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핵폭탄을 삼키게 할 수 없다
아침부터 엄마들이 꼬막 봉투를 들고 모였다. '차일드세이브' 엄마들이 시장 몇 곳을 돌아다니며 꼬막 20킬로그램(㎏)을 샀다. 꼬막 방사능 검사 시료를 준비하는 날이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사무실 바닥에 꼬막을 펼쳐놓고 엄마들이 둘러앉았다.
차일드세이브 대표 최경숙(43세) 님은 최근 한 해 500톤(t) 넘게 일본산 꼬막을 수입하는데 정작 시장에서는 '일본산'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원산지를 밝히지 않거나 속이고 있다는 의심이 가는 거죠. 우리나라는 원산지가 복수인 식품에 '수입산'이라고만 표기해도 되거든요. 소비자들은 절대 원산지를 알 수 없어요."
지난해 일본산 꼬막을 수입해 갯벌 흙을 묻혀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산 수산물은 국산 3분의 1 값이니까 수입업자들이 어떻게든 일본산을 들여와 원산지를 감출 방법을 찾는 것이다.
"벌교 꼬막은 현지에서 소비하기에도 부족한 양이라 하더라고요. 시중에 쏟아지는 물량은 모두 수입이라고 봐야 하는 거죠."
꼬막 철이 지나기 전에 꼬막 방사능 검사를 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시장 5군데 돌아서 꼬막을 샀는데, 한 곳 가격이 너무 싸더라고요. 국산이라고 하지만 일본산이라는 의심이 들었어요."
차일드세이브 엄마들은 후쿠시마 사고 뒤 정보 교환 차원에서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모이기 시작했다. 정보는 많지만 실제 손에 잡히는 자료가 부족하고, 방사능 검사에 한계도 많았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를 차일드세이브를 포함해 생협과 환경단체 7곳이 모여 만들었다.
"함께 출자해서 방사능 검사 기계를 사는 데만 1년 걸렸어요. 우리가 궁금해하던 것들, 가정에서 많이 쓰는 오징어, 멸치를 비롯해 원하는 것은 다 검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함께 지난 3년 동안 '국민 다소비 수산물'을 조사해왔다. 올 6월쯤 3년 동안 쌓인 자료를 정리해 소책자도 만들고, 웹을 통해 알리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소금과 젓갈은 해마다 3년째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어요. 경향성을 보려고 같은 상표 젓갈과 같은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같은 조건에서 5가지씩 검사하고 있어요. 방사능이 나오든 안 나오든 자료를 축적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봐요."
기준치 아래 방사능도 축적되면 위험하고, 기준치라는 것이 안전을 보장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사고 뒤 기준치를 더 높인 상태다. 민간 감시활동을 엄마들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가능한 일이 있다.
"생활에서 필요한 부분을 세밀하게 접근하는 생활밀착형이지요. 엄마 감수성으로 훨씬 세밀한 것을 찾을 수 있어요. 정부는 잊힐 거라고 믿고 있지만, 엄마는 자식과 관련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엄마들 연대의식이 남자들과 다른 감성이 있어요."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려먹일 수 있지만 급식은 엄마 손에서 벗어나 있다. 차일드세이브가 지속해서 급식문제에 매달리는 이유이다.
"서울시가 기준치를 20베크렐(Bq)로 낮췄다고 하지만, 적은 양도 아이들에게는 위험하잖아요. 급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해요. 영양교사가 방사능 관련 교육을 한 번만 받아도 달라지거든요. 어린이집과 보육센터 담당자들을 교육하면 방사능에 대해 인식이 달라지고 대안을 함께 찾더라고요."
얼마 전 일본에서 어린아이들을 동원해 '가자미 먹기 대회'를 했단다. 후쿠시마 앞바다 조업이 풀리면서 '누가 뼈까지 먹나' 대회를 열었다. 일본 정부는 '아이들도 먹으니까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잔인하지 않아요? 가자미와 같이 바닥에 붙어사는 것들이 방사능 농도가 높아요. 사실 가자미로 검사하려고 했는데 많이 나오는 철이 아니라 검사 일정과 맞지 않아 꼬막으로 바꿨어요. 가자미도 따로 검사할 계획입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30년 시간이 흐른 체르노빌 사고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정화 단계라고 말하는 일본 정부 발표와는 달리 실제 내륙과 바다, 심해에 방사능 오염은 계속되고 있다.
"잠깐 수산물 중단하는 것은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어요. 우리는 근본 해결책을 원하는 거예요. 안전한 것을 보장하는 체계인 거죠. 정보교환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무실 바닥에 둘러앉아 방사능 검사 시료인 꼬막살을 발라내며 핵 없는 사회, 방사능 없는 먹을거리를 꿈꾼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시민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오늘은 선식을 검사해요. 표본 가운데 감마선을 내는 물질이 있으면 감지가 돼요. 핵종마다 내는 에너지값이 다른데, 그 에너지값으로 구분하는 거죠. 감마선이 나오는 세슘 134, 137과 요오드를 주로 보고 있어요. 방사능 가운데 알파, 베타선은 에너지가 약하고 보통 차폐로도 막을 수 있지만, 감마선은 에너지양도 많고 투과성이 높아 위험한 거죠. 감마선 분석을 통해 세슘과 요오드가 얼마나 있는지, 정량 분석을 하는 겁니다."
한살림 농식품분석센터 문준관(41세) 님은 연구원들과 함께 한 달에 30∼40개 정도 시료를 분석한다. 정부 기준치는 100Bq이지만, 자체 기준치 4Bq까지 잡아낸다. 그 아래도 소수점 단위까지 파악할 수 있다.
