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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중-미의 대북 협상에 허 찔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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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중-미의 대북 협상에 허 찔리나

[주간 프레시안 뷰] "북한을 국제 사회 일원으로 복원하는 게 한국 역할"

"박 대통령은 지금 한국의 안전보장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산을 세계에 보여주려 했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검토 등으로 김정은.시진핑의 허를 찔렀다. 미.중 협상이 서둘러 진행되고 유엔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탄생한 데엔 박 대통령의 냉엄한 성정과 결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지금 북한의 무역 의존도는 40% 정도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의 1970~80년대보다도 월등히 높은 비중이다. 이런 외부 의존형 경제에 가해지는 경제 제재는 북한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앞의 인용문은 중앙일보 4일자 전영기 논설위원의 칼럼 '살생부와 유승민', 뒤는 주사파에서 뉴라이트로 전향한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의 4일자 <조선일보> 칼럼 "中은 지난 7년을 허송세월했다"의 일부입니다.

강력한 경제 제재에 의한 북한의 변화, 항복, 나아가 붕괴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납니다. "이제는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는 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맞장구를 친 것이죠.

심지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인 유호열 고려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한국이 개성공단을 중단할 만큼 강하게 나가진 못하리라고 판단했을 것 (…)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의 이런 판단을 전제하고 내린 것"이라며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지난 6일 런던에서 한국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개성공단을 중단했기 때문에 (…) 중국을 움직이는 데(고강도 대북 제재 동참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대북 제재가 오히려 통일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언론 보도, 대다수 학자들의 발언들을 보면 마치 북한의 굴복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착각을 갖게 됩니다. 한국 주도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중국까지도 동참한) 북한의 태도 변화, 나아가 북핵 문제 해결이 일보 직전에 와 있다는 착각 말입니다.


예, 물론 '착각'입니다. 종편을 비롯해 공영방송과 보수신문 등 거의 모든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 오직 한국 국민들만 '고강도 압박에 의한 북핵 해결 임박'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허를 찔릴 대상은 김정은이나 시진핑이 아니라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과 미국, '제재 이후', 대화와 협상에 착수

한반도 문제의 최대 당사국인 중국과 미국은 이미 '제재 이후', 즉 대화와 협상에 의한 해결방안에 착수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두 나라 모두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특히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9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훈련으로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위해 각국의 냉정과 자제를 강조한 후 10일부터 이틀간 러시아 방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주요 의제는 당연히 6자회담 개최일 것입니다.

이렇듯 주변 당사국들은 협상 모드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 정부만 '오직 제재'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 8일에는 '북한 식당 이용 자제'라는, 실효성도 없고 치사하기까지 한 독자 대북제재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대부분 언론들은 대단한 제재인 양 심각하게 보도했습니다. 한마디로 코미디입니다. 다른 당사국들은 제재와 협상을 동시 추구하는 데 비해 한국은 제재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국제사회에서 '우물 안 개구리'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제재와 압박만으로 한 나라의 행태를 바꾼 적은 없습니다. 변화는 교류와 접촉, 대화와 협상에서 비롯됩니다. 이란과 쿠바가 그러했습니다.

현재 중국과 미국, 나아가 러시아(어쩌면 북한까지도 포함한)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물밑 협상의 구체적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뀐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협상으로 정책 전환

북한 연구자인 이정철 숭실대학교 교수는 9일자 창비주간논평('평화체제 입구론과 비핵화 팻말론')에서 "미국이 25년간 고수해온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 원칙을 버리고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론을 수용해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이런 정책 변화의 진원지는 중국이라고 관측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징벌적 대북제재론의 발상법을 지닌 한국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을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죠) 즉 미국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이정철 교수의 관측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북강경파이며 한때 백안관 안보회의의 고위관리로 근무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2월 26일자 <중앙일보> 칼럼('대북 외교의 판이 바뀌고 있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소 길지만 주요 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1월 6일 핵실험을 강행하기 불과 며칠 전 미국과 북한이 평화조약을 위한 회담을 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핵실험 이후 미국이 회담을 없었던 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WSJ의 보도에 대해 미 국무부는 보도가 잘못됐다며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워싱턴은 핵실험 전에 평화조약 회담에 합의하지 않았다. 사실은 이렇다. 평양이 평화조약 회담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평화조약 회담이 비핵화 회담과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평양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 대한 국무부의 발언은 이번 달 초 내가 베를린에서 들은 것과 일치한다.

