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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식민 사관, 그 특별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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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정희와 식민 사관, 그 특별한 관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유신 쿠데타, 서른네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한 번째 이야기 주제는 유신 쿠데타다.

프레시안 : 그동안 유신 쿠데타의 그날, 유신 쿠데타의 원인에 대한 여러 시각, 그리고 1965년 한일 협정 체결 이후 1972년 유신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정치 상황 등을 하나하나 살폈다. 이제 유신 체제라는 기이한 체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살폈으면 한다. 유신 체제의 기원 문제, 어떻게 보나.

서중석 : 10.17 유신 쿠데타가 일어난 배경을 이해하려면 5.16 쿠데타 초기로 돌아가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잡은 권력을 절대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혁명 공약'을 온 국민한테 외우게 할 정도로 주지를 시켰고 그 6항에서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는데도 그걸 지키지 않은 것, 민정 이양 시기를 1961년 8월 발표하며 국내외에 약속을 해놓고 그 순간부터 중앙정보부 밀실에서 다른 정치 세력은 다 묶어놓은 채 공화당이라고 나중에 알려지는 새로운 당을 사전 조직한 것, 민정 이양 과정에서 1963년 2월 27일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하면서 민정에 참여하지 않고 군에 돌아가겠다고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해놓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친위 군인 데모를 통해 뒤집은 것 등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생산적 정치로 능률을 극대화하겠다는 유신 체제, 박정희의 표현을 빌리면 그게 한국적 민주주의인데 박정희가 그걸 언제부터 구상했느냐. 그 최초의 시점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5.16 쿠데타 직후에 나온 <지도자 도(道)> 등 논설 그리고 특히 1962년 2월에 인쇄한 것으로 돼 있는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그리고 1963년 8월에 인쇄한 것으로 돼 있는 <국가와 혁명과 나>, 이 두 권의 저서에서 유신 체제의 시원이라고 볼 수 있는 또는 유신 체제와 같은 정치 이념을 표명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사실 1936년 일본에서 일어난 2.26 쿠데타와 같은 쇼와 유신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있다. 여러 연구자가 유신 체제, 전두환 신군부 체제를 파시즘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반공과 함께 반자유주의, 반의회주의 성향을 강하게 내보인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고, 파시즘 운동 없이 생겨난 파시즘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전두환 신군부 체제도 그렇지만, 그것의 모태인 유신 체제는 쿠데타, 계엄 같은 걸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군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군국주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군국주의 파시즘의 한국적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에는 일제, 특히 군국주의 파시즘이 위세를 떨친 1930년대의 일제나 만주국과 흡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군국주의 파시즘의 한국적 변형으로서 반공, 반자유주의, 반개인주의 성향을 보이고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특징으로 하는 박정희의 정치 이념이 나타나게 된다. 그게 5.16쿠데타 후 민정 이양 초기에는 행정적 민주주의, 민족적 민주주의로도 이야기됐지만 유신 체제에 들어와서는 한국적 민주주의로 정착하게 된다. 이 문제를 살필 때 빼놓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유신 체제 이해의 바이블, <우리 민족의 나갈 길>과 <국가와 혁명과 나>

▲ <우리 민족의 나갈 길>. ⓒ동아출판사
프레시안 :
그게 무엇인가.

서중석 : 바로 식민 사관이다. 앞에서 말한 두 저서, <우리 민족의 나갈 길>하고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박정희는 서구 민주주의가 한국에 부적합하다고 얘기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 사관에 대해서도 굉장히 역설했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뒷받침해주고 그 바탕이 된 것이 한국사와 한국 민족을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식민 사관이다. 다시 말해 왜 민주주의가 한국에는 맞지 않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해야 하느냐에 대해 박정희의 두 저서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에 식민 사관이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 아무개 총리 후보자가 식민 사관에 젖은 발언을 했다고 해서 2014년에 순식간에 낙마하는 일도 있지 않았나. 도대체가 그렇게 식민 사관을 펴고 있다는 것이 요즘 한국인들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5.16 쿠데타를 전후한 시기에는 일반 대중한테 비록 수동적인 형태로나마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식인의 대다수도 식민 사관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상당 부분 마음속으로 지니고 있었는데, 다만 박정희처럼 그렇게 식민 사관을 당당히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차이가 나는 점이다.