경기도 안성 한경대학교에 한살림 농식품분석센터가 있다. 후쿠시마 사고 뒤, 한살림 조합원들의 방사능 우려가 높아지면서, 한살림 자체 기준치를 만드는 토론회를 열었다. 처음에는 물류센터에서 간이검사기로 검사했지만 정확도가 높지 않아 다른 대안을 찾았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를 함께 만들어 녹색병원에 검사기를 두고 방사능 검사를 했다. 하지만 물류센터와 거리도 멀고 검사량이 많아 제때 검사하는 것이 어려웠다. 물류센터가 가까운 한경대와 협력관계를 맺어 방사능 검사기계를 구입하고 2015년 센터를 열었다.
"분석시료는 물류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 한꺼번에 와요. 거래하는 수산업체에서 새로 납품을 시작하는 물품도 검사하죠. 수산물, 버섯류, 뿌리작물을 주로 검사하고 있어요. 핵발전소에서 가까운 생산지 농산물, 영유아들이 많이 먹는 유제품, 분쇄육도 자주 검사해요."
표고버섯 하나에서 기준치 아래인 2Bq이 검출되어 버섯류에 대한 검사를 지속해서 이어간다. 식약청은 1800초 검사하지만, 센터는 1만 초(3시간 반) 동안 정밀 조사하고 있다.
"방사능은 계속 축적된다는 것이 문제잖아요. 일본에서 방사능 유출 자체를 막지 못한다면 농축도 계속되는 거예요. 불확실성이 더 높아지는 거지요. 참치 같은 대형 어류는 먹이사슬로 인해 중금속 잔류농도가 높은데 방사능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해요."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것, 방사능에 노출되었다는 실제 상황이 있고, 그것이 인간의 통제 범주 안에 들어와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심지어 국가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어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없다.
"정부 조사는 엄밀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느슨해질 가능성이 커요. 일본에서 수산물 수입 규제를 풀라는 압박도 커지고 있고요. 위험을 평가하려면 얼마나 유해한 물질인지,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평가해야 하는데, 그만큼 지속해서 데이터가 쌓여야 해요. 정확한 실태를 알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데, 지금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는 불확실성을 해소해주지 못해요."
정부 방사능 조사 기준이 있지만 시민들이 낱낱이 파악하기 어렵고, 특별하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민간감시와 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정부 기준치보다 더 낮은 단위까지 잡아내고 정보를 공유해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나는 안전한 식품을 먹는다'라는 개인 차원의 안심을 넘어 방사능의 뿌리를 생각하고, 핵발전소 문제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민간 감시 단위 역할 가운데 하나이지요. 지금까지는 정보를 국가만 가지고 있었지만, 민간이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 불확실성 해소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어요."
문준관 님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아는 공부가 필요하고 스스로 기준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하고 알아야 해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야 해요. 공부가 필요합니다."
민간단위 역할은 정보를 분산해 고르게 갖는 것이다.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괜찮다, 괜찮다'하다가 문제가 터지면 '죄송합니다'하면 끝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는다.
"민간이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함부로 못하는 거예요. 민간 단위에서 조사를 하고 데이터를 갖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사회적 메시지이거든요."
한살림연합회 품질관리팀 김승수(41세) 님과 이승규(40세) 님은 분석센터를 통해 자료를 모으고 관리하면서 방사능을 새삼 공부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진열된 먹을거리를 단순하게 고르는 것을 넘어서 정보를 공유하고 먹을거리 순환 전체 과정을 함께 배우기를 바란다.
"사실 많은 조합원들은 전체를 다 알고 싶어 해요. 내가 어떤 것을 먹고 있는지, 어떤 성분인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거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분석센터를 만든 뒤 시기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고, 자료를 쌓아가면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다양한 교차분석을 통해 빠른 결정을 내리고 대책도 마련할 수 있게 되어 든든함을 느낀단다.
"그동안 검사에서 표고버섯 말고도 러시아산 황태와 원양산 꽁치에서 방사능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기준치 아래인데 참숯에서도 나왔고, 제주도 고사리에서도 한 번 나온 적이 있었어요. 세슘이나 요오드 같이 감마선이 아니라 베타선이 나오는 스트론튬이나 라듐, 알파선이 나오는 플루토늄 같은 다른 핵종까지는 걸러지지 않아요. 다른 기계로 더 오랜 시간 조사를 해야 하거든요. 사실 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죠."
세슘은 방사능 검사에서 하나의 지표 같은 것이다. 그이는 앞으로 센터가 유통 상품을 검사하는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핵 없는 사회를 위해 심도 있는 데이터를 생산하는 기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방사능은 먹는 핵폭탄이라고 하잖아요. 인류가 경험해보지 않은 시간 동안 유지되는 것이라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아요. 그래서 한편으론 두렵지만, 책임감을 갖게 돼요."
시민이 가지는 정보는 힘이 있다. 문제의 뿌리에 다가서게 하고, 생각과 정책을 바꿀 수 있다. 밥상은 탈핵이 시작되는 곳이다. 우리 밥상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을 때 밥상에 오른 방사능을 치울 수 있다.
* 시민방사능감시센터
2013년, 핵 없는 사회를 희망하는 시민들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두레생협연합, 여성환경연대, 차일드세이브, 한살림연합회,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환경연합 에코생협, 환경운동연합이 설립했다. 국내 최초로 전문 핵종분석시스템을 갖춘 뒤 정기 시료분석을 통해 일본산 식품 조사, 국내유통 수산물 조사와 모니터링, 방사능 관련 정책입법 활동을 하고 있다.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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