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정부가 개성 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연이은 도발에 대한 특단의 조치였다. 정부 발표 직후 하루 만인 11일, 북한도 남측 인원 추방 및 자금 동결 선언으로 맞대응했다. 불똥은 개성공단 입주 업체에 튀었다. 기계 등 설비 및 제품, 자재들은 물론이거니와 개인 물건조차 가져오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입주 기업들은 8000억 원을 웃도는 예상 피해 금액을 발표하는 등 연일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경영정상화를 위한 방안 찾기에 고심 중이다. 그러나 '8000억'이란 숫자가 너무 거대했던 탓일까.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 가운데 일반 근로자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개성공단 입주 업체에서 일하던 800여 명의 일반 근로자들은 현재 사실상 해고 상태에 놓였다. 정부 발표로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됐지만, 업체들의 손실이 워낙 크다 보니 억울하단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단 조업 중지 사태 열흘 만에야 근로자들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 나서는 등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지난 25일, 의정부 모처에서 개성공단 근로자 피해자 비대위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최명호 씨를 만났다.
설 하루 전날이었다. TV가 요란했다. 빨간 자막으로 '북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 속보가 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료 직원들에게 연락했다. 모두 똑같은 소리를 했다. '에이, 아닐 거야', '응 별일 없겠지' 서로를 다독였다.
며칠 후, 또다시 TV에 빨간 자막이 떴다. '정부, 개성공단 전면 중단'
우려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다.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설마' 했다"
최명호(58) 씨는 개성공단 근로자'였'다. 월요일 아침이면 일주일 치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동두천 집에서 나와 통일대교를 건넜다. 최 씨가 몸담은 '한강산업'은 세탁 회사였다. 127개 입주 생산 기업의 편의를 돕는 운영 기업 백여 곳 중 한 곳이다. 봉제 회사에서 청바지처럼 물을 빼야 하는 옷이나, 공정 과정에서 실수로 염료가 묻은 옷들을 최 씨 회사에 맡겼다. 남측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세탁을 맡기기도 했다.
처음 공단에 들어온 건 2012년 가을이었다. 프렌차이즈 세탁업체 공장에서 일하던 중, 아는 세탁 설비 업체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통일부 쪽에서 세탁 업체 입주를 요청이 들어왔는데, 본인은 세탁 기술이 없으니 같이 개성공단에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일한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러마' 했다.
대규모 입주 기업과 달리 운영 기업은 대체로 아주 영세하다. 최 씨네 회사도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직원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입주하고 처음으로 사장이랑 손발을 맞춰봤으니, 신생 회사나 다름없었다. 3년 내리 적자를 거듭했다. 그러다 노하우가 생겨, 지난해 말 처음으로 흑자 단계로 올라섰다. 이제야 일에 재미가 붙던 차였다.
"한마디로 청천벽력이었죠. 공단 폐쇄 뉴스를 보고, 충격을 크게 받았어요."
이런 사태를 단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진심으로 걱정한 적도 없었다. 정부를 믿었었다.
"개성공단에 투입된 인원이 한두 명도 아니고, 투자한 돈도 거의 몇조 원은 될 테니까 설마 막힐까 했죠. 당연히 쉽게 닫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말로 막혔다. 회사 각종 설비는 물론이거니와 숙소에 있던 개인 세간도 하나도 빼내지 못했다. 집이 동두천인 최 씨는 공단에 일주일에 한 번씩 남한을 오갔지만, 집이 먼 남측 직원 대부분은 2주에 한 번씩만 내려갔었다. 옷이며 돈이며 거의 모든 짐이 다 공단 숙소에 있었다.
10일 정부 발표 이후 통일부에서 11일과 12일 이틀간만 출입을 허락하겠다는 지침이 내려왔다. 짐이라도 가져와야지 했는데 11일, 이번엔 북한에서 남측 자산 동결과 남측 인원 전원 추방을 통보했다.
"유방암 재발한 아내, 처음으로 흑자 났다고 좋아했는데"
사장은 말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죠. 사장이라고 뾰족한 수 있겠습니까. 같은 피해자인데."
최 씨가 먼저 사표를 내지 않았고, 사장이 해고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직장을 잃었다. 오로지 정부 한마디에.
"아주 미워요. 배신감도 들고. 하지만 개성공단이 특수한 곳이니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에요. 근데 공단을 폐쇄할 거면 적어도 생계 보장 방안은 마련해놓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개성공단에 입주한 120여 개 생산 업체들 대표들은 24일 피해 추산액이 총 8152억 원이라고 밝히며, 정부에 손실액 보전을 요구했다. 문제는 정부가 배상해야 할 법적 근거 법령이 없다는 점이다. 입주 기업들은 배상을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지만, 총선이 코앞인 데다가 배상 범위를 놓고 여야 입장이 갈릴 수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정부는 "기업 지원에 총력을 다 하겠다"며 업체 설비 등 고정 자산뿐 아니라 원부자재와 완제품 등 유동 자산에 대한 피해 지원을 검토할 뜻을 밝혔다. 일반 근로자들을 위해 고용유지지원금과 생활안정자금 융자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최 씨는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자 배상에 우선순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기업 피해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근로자들 생계 대책에 대해선 말이 없어요. 아무래도 기업 손실액이 크고, 눈에 보이는 피해니까 그러겠죠. 또 업체 대표들은 목소리도 크니 반발을 막기 위해서라도요. 그런데 업체 대표들은 자기 재산이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근로자들 처지부터 생각해야지요."