박정희의 '서구 민주주의가 한국에 부적합하다'는 주장과 식민 사관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 이 두 저서다. 유신 체제를 이해하는 데는 보물단지로 볼 수 있고, 유신 체제 이해의 바이블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박정희가 역설하고 강조한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유신 체제를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예전에 5.16 쿠데타를 다룰 때 개략적으로 살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유신 쿠데타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두 저서를 다시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두 저서에서 박정희는 어떤 이야기를 했나.

서중석 : 이 두 책에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어떤 주장을 했는지를 거친 형태로나마 살펴보자. 아예 <우리 민족의 나갈 길> 머리말에서 박정희 의장은 식민 사관에 근거한 개조론을 주장했다. 머리말에서 박정희 의장은 우리가 당면한 첫 번째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첫째로 지난날 우리 민족사상의 악(惡)유산을 반성하고", 그러니까 우리 민족사에는 악유산이 많다는 것이다. "이조 당쟁사, 일제 식민지 노예 근성 등을 깨끗이 청산하여", 이렇게 얘기했는데 일제 식민지 노예 근성이라고 한 것에는 '우리가 나쁜 노예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가 된 것이다', '한국인은 일제한테 당해도 싸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셋째로 "우리는 건전한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건해야 한다고 하는 걸 보면, 과거에 그런 "건전한 민주주의"가 있었다고 본 모양이다. 박정희는 "직수입된 민주주의가 한국 현실 속 깊이 뿌리박지 못하고 실패한" 해방 후의 역사라는 주장을 폈다. 대의제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를 "직수입된 민주주의"라고 표현했는데, 인류 보편의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이것밖에 없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 현재까지 그와 다른 민주주의로 제시된 건 공산주의에서 주장한 것 말고는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니까 해방 후 우리가 그런 민주주의를 직수입했지만 그게 실패했으니 우리한테 맞는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박정희는 "민정 복구를 하더라도 이 조국이 다시금 부패·부정에 물든 구정치인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자신이 '혁명 공약'을 어긴 것, 민정 이양 공약을 저버린 것이나 2.27 선서를 어긴 것을 바로 이런 것을 근거로 합리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비판하지만 자신의 잘못은 명백히 합리화할 명분이 있다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1장 제목은 '인간 개조의 민족적 과제'인데, 여기서 인간 개조라는 말이 연구자들한테 주목받고 있다. 1장에서 박정희는 "파당 의식의 지양"을 주장했다. 과거 당파 싸움과 정부 수립 이후 정당 활동을 파당으로 보고 그런 파당 의식을 지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그러면서 중앙정보부 밀실에서 사전 조직된 정당이야말로 제대로 된 정당, 파당 의식이 없는 정당이라는 주장을 여기서 은근히 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명령일하에 잘 움직이는 정당을 가리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민족적 자아 확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거기에는 이광수가 3.1운동 직후 조선총독부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주장한 민족 개조론을 연상케 하는 주장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 : 어떤 대목이 그러한가.

서중석 : 예컨대 우리 민족성의 문제로 "악질적인 민족의 근성"을 제시했다. 우리 민족성을 아주 악질적인 것으로 본 것인데,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단어는 약간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박정희는 "악질적인 민족의 근성은 사대주의, 반상적서의 계급관, 사색(四色) 당쟁 등과 결코 무관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의존 사상이나 아부 근성, 지배자에 대한 맹종 등도 이조 500년의 역사에 그 근원이 있다. 파당 의식도 이조사에 뿌리박고 있다. 이 당쟁은 순전 관직 쟁탈을 위한 대립, 반목에서 발생했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구한말의 비극, 한일 합병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악질적인 민족의 근성"을 개조해야 한다면서 그걸 인간 개조로 제시했다. 이 점에서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과 상당히 닮은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 관학자들이 주장하고 조선총독부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선전, 홍보했던 식민 사관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당 의식도 이조사에 뿌리박고 있다"는 이야기도 뭐냐 하면 해방에서 5.16쿠데타가 날 때까지 우리나라 정치는 전부 파당 정치라는 것이다. 그게 "이조사에 뿌리박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아주 중요한 주장인데, 그러니까 해방 후 나빴던 것이 다 우리 역사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전근대 사회와 근대 사회, 현대 사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그것들은 전혀 성격이 다른데도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건가? 이건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 사관을 이어받은 것을 해방 후 현대사에까지 연장해서 적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정희와 식민 사관과 이광수 '민족 개조론', 그 특별한 관계

