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로 선출된 사단법인 독립제작사협회의 안인배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중국행 피디(PD)들을 두고 "한국의 유능한 PD들이 중국 회사로 가는 건 한국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PD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일부 지상파 '스타 PD'들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보이지만,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스타 PD뿐만 아니고, 그 수로 치면 독립 PD들이 더 많다. 이에 사단법인 독립피디협회는 'PD들의 해외 진출은 권력과 자본에 억눌려 온 창작권의 망명이다!'라는 반박 성명을 발표했고, 나 또한 안 회장의 생각에 큰 유감을 갖는다.
안 회장이 인터뷰한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보면, 동감의 댓글보다는 비난이 대부분이다. 그 댓글 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회장님 한국 방송 시장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동 착취에 프리랜서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이 어느 대기업보다 많은 수가 일하고 있습니다. 또 일한 대가인 비용을 상품권 또는 방송 나간 후 두 달 뒤 결제받습니다. 1월에 촬영한 프로그램이 3월 방송하면 5월에나 비용 결제가 이루어집니다. 그나마 프로덕션이 중간에 없어지면 비용도 못 받고 빚에 허덕이게 되는 겁니다. 당일 촬영이라고 나가면 새벽 2~3시에 나가서 다음날 2~3시에 들어옵니다. 이게 하루인가요?"
'준비된 아빠'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의 댓글에서, 애절한 분노마저 느껴진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이며, 나 또한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인 독립 PD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공정한 방송 노동 환경 안에서 그저 책임과 의무만 강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스포츠 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이유는 공정한 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방과 한판 승부를 가른다. 격렬하게 싸우는 그 와중에 반칙도 일어난다. 그러나 반칙을 했을 경우 정해진 규칙대로 벌칙을 주고, 심지어 경기장에서 퇴장도 시킨다. 그 게임에서 지더라도 패자는 억울하지 않다. 공정한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해 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 사회도 이렇게 공정한 게임이 이뤄질 때 환호와 열광이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기에, 학생들에게 '스포츠 정신', 공정성이라는 덕목을 가르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대로 열정을 불태우며 공정한 게임을 펼칠 수 있는 사회인가? 많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가 방송언론인이라는 점을 두고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
2015년 <중앙일보>의 국가 정체성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에 20대가 49.4%, 30대가 51.3%로 조사됐다. '대한민국이 부끄럽다'라고 여기는 젊은이가 2명 중 1명인 이 수치는 실로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2030 세대의 3명 중 1명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헬조선'이라는 이 과격한 표현을 그저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공정과 불안, 그리고 불신의 '3불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고, 이것은 절대 소설이 아니다. 국가는 계속해서 국격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단지 구호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이 조사 결과가 방증하고 있다.
원칙이 무너진 게임이 판을 치고 있다. 소년 다윗과 거인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게임이 우리 사회를 풍미하고 있다.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로 승자를 가리는 게임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원칙이 무너지고 반칙이 판을 치는 게임이 정당화되고 있다. 승자 독식주의는 급기야 마지막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승자를 가리는 서바이벌 게임을 번식시키고 있다. 원칙이 무너진 사회, 반칙이 판을 치는 세상을 보면 마치 간디가 <젊은 인도>라는 책에 썼던 "1) 원칙 없는 정치, 2) 노동 없는 부, 3) 양심 없는 쾌락, 4) 인격 없는 교육, 5) 도덕 없는 경제, 6) 인간성 없는 과학, 7) 희생 없는 신앙"이 우리나라를 두고 한 말 같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교육도 순리가 아닌 힘의 논리, 원칙이 실종된 막가파식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예견한 지적 같다.
독립제작사협회 안인배 신임 회장은 "물론 중국에 진출한 PD들은 한국 방송 시장에서 자기 노력으로 성취를 이뤘기에 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한국 시청자의 사랑을 토대로 명성을 얻은 PD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생각해 봤을 때 개인의 이익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더 크게 대한민국 방송문화산업의 발전도 감안해서 진로를 잡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안인배 회장께 '비난에 앞서 그들이 왜 정든 회사와 한국을 두고 중국으로 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다. 잘 모르겠다면 독립제작사 대표이시기도 하니, '당신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독립 PD들에게 한 번 물어보시라'는 권유를 드리고 싶다. 나의 잘못된 생각일지 모르지만 혹시 신임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이것이 갑으로 모시고 있는 방송사를 위한 립서비스였다면 귀하의 단체 이름인 '독립제작사협회'라는 이름에서 '독립'이라는 단어를 지우든지, 아니면 '방송하청업자집단'이라고 개명을 하는 게 맞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