 보면, 워킹맘의 삶이 피폐하긴 하지만 또 다 그러고 살더라고요. 다 힘들어 하고, 친정 엄마한테 민폐기도 하고, 그래도 다 그러고 살더라고요. 그래도 사실 제일 좋아 보이는 건, 결혼은 했는데 아이는 없는 커플이에요. 그 케이스가 가장 잘 사는 것 같아요.
송혜교 : 저는 엄마나 시어머니가 제 애를 맡아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 싫어요. 그게 너무 싫어서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 생각할 때가 있어요.
최화정 : 여자들이 겪는 육아의 어려움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고 나서는, 내가 그 구조에 꼭 들어가야 하나 생각을 하게 되죠.
프레시안 :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결혼은 아무랑 해도 되지만, 그 사람의 아이를 낳을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봐라"고요. 아이가 생기면 여성의 삶이 질적으로 달라지죠.
김태희 :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잘 도와주는 남편을 만나야지.
송혜교 : '도와주면' 안 되죠. 자기 일이어야 해요.
김태희 : 내 남편만 안 그러면 되지 싶은 거죠. 육아는 남편이 같이 해야죠.
전지현 : 어릴 때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도 실제로 내가 여성이어서 느끼는 차별이나 불합리함 같은 걸 피부로 느끼지는 못 했던 것 같아요. 졸업하고 난 취직도 했고, 불이익을 딱히 받은 것도 없고. 그런데 서른이 되고, 주변에서 '쫘악~' 아이를 낳고 나니까 '아, 내가 스무 살 때 들었던 여성의 삶이 이런 거였구나' 싶어요.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을 오랫동안 잊고 살다가 요즘 다시 깨닫고 있어요.
아이가 생기면 여성의 삶이 확 변하더라고요. 나름의 행복은 있겠지만, 피폐해 보여요. 그것도 여자만!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나면, 어디서든 아이 얘기만 해요. 그런데 남자는 안 그렇죠. 아이 얘기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닌데요. 왜 남자는 아이가 생겨도 인생에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이 보이는데, 여자만 달라질까?
김연아 : 애기가 아프거나,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상담을 오라고 하면 다 엄마들 몫이죠. 아빠들은 그런 책임은 지지 않아요. 애초에 잘 모르기도 하고, 혹시 '당신이 갈 수 있냐' 물어봐도 안 된다고 하죠. 회사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송혜교 : 비슷한 이유로 형부한테 엄청 화났던 적이 있었어요. 아이가 아파서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녔는데, 형부는 절대 휴가를 안 내더라고요. 저희 엄마나 아빠가 가거나, 아니면 제가 일을 하는데도 제가 오히려 휴가 내고 따라 갔어요. 그리고 본인은 다른 날 휴가 내고 쉬더라고.
"'반짝 반짝' 빛나던 여자 애 낳고 사라지고…'쉬었으면 좋겠는' 남자만 남더라"
사실 100대 기업쯤 되어야 아이 낳고 휴직하고 돌아가지, 아닌 기업은 못 돌아가거든요. 서른 둘셋쯤 되어 친구들을 보니까, 아이가 생기면 여성의 인생이 단순해진다는 말이 와 닿더라고요. 저는 연구직이잖아요. 연구직은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지 않거든요. 퇴근한 후에도 내 연구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해야 다른 사람보다 비교 우위에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 그 집중도가 확 뒤처지더라고요. 내 신경의 상당 부분을 다른 존재에게 쓰고 있으니, 일에 쓸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죠.
엄청 똑똑하고 연구도 잘 하던, '반짝 반짝'하던 여자 선배들은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면 어느 순간 사라져버려요.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남자 선배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너무 잘 나가죠. 비슷한 박사 연차 중 남아 있는 건 남자밖에 없는 거예요.
전지현 : 그런데 또 남자가 저한테 '네가 일해, 내가 애 볼게' 그런다고 생각하면 그건 또 싫은 거예요. 내 스스로가 그건 싫어.
김태희 : 저희 집은 아빠가 가사 일을 많이 하시거든요. 심지어 엄마가 셋째 딸인데도 아빠가 장모님을 모시고 살구요. 밥은 엄마가 하지만, 청소도 아빠가 다 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가장에 대한 불쌍함 같은 게 있어요. 회사에 남자 선임이 있는데, 가장이라는 부담을 엄청 크게 느끼더라고요. 부인이 몸이 안 좋다고 쉬고 싶다고 그러나봐요. 여자는 일을 안 할 수도 있지만, 남자는 무조건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다들.
모두 : 맞아, 남자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야.
송혜교 : 사실 주변에 제발 쉬었으면 좋겠는 무능력한 남자도 있는데! (일동 웃음)
최화정 : 그 일자리를 여자한테 주고 본인은 살림을 해야 돼!
전지현 : 어릴 때는 여자가 어떻게 집안 일만 해, 나가서 자기 일을 해야지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이 드니까 '아, 회사 다니기 싫어. 집에서 애 키우고 싶어'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실 회사가 자아실현의 장소가 아니잖아요. 말 그대로 돈 벌려고 다니는 거지. 회사 안 다녀도 안 굶을 수 있다면, 안 다닐래!
최화정 : 거꾸로 집에 있다고 노는 건 아니잖아요. 가사노동도 엄청난 가치가 있죠. 집에서 일 하냐, 회사에서 일 하냐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좋은데…. 보통 여자는 집에서도 일하고 밖에서도 일해야 하니까, 이중 노동이죠.
프레시안 : 요즘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 일 그만두는 거 진짜로 안 좋아한다던데요? 요즘 여자들은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죠. 자아실현 때문이 아니라, 한 명이 벌어서는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드니까.
김태희 : 그래서 엄청 눈치 보더라고요. 아내가 아프다고 그러니까 출근길에 모셔다 드리고, 퇴근할 때 또 모시러 가고. 남자들도 못할 짓이긴 해요. (일동 웃음)
전지현 : 어릴 때는 '왜 여자가 애 낳고 일을 그만둬야해' 이게 너무 억울했는데, 요즘은 왜 여자는 애도 낳고 일도 해야 해? 이게 너무 억울해! 둘 중에 하나만 시키지.
모두 : 맞아, 맞아! (웃음)
최화정 : 아이를 키우는데 있는데 돈 뿐만 아니라 많은 자원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만약 선진국처럼 그 필요한 자원의 상당 부분을 사회가 부담해주면,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가정 내에서 부담해야 하는 몫이 줄어들죠. 그럼 한 사람은 가사 노동만 해도 되는 거잖아요. 우리 사회는 한 아이가 자라는 데 필요한 가치를 굉장히 과소 평가하고 있어요.
송혜교 : 국회의원 나부랭이가 여자는 집에서 애나 키우고 있으라고 헛소리나 하고 말이야!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모두 : 그래 맞아, 맞아!
2회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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