프레시안 : '인간 개조의 민족적 과제' 이후에는 어떤 주장을 폈나.

서중석 : 2장 제목은 '우리 민족의 과거를 반성한다', 이렇게 돼 있다. 이 책을 쭉 살펴보면, 많은 보조 전문가가 집필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지만 기본적인 입장, 가장 중요한 주장 즉 식민 사관과 '서구 민주주의가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양대 주장은 박정희 의장의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2장에도 '전문가가 대부분 집필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곳이 있지만, 예를 들면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 부분이 그런 걸 보여주고 있는데, 핵심은 여전히 박 의장 것이었다. 예컨대 "이조 전 시대가 명과 청에 대해서 사대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봉건적인 주종적 성격을 띤 외교 관계는 유학자 사이에서 사대사상을 더욱 고조화하도록 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그 부분과 결부해 박정희는 2장 1절 '이조 건국 이념의 형성'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이조 건국 이념이 유교적, 봉건적 전제주의며 사대주의적 모화사상에 유림, 사림 등이 주자학 등 문약한 비실용적 사장학에만 흘러 형식적 의례만을 관심한 결과 후대 자손을 위한 정신적 유산도, 민족적 자주 이념도 남기지 못했으니 일제 식민지 종말 후 해방 한국 사회에는 민족의 앞길을 인도할 정신적 지배가 없는 니힐리즘 상태를 자아냈다." 난 "일제 식민지 종말 후"와 "해방 한국 사회에는 민족의 앞길을 인도할 정신적 지배가 없는 니힐리즘 상태를 자아냈다", 여기서 가운데가 비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일제 식민지가 됐다'는 것이 빠져 있다고 본다. 그 말을 차마 넣을 수 없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해방 후에는 봉건적인 사고나 인습을 씻어내고 근대적인 새로운 사상, 사고를 펴나가야 하는 건데 박정희는 조선 시대의 나쁜 것들이 일제 식민지 종말 후 해방 한국 사회에 그대로 있어서 한국은 니힐리즘 상태에 빠져 있다는 식으로 비난한 것이다. '결국 한국이 이런 상태가 돼버렸다. 그러니까 한국에 새로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걸 바로 박정희의 정치 이념으로 치유해야 한다', 이런 뜻일 것이다.

2장 2절 제목은 '이조의 사회 구조가 지닌 병리'다. 아예 제목 자체에 '조선 사회는 병리적 현상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머리말에 나오는 이야기와 통하는 대목이 있는데 "빈곤이 고질화된 농촌 사회는 고리채 등의 이조적 악유산과 봉건적 요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주장했다. 1950∼1960년대 농촌 고리채 등이 다 "이조적 악유산"이라는 주장이다. 참 이해하기 힘든 역사관이다. 그렇다면 일제 시기에는 뭘 했기에, 다시 말해 20세기 전반기는 전 세계적으로 근대적인 변화를 이뤄간 시기인데 그와 겹치는 때인 일제 시기에는 뭘 했기에 "이조적 악유산과 봉건적 요인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됐느냐 하는 문제도 이해하기가 참 어렵게 돼 있다. 박정희 의장의 논리에는 일제 시대가 쏙 빠져 있다. 일제 시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조적 악유산과 봉건적 요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온존시키려 한 것인지 아니면 없애려 한 것인지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어쨌건 이 당시에 있던 농촌 고리채 등의 문제는 "이조적 악유산과 봉건적 요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박정희는 이야기하는데, 참 답답한 주장이다. 이 절의 결론에 해당하는 내용이 이렇게 돼 있다. 그 뒷부분인 2장 4절 제목도 참 특이하다.