중요한 것은 국무부의 반응에 담긴 함의다. 국무부가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북한과 평화조약을 위한 회담을 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단 평화조약 회담에는 비핵화가 구성 요소로서 포함돼야 한다. 이런 형국을 표현하는 미국 속어는 'flipping the script(판세 뒤집기)'다. 즉,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지난 25년간 유지돼온 대북(對北) 협상의 형판(形板·template)이 점진적이지만 상당한 정도로 바뀌고 있는 현장이다.

과거의 합의에 담긴 논리는 두 가지였다. 첫째,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조약을 상정할 수 없다.

WSJ 보도에 대한 국무부의 반응은 사실상 대북 대화에 새로운 선례를 남긴 것이다. 핵무기가 단지 한 요소에 불과한 포괄적인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의 가능성이다."

(☞바로 가기 : 대북 외교의 판이 바뀌고 있다(빅터 차, <중앙일보> 2월 26일))

미국 내 대북강경세력의 내부자(insider)라고 할 수 있는 빅터 차의 위와 같은 발언은 오바마 정부가 대북 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북핵 협상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이정철 교수는 "결국 현 사태를 진정시키는 길은 한미군사연습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의 고리는 한미군사연습의 중단 혹은 축소를 한 축으로 하고 북한의 핵과 로켓을 동결하는 것을 다른 축으로 하는 협상안을 입구에서 수용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2012년 무산된 2.29 합의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당시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핵동결과 미국의 경제지원을 맞바꾸기로 했지만,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이 한미군사훈련을 강행하고 이에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맞대응함으로써 합의 자체가 무산된 바 있습니다. 즉 2.29 합의 무산의 주범인 한미군사연습과 로켓 발사를 상호 동결함으로써 일단 동결식 평화체제를 정착시킨 다음, 비핵화와 평화협정이라는 궁극적 해결책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동결식 평화체제가 정착된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북한은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DNI)의 방북을 전후해 '한미군사연습과 핵실험의 상호 중단'을 제안했고 작년 1월 9일에는 이를 공개 제안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가을 유엔회의에 이르기까지 이 방안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또한 중국에 정통한 한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1월 7일 왕이-케리 전화 통화에서 중국 측도 북한 핵 및 로켓 활동 동결을 첫 단계로 한 비핵화 협상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북핵 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협상은 성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집안 싸움에 골몰한 집권 여당, 북핵 협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물론 '한미 군사훈련에 손을 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선 양국 군부 등 한미 간에 성역처럼 돼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군사 훈련은 이제까지 딱 한 번(1992년) 중단된 바 있을 뿐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규정한 남북기본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였죠. 다음 해인 1993년에는 당시 국방장관 딕 체니(네오콘의 거두였죠)가 미 국무부나 주한 미 대사관과 상의 없이 군사훈련(팀스피릿)을 재개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정철 교수는 "(기존의) 전략적 인내와 대북 압박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점을 미국이 시인"하고 "추가적인 핵 능력 가시화가 북미 협상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이 이해"할 때, 비로소 잠정적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즉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말 대 말의 수준에서 교환하되, 행동 대 행동 수준에서는 '(한미의) 합동군사연습의 축소'와 '(북한의) 로켓과 핵의 동결 및 검증'을 교환하는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가기 : 평화체제의 입구론과 비핵화 팻말론(이정철 <창비주간논평> 3월 9일))
(☞바로 가기 : 북한과 미국, '동결식 평화 체제' 합의할 수 있나 (이정철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2015년 10월 26일))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문제는 현재의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동결형 평화체제에 동의할 것인가 라는 점입니다. 지금 현재는 오로지 대북 제재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 집권 새누리당은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친박 대 비박이 목숨을 건 추악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8일에는 "김무성이 죽여버리게. 죽여버려 이 XX"라는 같은 당 소속 윤상현 의원의 발언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권력 장악을 위해 같은 당 대표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이런 정당에서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통 큰 시각을 기대하기란 그야말로 연목구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의 주역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입니다. 1991년 북핵 위기가 표면화된 이후 25년간 죽 그랬습니다. 1993년 3월 북한의 NPT(핵확산 금지 조약) 탈퇴로 본격화된 1차 북핵 위기는 1994년 북미간의 제네바 합의로(한국은 협상에 참여조차 못했습니다) 해결됐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의 침소봉대로 제기된 북한 우라늄농축 의혹은 2차 북핵 위기(2003년 1월 10일 북한 2차 NPT 탈퇴 선언)를 불러왔지만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합의로 일단 봉합됐습니다(당시 한국은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했죠).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2012년 2.29 합의, 올해 초 미북간의 평화협정 비밀 논의 등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 쥐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채 오직 한국 혼자의 힘으로, 그것도 오직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백일몽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남북 화해와 교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복원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한반도의 안정과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여당을 포함한 현재의 정치세력에서 이러한 전망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최대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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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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