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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젠트리피케이션 진행…마을 파괴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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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젠트리피케이션 진행…마을 파괴 잔혹사"

청년 예술가들 "동네 살리려다가 젠트리피케이션 역풍"

2009년 1월 '용산 참사'가 발생했다. 재개발로 길거리에 나앉게 된 철거민들이 망루를 설치하고 생존권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묵살됐다.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이 죽었다.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유가족들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야기를 2016년 2월로 옮겨 보겠다.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도 '용산 참사'와 비슷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건물주 싸이 측은 벌써 3차례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카페 '드로잉' 운영자들은 언제 강제집행이 진행될 지 알 수 없어 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한 지 오래다. 언제 강제집행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용산이라는 지역은 특수하다. 과거에는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빈민촌이 형성됐다. 대표적인 곳이 해방촌.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용산국제업무지구, 뉴타운 지역 선정 등 광풍이 몰아치면서 '핫플레이스'가 됐다. 우사단길, 경리단길 등에 젊은 문화예술가들이 들어가 활동하면서 열풍은 가속화됐다.

자연히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하루아침에 투기 열풍에 몸살을 앓게 됐다. 원주민들은 하나둘씩 생활터전에서 쫓겨나는 식이다. 용산참사와 카페 '드로잉'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용산 한남동 경리단길, 해방촌, 도깨비시장길 등이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2~3년 전에 비해 임대료가 2배 이상 오른 곳이 태반이다.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걸까.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지키기 위한 대책위원회' 주최로 2일 한남동 카페 '드로잉'에서는 용산에서 반복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하는 제6회 한남포럼이 열렸다.

▲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내부 모습. ⓒ테이크아웃드로잉

"우리가 사는 동네가 유명해지지 않았음 한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한남동 우사단 10길에서 이태원 계단장이라는 벼룩시장을 여는 장재민 '우사단단' 활동가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장재민 씨는 "우리가 이 동네에 들어올 때만 해도 뉴타운 재개발로 묶여 슬럼화의 상징이 된 지역이었다"고 설명했다.

"슬럼화된 곳이었지만 나름 괜찮은 동네로 만들어보고자 했다. 이 동네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한다. 그렇게 괜찮은 동네를 만들어보자고 활동했는데 어느 순간 동네가 유명해졌다. 그러면서 잠들어 있던 건물주들의 욕망이 깨어났다. 처음 우리가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건물주들은 이곳을 방치했다. 언제든 재개발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애들이 와서 동네가 유명해지니 재개발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수 있겠구나 하는 환상이 심어진 듯하다."

장 씨는 자신들의 그간 활동을 "철없는 짓"이었다며 "상황이 이러니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다. 장 씨는 계단장이라는 벼룩시장 홍보나 공익활동, 주민네트워크 산업 등을 줄여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 씨는 "우리가 사는 동네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동네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활동했는데 그게 되레 동네를 파괴하는 일이 된 거 같아 허망하다"고 말했다.

장 씨와 함께 우사단단에서 활동하는 이영동 씨도 마찬가지였다. 이 씨는 다른 동네에서 온 방문객을 데리고 한남동 산동네를 도는 '동동투어'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씨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하고 있는 '동동투어' 같은 사업 등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강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용산의 한강진, 경리단, 우사단 등은 이제 이름만 남았다"고 말했다.
"주범은 부동산 업자"

김지윤 싱가포르 테크놀로지·디자인 대학교 연구원은 이러한 젠트리페케이션 현상의 주범으로 부동산 업자를 지목했다. 김 연구원은 이태원을 언급하면서 "시기마다 상업화를 주도하는 계층은 달랐다"고 설명했다.

"이태원이 처음 상업화 대상으로 된 것은 미군을 상대로 했던 나이트 라이프, 즉 성을 매개로 한 매매 등이었다. 그러다 1980년~1990년대에는 일명 '짝퉁' 명품을 파는 상인들이 상업화를 이끌었다. 상인들의 세대교체도 여러 번 일어났다. 이들은 초기 부흥기 때 상당한 돈을 벌고 이곳 건물주가 됐다. 상업 활동은 안 하지만 건물주로 존재하는 식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상업화 대상이 음식으로 변화했다. 그러면서 부동산업자가 같이 이곳에 들어왔다. 동대문과 비슷하다. 두타 등 쇼핑몽이 생기면서 부동산이 들어왔다. 부동산이 들어오면 한순간에 휩쓸린다. 이태원도 음식점과 함께 부동산이 같이 들어온 게 가장 큰 문제다."

김 연구원은 현재 소위 뜨고 있는 경리단길과 우사단길을 언급하면서 "이들 지역은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청년사업가들이 2010년 전후로 들어가서 문화활동을 하면서 점차 활성화가 됐다"며 "그러자 지가가 오르면서 투자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여기에는 부동산업자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한남동 일대 골목길은 현재 부동산업자의 놀이터가 됐다"고 말했다.

▲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지키기 위한 대책위원회' 주최로 2일 한남동 카페 '드로잉'에서는 용산에서 반복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원인과 대안을 모색하는 제6회 한남포럼이 열렸다. ⓒ프레시안(허환주)

"슈퍼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단계별로 정리해서 설명했다. 신 교수는 현재 한남동 카페 '드로잉'이 겪는 분쟁을 3라운드라고 정의했다.

신 교수는 "1라운드는 1990년대 신촌, 압구정동 등에서 진행됐다"라며 "그때는 세입자들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쫓겨나야 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하지만 2라운드인 2000년대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등에서 진행된 젠트리피케이션에서는 마냥 당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2008년 이후 부동산 불황기가 찾아오면서 더는 아파트에서 시세 차익이 안 나자 돈 있는 이들 상당수가 건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라며 "그것이 3라운드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3라운드는 용산 한남동에서 두드러진다"라며 "정치인들, 재벌, 여기에 스타 연예인들이 가세해서 슈퍼젠트리피케이션, 글로벌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이전 젠트리페케이션은 지역에서 나름 함께 동네라는 공간을 만들었다"라며 "하지만 지금의 슈페젠트리피케이션은 그렇지 않다. 자기네들의 네트워크가 다른 곳에 있기에 동네, 그리고 장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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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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