프레시안 :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서중석 : 뭐냐 하면 '이조 당쟁사의 반민주적 폐습'으로 돼 있다. 어떻게 전근대 사회에 대해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제목이 그렇게 돼 있다. 4절에서는 제목부터 식민 사관 중 당쟁 사관이 많이 드러나 있다. 당쟁 사관은 식민 사관에서 제일 중시하는 것 중 하나다. '한국은 당쟁으로 시종일관하다가 결국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됐다. 그만큼 잘못된 역사를 가졌으니까 지배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논리와 연결되는 게 당쟁 사관 아닌가.

4절 시작 부분은 이런 식으로 돼 있다. "이조 사회가 후대에 끼친 폐습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사화와 당쟁"이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폐습이 사화와 당쟁이다'라고 해도 이건 식민 사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게 지금 남아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게 그대로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파당 싸움이나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구에서 받아들인 민주주의가 바로 이 파당 싸움 때문에 실패했고, 그러니 그걸 실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주장이다. 하여튼 조선 사회가 후대에 끼친 폐습 중 가장 큰 건 사화와 당쟁이라는 말로 요약된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이것은 관인 지배층 내의 무자비한 권력 쟁탈을 위한 내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이건 일제 관학자들의 당쟁 사관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다. "모략, 음모, 테러와 같은 음성적 잔학성을 가진 파쟁으로", 테러라는 말을 여기서 쓰는 것도 좀 그런데, "반대 당이나 정적에 대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관용성의 결여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민족 분열을 조장하고 평화로운 정치 세력의 교체 가능성을 제거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후세 서구 민주 정치 수입에 임해 적지 않은 폐해가 됐다"고 주장했다. 거듭 말하지만 조선 시대 붕당 간 갈등에 대해 일제 관학자들이 이야기한 것과 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 해방 후에도 계속 그런 악습이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을 4절 첫머리에서 폈다.

박정희는 "이런 이조 사화에서 반대파를 몰아내는 방법은 고자질, 음모, 사적 반감을 풀려는 복수 등이 있는데 서구 봉건 사회에서처럼 공개적이고 정정당당한 기사도적 경쟁이 아니라 비굴하고 음성적이요 그러므로 관용과 타협이 없는 잔인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잔인성을 강조한 사람이 누구냐, 이 말이다. 당쟁이 아주 잔인했다고 강조하는 건 내가 읽은 것으로는 대개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 사관, 그중에서도 당쟁 사관 이야기에서 나타난다. 그런 사람들의 주장에서 그 이야기가 강조되는 것인데, 그것이 이 책에서 또 이야기되고 있다. 박정희는 "결국 당쟁의 전통적 폐습은 후대에 정실 인사, 엽관 운동, 오직 야당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등으로 계승된 셈이다", 이렇게 주장했다. 여기서 "후대"는 현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시기는 이 책에서 사실상 빠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정실 인사, 엽관 운동, 오직 야당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이건 자유당이 한 짓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것들이 현대에 계승돼 계속 나타났다고 주장한 것이다.

5절 제목은 '이조 사회의 악유산들'이다. 머리말에서 이야기한 "악유산"이 여기 또 나온다.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 사관과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여기에 계속 나온다. 1에서 7까지 제시하는데, 다 그 이야기다. 사대주의 - 자주 정신의 결여, 게으름과 불로 소득 관념, 개척 정신의 결여, 기업심의 부족, 악성적 이기주의, 명예 관념의 결여, 건전한 비판 정신의 결여, 이렇게 7가지다. 명예 관념의 결여, 이것도 일본인이나 이광수가 참 많이 이야기한 것이다. 이 7가지가 "이조사의 악유산"들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는 주장을 폈다. 예컨대 '일제 때도 그런 게 많이 보인다' 또는 '한말에 그런 게 보였다', 이렇게 했다면 그때는 조선 사회의 것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을 때니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에까지 그걸 전부 연결시킨다? 그건 아주 특이한 역사관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새로운 지도 세력의 대두와 육성" 강조한 속내

▲ 2011년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경북 구미) 부근에 세워진 고인의 동상 제막식 모습. 박근혜 대통령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악유산"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몰아세우는 대신 한국 역사에 대해 좋게 평가한 대목은 없나.