최 씨는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내는 예전 수술 받았던 유방암이 최근 재발해 재수술을 앞두고 있다. 아들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닌다. 아내 수술비며 아들 대학 등록금이며 마련해야 할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아픈 아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흑자 났다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되니 힘이 쫙 빠지네요. 지금 제 나이가 몇인데 어딜 가란 건지. 그런데 저만 어렵겠어요?"
개성공단에서 체류하던 남측 직원은 800여 명. 그중 상당수는 봉제 업체 등 제조업 종사자다.
"제조업은 저임금으로 움직이는 곳 아닙니까. 사장 입장에서는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여기서 일하던 남한 직원들이 쓸모가 없어지는 거예요. 남한에는 제조 공장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럼 그 사람들은 할 일이 막노동밖에 없어요."
열흘 넘게 넋 놓고 상황을 관망하기만 했다. 그러다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지내던 근로자 서너 명을 불러 모아 부랴부랴 비대위를 꾸렸다. 하지만 마음만 급하다. 직책도 없고, 요구 사항도 정하지 못했다.
"힘없는 사람들이잖아요. 뭘 해봤겠어요. 이렇게 인터뷰라도 하면서 저희 사정을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 북한 직원들, 눈에 밟힌다"
생계 걱정과 별개로, 북한 직원들을 다신 못 본다는 점도 최 씨를 슬프게 한다.
"큰 제조 공장은 북측 직원 200명에 남측 관리인 한두 명 있는 정도예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워낙 작으니까, 양측 직원들끼리 가깝게 지냈거든요. 집안 사정이 어떤지도 다 터놓고 이야기할 정도로요."
공단이 폐쇄되면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북측 직원들과 연락할 방법이 뚝 끊겼다. "우리 북한 직원들이 눈에 많이 밟힌다"고 말하는 최 씨의 눈시울이 붉었다.
"북한이라는 나라가 남존여비 사상이 상당히 강해서 그런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두 배는 일을 잘해요. 우리 직원들도 보면 여직원들일 일을 참 잘했어요. 얼마 전에는 우리 북한 여직원 한 명이 애를 낳았어요. 엄청 꼼꼼하고 제 말도 잘 따라줘서 기특하게 생각한 친구인데, 2개월 유급 휴가 하고, 6개월 무급 휴가까지 마치고 3월 1일자로 복귀하기로 돼있었어요. 다른 북한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딸 얼굴 한 번 보고 싶고, 하다 못해 축하한다고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전혀 연락할 길이 없어요."
최 씨는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남북 민간 교류 기회가 차단된 것은 큰 실수라고 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남북 관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우리가 북한 사람들하고 직접 접촉을 하다 보니, 남측 체제나 문화 상당 부분이 북쪽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단 말입니다. 덕분에 남한 사회에 대해 호기심 갖고 동경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럴 기회가 사라져버렸어요."
"30만 개성 주민, 적으로 만들었다"
최 씨는 우리뿐 아니라 북측 주민들의 경제적 손실도 만만찮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단 폐쇄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북측 직원들과 개성 주민들"이라고 했다.
"공단에 있는 북측 직원들이 다 합치면 6만 명 정도 돼요. 원래 개성에 있던 주민들만 취직한 게 아니라, 평양에서, 신의주에서, 개성으로 이주 왔어요. 그런 사람들이 이제 공단이 없으면 막막해지는 겁니다.
북측 직원들이 개성공단에 처음 왔을 땐 얼굴이 완전 새까맸어요. 그런 애들이 육 개월 지나니까 낯빛이 달라지더라고요. 여기선 남측 직원들 따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니까요. 사람이 말입니다. 어렵게 살던 사람이 잘살다가 다시 못 살게 되면 그게 더 어렵습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이 딱 그 꼴입니다. 공단을 폐쇄한 남한이 밉지 않겠습니까? 통일을 대비해서 그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가 30만 개성 주민을 적으로 만들었어요."
그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측에 들어온 자금이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는 정부 논리에 대해 고개를 갸웃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처음부터 그랬을 텐데 이제 와서 문제제기한다는 건 새삼스러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남한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와 봐야 괴로운 건 북한 주민들이죠. 아마 북한 정부는 꿈쩍도 안 할 겁니다. 오히려 기름에 불을 붓는 격이죠. 그럴 바에야 이렇게 꽉 막히는 것보단 숨통을 트는 게 핵 문제 해결에도 나을 겁니다."
모든 게 멈춰버린 개성공단. 언젠가 다시 돌아갈 날이 올까. 최 씨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2013년에도 한때 개성공단이 가동을 멈춘 적이 있었다. 그땐 분명 다시 문이 열릴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번엔 다르다. 그는 "정권 교체가 되지 않는 한 이제 내가 개성에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개성공단에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고 했다.
"2년 후에라도 만약에 정권이 바뀌어서 개성공단 가동이 재개되면, 제조업 업주들은 많이 갈 겁니다. 저도 마음 같아선 언제가 되든 개성공단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요. 하지만 제가 그때 뭘 하고 있을진 알 수 없어요. 내일 당장 뭘 할지도 막막합니다."
최 씨의 한숨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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