서중석 : 6절에 '전승해야 할 유산들'이라고 해서 좋은 것도 담았다. 그런데 이 책 97쪽을 보면 "해방 17년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 민족은 한때의 나이롱 선풍에도, 댄스 바람에도 그리고 외래품 범람에 휩쓸려 제 넋을 잃을 뻔했다. 외래 사조 소화 불량증에 걸렸다", 이렇게 돼 있다. 그냥 우국지사의 개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민주주의와 함께 들어온 서구 문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것을 퇴폐주의로 규정하고 파시즘에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재하는 단초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혹자는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의 장발 단속 같은 것을 연상할 수 있는데, 나는 "나이롱 선풍"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이해는 하지만 그런 말까지 쓸 필요가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일론이 들어오면서 우리 의복계가 대대적으로 혁신되지 않았나. 서민들이 쉽게, 또 색을 들여서 입을 수 있는 복식 혁명이라고 할까, 커다란 복식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나. 그러면서 '나이롱'이란 말이 유행해 참외에도 '나이롱 참외'가 생기고 선거에도 '나이롱 선거'가 있게 된다. 그렇게 별의별 군데에 사용됐기에 "나이롱 선풍"이라고 한 모양인데, 그런 식으로 꼭 부정적으로만 사용해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박정희 이 사람은 '이것저것 다 틀렸다. 다 썩었다. 다 잘못됐다', 이런 주장을 아주 강하게 폈는데 여기서도 그런 면을 찾아볼 수 있다.

7절 제목은 '이조 망국사의 반성'이다. 이 사람 논리대로 하면 여기에도 당연히 식민 사관이 나올 거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그런 식민 사관적인 논리가 이 절에서 펼쳐진다. 2장의 끝 절인 9절 제목이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인데, 제목을 보면 이런 논리에서 뭘 썼을까 하는 걸 궁금하게 여길 수 있다. 박정희는 여기서 다시 '이조의 사대주의'를 비판하고 해방 후 정치 세력을 다 파당 싸움만 한 것으로 싸잡아 매도한 뒤 은근히, 예컨대 "민주주의를 직수입한 의회 민주주의는 실패하고"라는 식으로 '한국에서 그간 민주주의는 실패했으니까 이제 다른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뜻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 2장 마지막에 가면 "이제 늦게나마 민주주의의 한국화라는 과제를 자각케 된다"고 했다. 그런 과제를 자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쓴 건데, "민주주의에도 지도성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각이라는 건 그걸 가리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한국화, 다시 말해 행정적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것인데 이건 인도네시아의 아흐메드 수카르노가 교도 민주주의(guided democracy)라고 말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박정희는 "과거 반봉건적, 반식민지적 지도 세력"을 그대로 뒀다는 데 한국 민주주의의 실패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자유당과 민주당이 다 "과거 반봉건적, 반식민지적 지도 세력"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서는 근대적인 새로운 지도 세력의 대두와 육성을 기초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광수의 민족 개조론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수양동맹회 같은 걸 만들어서 '나쁜 민족성'을 가진 한국인이 거기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는데, 그것이 이 책에서는 "새로운 지도 세력의 대두와 육성"이라는 식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지도 세력"이라는 건 박정희 자신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고, 그와 함께 밀실에서 만들고 있던 신당(공화당)을 은근히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의 근대화를 위해 기본적으로 자신과 신당 쪽이 중심이 돼야 하며, 지금까지 모든 정치는 다 잘못됐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신 쿠데타 10년 전, 유신 체제에서 역설하는 주장을 그대로 드러낸 박정희

프레시안 :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되짚어보면 자학 사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자학 사관은 침략 전쟁을 일으켜 엄청난 인명을 살상한 일제의 역사와 전쟁 범죄를 비판·성찰하는 움직임을 매도하고자 일본 우익이 퍼뜨린 논리다. 아울러 제국주의, 분단, 독재에서 비롯된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 한국 역사학자들을 시쳇말로 '좌빨'로 몰아세우며 극우 반공 세력이 공격할 때에도 자학 사관이라는 규정을 빌려 썼다. 이러한 점에서 자학 사관이라는 말 자체가 위험하고 의도가 불순한 용어임을 전제하고 말하면, 저들이 자학 사관이라는 말을 굳이 쓰겠다고 고집할 경우 그에 걸맞은 건 역사학자들의 비판적 연구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식민 사관과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한국사 전체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본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박정희를 숭배하는 경향이 있는 극우 반공 세력이 그렇게 할 리는 없겠지만, 저들의 논리가 정합성을 조금이라도 가지려면 박정희와 식민 사관의 관계 같은 문제에 대해 먼저 자학 사관이라는 규정을 들이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앞에서 지적한 문창극 총리 후보 낙마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 것처럼 식민 사관 문제를 오늘날과는 무관한 사안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다시 돌아오면, 지금까지 모든 정치는 다 잘못됐다는 논리를 깔고 있는 박정희의 주장, 어떻게 보나.

서중석 : 박정희 이 사람은 지금까지 모든 정치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아주 강하게 폈다. 자유당과 민주당을 싸잡아 매도하는 식으로 그런 주장을 강조했다. 당시 사람들이 자유당을 많이 비판한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예컨대 보수 야당이긴 했지만 자유당 집권기에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유당과 싸우고 그래도 민주주의라든가 서민들을 위해 나름대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했던 민주당 같은 경우, 그리고 그보다 진보적이었던 진보당 같은 경우 그런 것들에 대해 잘 봐줄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문제점은 비판해야 하지만 그런 게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해방 후는 그야말로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소중한 시기이고, 그때 있었던 정당이나 정치 세력 중에는 일제 지배와 같은 침략을 다시는 당하지 않고 우리 민족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정말 진지하게 구상하고 그걸 위해 노력한 정당, 정치 세력이 적지 않은데, 그 어떤 것도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2장의 경우 구체적으로 역사를 썼기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데, 어디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게 없다. 박정희라는 사람을 빼놓고는 어디서도 긍정적인 게 안 나온다는 게 중요한 특징이다.

마지막 절에서 경제 문제가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중에는 근대화가 거의 100퍼센트 경제 발전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지 않나. 박정희가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시기에 따라 그것이 의미하고 강조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때그때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다.

3장 제목은 '한민족의 수난의 역정'이다. 제목 자체가 참 우리가 얼마나 힘든 역사만 가졌는가, 이런 뜻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사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건 식민 사관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일제 때부터 이야기가 나오고 그랬는데, 박정희는 3장에서 다시 식민 사관을 역설했다. 3장에서 국제 관계 부분을 보면 한국은 당하기만 하는 나라,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돼 있다. 그렇게 묘사하는 건 식민 사관을 지녔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4장 제목은 '제2공화국의 카오스'다. 제2공화국, 즉 민주당 장면 정권 시기는 그야말로 혼돈, 혼란 상태라고 규정하고 2절에 '병(病)태아 제2공화국', 그러니까 병든 태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간 내가 계속 이야기했던 바를 박정희는 여기서 아주 강렬한 어투, 자극적인 표현, 극단적인 언어 구사를 통해 이야기했다. 그러면 그것들이 사실에 근거를 둔 주장인가. 그런 것도 있지만, 도대체 제2공화국 시기와 장면 정부에 대해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근거는 없지 않느냐고 볼 부분도 참 많다.

5장 제목은 '후진 민주주의와 한국 혁명의 성격과 과제'인데, 박정희는 이 장의 3절 제목을 '혁명기에 있어서의 민주주의 - 행정적 민주주의'라고 붙이고 한국에서는 행정적 민주주의를 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5장의 첫 번째 절 '현대의 후진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 첫머리에서는 "지난날의 우리들은 말로만 민주 정치를 한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 정치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빌려온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는 빌려온 것으로 민주 정치를 그 외양만 모방했던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단정했다.

프레시안 : 박정희가 행정적 민주주의를 강조한 것, 어떻게 보나.

서중석 : 5장에서는 경제적인 기반이 있어야 민주주의를 한다는 논리를 많이 폈다. 선거권도 기아에 직면하고 있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빛 좋은 개살구는 기아와 절망에 시달리는 국민 대중에게는 너무나 무의미한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다. 표현이 참 재미나다고 할까, 극단적인 면이 있다. 민주주의를 "빛 좋은 개살구"로 규정한 것도 그런데, 이런 주장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난 본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빛 좋은 개살구"로 규정한 후 3절에 가서 행정적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서구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즉 우리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 알맞은 민주주의를 해나가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유신 체제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주장이다. 그 주장이 바로 이 책에 이렇게 정확히 표현돼 있다. 내가 이걸 지적하려고, 조금 거친 방식으로나마 쭉 설명한 것이다. 그게 식민 사관하고 쭉 연결되면서 이 책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여기서 이런 주장을 했다.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가 다름 아닌 행정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행정적 민주주의라는 이 말은 여기서 사용하고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민주주의를 정치적으로 당장 달성할 것이 아니라", 지금 민주주의를 할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단계에 있어서는 행정적으로 구현해야 될 것이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책 전체의 맥락에 깔려 있다.

이 책 어디서나 느낄 수 있고 다른 책 또는 연설문이나 담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건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방 후 누구나 다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해방 직후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풍자까지도 많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였기에 박정희 의장도 그런 말을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내용을 보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른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일 수 있었을 텐데도, 행정적 민주주의라는 식으로 꼭 민주주의라는 말을 붙여서 이야기하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서구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측면만 주로 이야기하는 게 특색이다.

5장에서 행정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는데, 그것에 이어서 지방 자치 발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좋은 말을 많이 집어넣었다. 복지 민주주의라는 말도 쓰고 지방 자치도 발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박정희 군사 정권이 지방 자치를 소멸시켜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한국은 30년 동안 지방 자치가 없는, 세계에서 아주 희귀한 나라가 됐다. 지방 자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 이건 누가 써준 걸 그대로 받아서 넣은 건지, 아니면 이때까지는 지방 자치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이 책에서 지방 자치를 강조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농협 조합장, 수리조합장, 심지어 시기에 따라서는 이장도 임명하면서 모든 것을 명령일하에 두려 했던 사람이 지방 자치를 강조했다는 것이 좀 낯선 느낌을 준다.

장면 정권 비난에 집중, 독립 운동 서술엔 소홀

ⓒ오월의봄
프레시안 :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의 핵심 주장을 압축한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서중석 : 박정희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라는 말과 관련해 너무나 모순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기본적으로 주장하려는 것은 '행정적 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는 다 잘못됐다. 전부 파당 싸움이다. 현재 한국의 모든 문제점은 조선 시대의 악유산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생겼다', 이것에 집중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박정희는 5.16쿠데타 때문에 불과 1년도 존재하지 못했던 장면 정권을 하나의 장으로까지 설정해서 다룬 반면 일제 침략기라든가 12년이나 존속한 이승만 정권, 정치적으로 굉장히 많은 사건이 일어났던 해방 3년기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아무리 장면 정권이 밉다고 하더라도 일제 침략기, 이승만 집권기, 해방 3년기의 중요성 때문에도 그렇고 서술의 균형 문제를 고려해서라도 그런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피력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해 친일파 문제는 자신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장면 정권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한 것에 비해, '일본의 한국 침략'이라는 것을 소절로 했으면서도 국제 관계에서 한국이 결국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하여튼 독립 운동이나 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과 관련해 예컨대 2장 6절 '전승해야 할 유산들' 같은 데에서 집필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독립 운동 등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썼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거듭 든다. 그런데 그냥 간단히, 독립 운동을 몇 마디로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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